생애 첫 책 선물

by 심지훈

모국어를 깨치는 데는 자그마치 8단계가 필요하다. 첫 번째는 옹알이, 두 번째는 입말, 세 번째는 자모음 익히기, 네 번째는 낱말-구-문장 읽기, 다섯 번째는 받아쓰기, 여섯 번째는 문장쓰기(단순 생각쓰기), 일곱 번째는 문맥 읽기(문해력), 여덟 번째는 글짓기(마음짓기)다.


이 중 다섯 번째 받아쓰기까지 떼면 한글떼기 1단계 과정을 마친 것이다. 그다음부터는 글을 따라 쓰고, 읽고, 또 직접 지으면서 떼는 한글떼기 2단계 과정에 돌입한다.


며칠 전 다섯 번째 단계에서 여섯 번째 단계로 넘어간 아홉 라온이에게 <아홉 살 마음 사전>을 ‘아빠의 생애 첫 책 선물’로 사주었다. 이제 라온이는 학교에서 보는 받아쓰기를 보지 않고 바로 쓸 수 있게 되었다. 형식적인 한글떼기(한글떼기 1단계)를 마친 것이다. ‘아빠의 생애 첫 책 선물’이란 뜻은 한글 자립형 인간이 되었다는 의미다.


라온이는 2주 전인 2학년 2학기 6급 받아쓰기 때부터 그동안 쌓은 한글 실력에다 기술(요령)까지 터득해 웬만한 문장은 불러주는 대로 틀리지 않고 곧잘 쓰게 됐다. 어쩌다 틀린 것은 무슨 단어인지 아예 모르거나 받침이 헷갈리는 경우였다.


라온이는 어린이집 졸업반인 7세부터 그림일기와 함께 선생님이 써준 ‘익일 알림’을 주 5일간 독서장 쓰듯 1년 동안 베껴 썼다. 필사(筆寫)가 뭔지도 모르고 필사 과정을 거친 것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해서는 독서장과 일기 그리고 받아쓰기를 병행했다. 라온이 다니는 초등학교의 경우 1~2학년은 1년간 80권의 책을 읽고 독서록을 작성할 것을 권장한다.


일기는 선생님이 2학년 1학기 때까지만 검사를 했고, 2학기부터는 처음 두발자전거를 탄 날 같이 기억할 날만 쓴다.


특별히 라온이에게 <아홉 살 마음 사전>을 선물한 까닭은 한글떼기 2단계 마지막 과정인 마음짓기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결국 모국어 떼기의 화룡점정은 자유자재로 자기 마음을 지어 독자에게 보여주는 데 있다.


우리는 흔히 마음짓기를 글짓기라고 무미건조하게 말한다. 실은 세상 모든 글은 각자의 마음꼴을 글로 나타낸 것, 마음짓기다. 마음꼴은 어떻게 내보이는가. 마음은 어떻게 지어야 마음짓기가 되는가.


마음짓기는 좋은 문장력과 탄탄한 문해력이 선결되지 않으면 요원하다.


<아홉 살 마음 사전>은 그동안 감각적으로, 본능적으로, 습관적으로, 환경적으로 익힌 단어들, 그러니까 어렴풋이 아는 단어들의 원뜻을 제대로, 더 깊숙이 알 수 있도록 한다. 제대로, 깊이 안다는 것은 일상의 말과 글이 능수능란하게 된다는 뜻이다.


<아홉 살 마음 사전>은 마음을 표현하는 동사 80개가 담겼다. 장마다 왼쪽에는 친근한 그림으로 단어와 그 표현법을 보여주고, 오른쪽에는 단어의 뜻을 알려주고, 어떤 상황에서 쓰는 게 알맞은지 3가지 예문을 통해 알려 준다.


우리나라 성인의 7~8명은 대개 모국어 떼기 8단계 중 다섯 번째 받아쓰기에 겨우 턱을 걸고 있다. 여섯 번째 단계로도 진입하지 못한 사람이 부지기수다. 한국 (국어)교육의 뼈아픈 현실이다.


이 말은 대한민국 국민 절대다수가 한글떼기 1단계도 성공하지 못하고,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되고, 사회인이 되고, 아비가 되고, 어미가 되고, 할배가 되고, 할매가 되었다는 뜻이다. 실로 소름 끼치는 사실이 아닐 수 없다.


동시에 이 말인즉슨 우리 모국어 한글은 다분히 어려운 언어라는 뜻이다. 문자 자체는 무척 과학적인 것이 분명하지만, 자유자재로 활용하기에는 장벽이 높은 언어다.


한글떼기 1단계를 넘어 2단계까지 성공하려면 여섯 번째 문장쓰기(단순 생각쓰기), 일곱 번째 문맥 읽기(문해력), 여덟 번째 글짓기(마음짓기)를 마스터해야 한다.


이 마스터의 기간은 성실히 수행할 때를 가정해 족히 30년이 걸린다. 똑똑한 사람은 25년 정도 걸린다.


나는 대학 1학년인 스무 살 때부터 글을 썼다. 기자와 스토리텔링 에디터를 거쳐 전업작가로 26년째 글을 써 오고 있다. 그동안 10권의 책과 1권의 논문을 썼다. 신문 연재물까지 치면 더 많은 단행본 작업을 했다.


그런데 지난해 내 나이 마흔다섯에야 ‘이제 마음짓기를 할 만하다’고 느꼈다. 글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겠다 느낀 것이 글을 쓴지 25년 만이었던 거다. 하물며 완성의 단계가 아니라 시작의 단계라는 느낌이었다. 바지런을 떨어도 자그마치 25년 만이었다. 내가 살아갈 날이 25년이 될까, 나는 그게 의심스러운데 말이다.


나는 스무 살 전까지 마음짓기를 위해 노력해 본 일이 없다. 그러나 살아보니 사회인은 누구나 저마다 각자의 마음을 또렷하게 지어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이건 일종의 국민의 의무다.


작금의 박약하고 미천하고 경박한 대한민국 저잣거리와 가상공간에 떠도는 말과 글들은 국민의 의무를 모르고 산 자들의 패악질이나 다름없다. 26년간 글공부에 바지런을 떨어온 나는 그리 믿는다.


해서 나에게는 유별난 소원이 하나 있다. 나는 내 두 아들이 품위 있고 격조 있는 마음짓기의 고수가 되기를 바란다. 그전에 나는 내 두 아들이 좋은 문장력과 탁월한 문해력을 스무 살 이전에 갖게 되기를 바란다. 하여 요처의 리더가 되기를 바란다.


<아홉 살 마음 사전>은 라온이의 곱고 바른 마음갖기 사전이다. 라온이의 한글떼기 2단계의 첫 단추는 학교 선생이 아니라 아비인 내가 끼웠다.

/심보통 2025.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