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다른 재주가 하나 있다. 줍는 재주다. 아이들과 산책을 하다 곧잘 줍는 게 동전이고, 자전거를 타고 지나다 아파트 재활용 쓰레기더미에서 잘 줍는 게 귀한 책이다. 내 눈엔 동전과 책이 유달리 잘 보인다. 라온이 바론이는 아빠가 동전을 주울 때마다 “우와! 또 아빠가 동전을 찾았다!”하고 소리친다. 한번은 집앞 공원 잔디밭에서 100원짜리 동전을 한꺼번에 17개나 주운 일도 있다. 라온이는 깜짝 놀라며 싱글벙글댔다. 그 돈으로 라온이에게 편의점에서 주스와 과자를 사주었다. 횡재한 건 라온이였다.
그러고 보면 나는 어릴 적부터 줍는 데는 소질이 있었다. 직지사 어린이 불자학교를 마치고 내려오다 상가가 즐비한 출렁다리 아래 개울에서 500원짜리를 자주 주웠고, 가을운동회가 끝난 운동장에서, 철봉 아래에서 동전을 이삭 줍듯 잘 주웠다.
이제 나는 더러 문화재를 줍기도 한다. 최근 주운 문화재 중엔 해인사 소장 팔만대장경 중 반야심경(般若心經) 양각 목판이 있다. 말끔한 새 물건인데 아파트 폐가구 더미 사이에 놓여 있었다. 그걸 라온이 바론이 다니는 아파트 단지 태권도장을 가다가 순간포착했다.
이 물건의 내력은 얼마 전 대구에 출타한 해인사 만우 스님을 통해 우연히 접했다. 2000년대 해인사가 북한 돕기 운동을 벌였고, 그때 불사를 원하는 불자를 대상으로 100만원씩을 받아다 대장경 각 판마다 3장씩 판각해 북한과 해인사가 그 1장씩을 갖고, 나머지 1장은 불사한 불자가 소장한 적이 있다 한다. 아마도 내가 주운 반야심경 목판은 그 일로 소장한 불자가 내다 버린 것일 거라고 나는 짐작했다. 이 목판은 중고시장에서 30~5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나는 어제도 길을 가다 책 한 권을 주웠다. 대전시에서 발간한 무형문화유산 소개집이다. 이 책에는 ‘터주가리’ 조가 나온다. 터주가리는 흔히들 토속신앙 혹은 무속신앙이라고 하는 가신신앙(家神信仰)이 보편적이던 시절(누대로부터 이어져 1990년대까지 명맥을 유지)의 문화다.
터주가리의 터주는 집터를 지키는 지신(地神)을, 가리는 더미를 뜻한다. 한 마을의 가장 큰 어른을 이르는 터줏대감이 터주에서 나온 말이다. 터주신은 뒤란(뒤뜰· 뒤꼍·뒷마당)의 장광(장독대)에 모셨는데, 장광 한쪽에 터주신이 좌정(앉다의 높임말)할 공간을 마련해 항아리(터주단지)를 봉안했다.
단지 속에는 벼(혹은 쌀, 후엔 콩을 넣기도)를 넣었다. 이때 항아리를 볏짚으로 엮은 주저리(=유주지·유두지·유지기)로 덮는데, 이걸 덮으면 꼭 가리 같았다. 이렇게 1년을 잘 모시다, 해마다 가을이면 타작한 벼를 잘 보관했다가 시월상달(가신에게 올리기 가장 좋은 달)에 묵은 벼를 비우고 햇벼를 채웠다.
이 터주가리는 2000년대 들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불교 기독교 천주교 등 종교와 그 종파가 다양해지면서 토속신앙은 설 자리를 잃어버렸다. 또 벼농사를 짓는 사람이 거의 사라지면서 햇벼 구하기도, 주저리를 만들기도, 그 재료인 볏짚 구하기도 어려워졌다.
이 책이 나온 건 2000년인데, 그 무렵 대전 외곽의 전통마을에서 터주가리를 이어오던 74세 할머니를 인터뷰한 필진의 갈무리는 스산한 풍경을 연상케 한다. “불과 20여 년이 흐르는 사이에 가신을 구경하기란 이제 하늘의 별따기가 되었다. 더구나 그 전승자들조차 가신을 모시는 마지막 세대임을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할 정도로 전승환경은 열악한 상황이다.”
내일은 정말 오랜만에 친정 영남일보 선배님들을 뵈러 대구를 찾는다. <대전의 무형문화유산> ‘터주가리’ 조를 읽고 있자니 2년 전 영남일보를 퇴직하고 뵈었을 적에 “이제 내가 대구의 마지막 지사장이 되지 않겠냐”던 이근욱(한국경제신문 대구지사장) 선배님의 말씀이 새삼 떠올랐다. 3년 전엔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에서 손발을 맞춘, 한 장 한 장 소울(soul)을 담던 따뜻한 사진기자 손동욱 선배님도 퇴직을 하셨다. 지난해 12월 31일엔 내가 신입기자 때 “편집의 편 자를 알려면 3년은 편집을 해야 한다”고 조언한 김기오 선배님도 퇴직을 하셨다. 세월이 참말 유수 같다.
/심보통 202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