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사이 봄과 겨울 사이 실랑이는 봄쪽으로 기울었나 보다. 포근한 아침 바론이는 금빛 한복을 곱게 차려입었다. 다례 수업이 있는 날이다. 볕이 좋아 한복만 입고 네발자전거에 오른다. 평상복 위에 한복을 입은 터라 거동이 불편할 것인데도 자전거 출근을 고집한다. 엄마가 차로 가는 게 좋겠다고 하자 곰방이라도 토끼처럼 동그란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흐를 기세다. “괜찮아. 바론아, 오늘은 따뜻하니까 한복만 입고 가도 돼.” 아빠가 달랜다.
그 옛날, 그러니까 구한말 장군과 고위 관료는 초헌(軺軒)이라는 외발 수레를 타고 다녔다. 금빛 한복 입고 현관 앞 자전거에 오르는 바론이 모습이 초헌에 오르는 도련님 같아 설핏 웃음이 났다. 자전거 출근 사흘째 바론이는 아빠가 내놓은 자전거에 으레 오른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릴 때는 자전거 후진과 함께 핸들 방향을 익힌다. 어느 쪽으로 틀어야 아파트 밖으로 나아가는지 몸소 해보는 거다.
오늘은 화단 자목련 앞에 멈추었다. 엄마가 회식이 있어 함께 청사어린이집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엄마가 내려오길 기다리면서 바론이에게 자목련 꽃봉오리를 소개해주었다. “바론아, 이게 뭔 줄 알아?” “열매?” “음. 그렇지 이게 나중에 열매가 되지. 그런데 이건 봉오리라고 하는 거야. 봄이 오면 봉오리에서 꽃이 피지. 꽃이 피었다가 꽃잎이 떨어지면 목련 열매가 달리는 거야.” “아.” “꽃은 꽃봉오리라고 하고 산에 우뚝 솟은 건 산봉우리라고 해. 이거 어른들도 헷갈려서 잘 틀리는 거다.” “아빠, 나는 쉬워. 꽃은 오리라고 기억하면 돼.” “응. 맞아.” “꽃은 오리의 봉오리, 산은 우리의 봉우리. 이렇게 기억하면 돼. 역시 우리 똑똑이는 이해가 빨라.”
엄마가 내려온다. 엄마와 함께 셋이서 출근에 나선다. 첫 번째 횡단보도 앞에서 엄마와 함께 사진을 찍는다. “바론아, 엄마랑 아침에 찍는 사진 흔치 않다. 자, 멋진 포즈.” 작년 여섯까지만 해도 사진을 찍자 하면 꼭 수를 튼 바론이었다. 일곱 살이 되자 포즈를 양껏 잘 취한다.
엄마와 걸어서 출근하는 건 일곱 살 인생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현대의 편리란 알고 보면 모자간 가졌어야 할 많은 추억을 앗아갔기로 불편백배다 싶다. 지척인 어린이집을 4년간 시종 자동차로만 오갔으니 걸으며 함께 담소 나눈 추억은 자욱한 안개처럼 희미하기만 하다.
바론이는 세 번째 횡단보도 앞에서 엄마에게 지난해 킥보드 사건을 들려주었다. 엄마는 여기가 얼마나 아찔했던 장소인지 알지 못했고, 오늘도 그런가 보다 하며 들었다.
바론이는 배운 걸 잘 써먹는 아이다. 엄마에게 봉오리와 봉우리를 설명해 주었다. “엄마 꽃은 오리, 산은 우리야.” 그 정도면 100점이다.
그 횡단보도 앞에서 엄마는 회사 선배를 만났다. 엄마는 그 선배와 출근했고, 바론이는 아빠와 다른 길로 출근했다.
어린이집 앞에 당도하자 바론이가 능란하게 자전거에서 내린다. “바론아, 이 사진도 흔치 않다. 자전거 옆에 서서 멋진 포즈 한 번 해봐.” 어린이집 간판 앞에서 바론이가 포즈를 잡는다. 찰칵 금빛 한복 입은 바론이와 바론이 애마 자전거가 대전청사 다솜어린이집 간판과 어우러진다. 잘 나왔다. 짜식 잘 생겼다. 아빠에게 찡하게 허그를 한 뒤 어린이집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오늘은 장갑과 목도리를 한 채 들어간다. 날씨가 따뜻해 짐이 될 거라고 하자 잠시 생각하더니 그냥 끼고 차고 들겠다 한다. 무슨 요량이 있는 것이리라. 종이가방에 담아간 점퍼를 건네자 바론이 양손이 한 짐이다.
둘째는 분명 첫째 벼슬을 산다. 하지만 둘째는 늘상 첫째에 밀려 관심이 덜 가는 것도 사실이다. 어느 때가 되면 둘째에게 더 관심을 주겠거니 싶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늘 첫째가 관심의 첫째가 된다. 어제도 바론이는 라온이 영어학습에 뒤로 밀렸다. 외진 곳에서 혼자 놀았다. “뭐하냐”고 묻자 “글씨 지우는 놀이 중”이라고 했다.
부모는 자식이 성공할 때까지 건강하게 기다려주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아이는 금세 커버려 부모 생각대로 주고 싶은 사랑을 충분히 주기 어렵다. 해서 부모는 적기에 작심을 해야 한다. 작심을 하고도 작심삼일로 그치는 경우가 다반사다. 또 작심하고 작심해야 한다. 사람과 사물을 대할 땐 항시 주체적으로 정성과 존중(경)과 믿음을 갖고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러고도 후회와 아쉬움으로 점철되는 게 우리네 인생이다.
/심보통 2026.3.11.
*바론이는 어제 입학식에서 80명 원우 앞에서 대표로 율동을 선보였다. 엄마도 놀라고 아빠도 놀랐다. 형과는 다른 재능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