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디 보이 바론이는 오늘 아침 양껏 멋을 부렸다. 청바지에 흰 조끼에 주황 코트를 직접 코디해 입었다. 라온이 등교를 시키고 집에 오니 멋지게 차려입은 바론이가 “오늘은 입학식”이란다. 아하, 입학식 때문에 근사하게 차려입은 거로구나. 바론이는 오늘도 네발자전거로 출근을 하시겠단다.
일곱 네발자전거 첫 출근길은 매서웠다. 손은 발개졌고 목덜미는 얼얼했다. “오늘은 어제보다 더 추워. 그래도 자전거로 걸 거야?” “응. 대신 장갑이랑 목도리는 하고.” 일곱 바론이도 엄연한 생명체다. 생명체의 자기방어는 본능이다. 귀마개도 썼다. 출근 준비를 야무지게 마친 귀엽고 깜찍한 바론이에게 농을 건넨다. “오늘 바론이가 학생 대표로 선서를 하는 날인가?” “어, 그건 몰라.” 몰라가 아니라 그건 분명 아닐 것이다.
일곱 살은 어린이집에서 가장 큰 형님이다. 아이들은 어린이집 일곱 살 반에 확신한 자기부심이 있다. 형님이 된다는 것은 자기 집단에서 가장 큰 어른이 된다는 것이다. 애나 어른이나 큰 것에 대한 자부심은 매같다 싶다.
오늘 출근길엔 <대전팜 모던>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모던>은 바론이 출근길에 있다. 이번 주말에 지하도에 개장한 <모던>을 가보기로 했다. 아내가 알아보니 입장료(4,000원)가 찻값이고, 예약하면 딸기를 따고 딴 딸기를 갖고 케이크도 만들 수 있다. 비용은 2만원.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딸기 따기 농장이 있다는 건 행운이다. 그동안은 봄마다 딸기체험을 위해 논산 등지로 갔어야 했다.
“바론아, 엄마랑 스마트팜에 가기로 했어?” “응. 딸기를 따서 케이크를 만든대.” “맞아. 바로 딴 딸기로 케이크를 만들면 정말 맛있겠다. 그치?” “응. 내일 가?” “아니, 이번 주 토요일에.” “거긴 딸기 말고 뭐가 자라.” “상추, 깻잎, 치커리 같은 야채가 자라지.” “그걸 따서 집으로 가져올 수 있어?” “그렇지.” “우와, 재미있겠다.”
아파트 길 건너 <모던>을 지나면서 오간 대화다. 아빠는 <모던>을 힐끔 뒤돌아본다. ‘참 신기한 세상이다. 저 아래 농장이 있다는 거지.’ 근데 왠지 내려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썩 들지 않는다. 장기간 방치된 케케묵은 공간이란 이미지가 싱싱한 팜의 이미지를 팍 죽인다.
오늘 출근길은 어제 길과 다르다. 어제는 왼쪽으로 한 번, 오른쪽으로 한 번 횡단보도를 두 번 건넜는데 오늘은 쭉 직진했다. 신호가 직진과 맞았다. 그리고 신호 때마다 자전거를 밀고 뛰었다. 신나고 시원한 출근길이다. 어제와 달리 중무장해 꽃샘추위에도 아랑곳없는 바론이의 일성이 이어진다. “우와, 자전거를 타니까 도로 구경을 잘하네. 차로 가면 못 보는데.” “그렇지. 사람도 어떻게 다니는지 잘 보이지. 그게 자전거의 매력이지.” “아빠, 나 방금 외국인 봤어. 아기도 있네.” “그래? 외국인 엄마와 외국인 아기인가 보다.” “응.” “바론아 자전거 타면 좋은 게 또 있어. 아침바람이 무척 시원하지.” “응.” “이 바람을 아빠처럼 호하고 삼켜봐. 그럼 속이 시원하고 뭔가 뻥 뚫리는 느낌이 들어.” “후~” “흐흐. 그건 숨을 뱉는 거지.” “자, 다시 이렇게 호하고 빨아 당겨봐.” “호~.” “어때. 시원하지.” “응. 근데 좀 춥다.” “응. 흐흐. 찬바람은 한 번이면 충분해.”
어린이집으로 가는 마지막 횡단보도를 10m쯤 앞두고 또 녹색불이 들어왔다. 오늘 아침은 좀 뛰라는 날인가 보다. 횡단보도 3개 모두를 뛰었다. 어린이집 가는 길 마지막 횡단보도는 바론이와 아주아주 찡하고 징글징글한 추억이 있는 곳이다. 횡단보도를 향해 달리면서 묻는다. “바론아, 여기 생각나니.” “어어, 여기. 여기서 아빠가 도로로 내려가는 킥보드를 잡았잖아.” “맞아. 그때 사고가 났으면 우리집은 지금 없을 거야.” “왜?” “엄청 큰 사고가 나서.” “사람들 고쳐줘야 해서?” “응. 차도 고쳐주고 사람도 고쳐주고 하려면 아마 집을 팔아야 했을 거야.”
작년 5월 어느 아침이었다. 그날은 바론이가 킥보드를 타고 등원했다. 횡단보도 앞은 경사가 졌는데 그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중 바론이가 무심히 킥보드를 놓아버렸다. 불행 중 다행으로 나는 그때 시선을 아래에 두고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고, 왼눈가로 킥보드가 굴러가는 게 보였다. 본능적으로 길바닥에 엎드리다시피 해 킥보드 꽁무니를 검지중지로 겨우 눌러 세웠다. 정말 간발의 차였다. 그 채로 자동차가 종이 한 장 차이로 쌩하고 지나갔다. 재빨리 킥보드를 인도로 끌어올렸다. 그 차 뒤로 차량의 고속주행이 쭉 이어졌다. 만약 킥보드가 첫 번째 차량 바퀴에 걸렸다면 내 얼굴이 박살났을 거다. 차가 인도 쪽으로 홱 돌았다면 나와 바론이 모두 크게 다쳤거나 바론이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거다. 만약 차가 반대선 차선으로 이탈했다면 또 다른 대형사고가 났을 거다. 내가 만약 바론이를 두고 먼 산을 바라봤더라면 역시 우리 부자는 물론이거니와 그 바쁜 아침에 여러 사람이 큰 피해를 봤을 것이다. 정말이지 간담이 서늘한 아침이었다. 절로 “하느님”이 불린 날이었다. 여섯 바론이도 창졸간의 상황에 토끼눈이 돼 어쩌질 못했다. 그런 바론이에게 욱하는 심정을 토할 순 없었다. ‘아이고, 다 내 잘못이지. 오 주여, 감사합니다.’ 그저 감사한 아침이었다.
어린이집에 당도하자 바론이는 장갑을 벗고 귀마개와 목도리를 풀어헤쳤다. “바론아, 안녕. 나중에 보자.” “응. 아빠, 안녕.” 바론이는 쿨하게 어린이집으로 들어갔다.
바론이는 오후에 태권도장 차가 픽업하기 때문에 네발자전거를 도로 가져와야 한다. 돌아오는 길은 모친과 통화하는 시간이다. 자전거를 끌며 엄마와 대화를 끈다. 엄마에게 오늘 아침 바론이가 입식학이라고 보인 행동, 자전거로 출근하며 나눈 이야기를 들려주며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 도착해 비번을 누르고 들어서니 여기가 여태 우리집인 게 꿈인가 생시인가 싶다. 다시금 감사한 아침. 이번엔 부러 부른다. “하느님.”
인간은 나이가 들면 저마다의 종교를 갖는 게 보편적이다. 평생 불자였던 내 친할머니는 말년엔 별안간 기독교로 개종해 하나님을 무척 섬겼다. 장로로 생을 마감했다. 할머니는 예수를 믿으니 마음이 그리 편안할 수가 없다 했다. 인간이 신에 의지하는 심리는 인간의 나약함을 반증한다는 견해가 있다. 나이가 들면 천하장사라도 힘이 빠지게 돼 있다. 또 꼭 늙어서가 아니라 인생사의 부침 속에서 바닥으로 고꾸라질 때, 힘에 부칠 때 인간은 저마다의 신을 찾고 섬긴다. 한국인에게 유별난 점 중 하나는 위기 국면에서 단군을 찾거나 부처님을 찾는 사람보다 하느님을 찾는 이가 유독 많다는 것이다. 미스터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불자인 나도 툭하면 하느님을 부르고 찾는다.
/심보통 2026.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