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은 “사랑하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고 했다. 아이들은 사랑으로 충만하기로 “어린이는 누구나 시인이다”로 바꿔 써도 좋겠다. 시는 사유 기반의 산물이다. 사유는 앞도 보고 뒤도 보는 것, 좀더 깊게 생각하는 것, 좀더 다르게 보는 것, 다각도로 궁고(窮考)하는 것이다. 정말 그런가. 이렇게만 말하면 반풍수다. 시는 순수의 산물이다. 어린아이들은 뱉는 말이 전부 시다. 시(詩)의 파자가 말씀 언(言)에 절 사(寺)인 것에 착안, 청정도량에서 뱉는 말은 모두 시다, 시란 티끌 없는 마음이다로 풀기도 한다. 절창을 뿜어대는 시인이 있는가 하면, 있는 듯 없는 듯 순수를 흩뿌리는 시인도 있다. 인간이 ‘시를 한다’는 건 마음을 흘려보낸다는 것이다. 마음을 흘려보낸다는 것은 자기 고유의 생각과 감정을 밖으로 내보인다는 것이다. 이 깊이가 난해하게 흐르면 그이는 철학자가 되고, 이 깊이가 대중과 맞닿으면 시인이 된다. 확률적으로 그렇다. 하나 시인과 철학자는 자기 사유를 뼈대 삼는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같은 직업인이다.
오늘도 바론이는 자전거로 출근길에 올랐다. 붉은띠 번호표가 붙은 아파트 공원 가로수들을 한참 살피던 바론이가 재잘재잘 질문을 낭랑하게 쏟아낸다. 줄줄줄 마음을 흘려보낸다.
“형아는 방학이 언제 끝나?”
“형아? 방학 끝났잖아.”
“근데 방학 때도 학교를 갔잖아.”
일곱 바론이가 보기에 방학이라면서도 학교를 가고 방학이 끝났다면서도 학교를 가는 게 이상했던 모양이다.
“그건 방과후수업이란 건데. 방과후수업은 로봇, 바둑 같은 거야. 그건 수업시간에는 배우지 않고 수업이 다 끝나면 따로 신청해서 배우는 거야. 방과후수업은 방학 때도 방학하고 1달 정도는 해. 그래서 형아가 방학 땐 바론이보다 늦게 학교를 갔잖아. 9시에. 지금은 방학이 끝났으니 바론이보다 일찍 학교를 가는 거야.”
바론이가 이해했을까.
그러는 사이 문구점 앞을 지났다.
“아빠, 알파문구. 여기서 내 색연필이랑 사인펜 샀잖아.”
“응. 맞아.”
두 번째 횡단보도에 이르러 신호가 바뀌자 전기자전거 탄 사람 몇몇이 페달을 밟으며 앞서간다.
“아빠, 근데 전기자전거에는 페달이 왜 있어? 전기로 가는데.”
“그렇지. 그런데 전기자전거로 평지를 갈 때는 페달을 밟으면 운동이 되잖아. 오르막은 편하게 전기로 가고. 자, 바론이도 페달을 밟아봐.”
바론이가 페달을 밟으며 저만치 멀어져 간다.
“어때? 운동되지?”
바론이가 브레이크를 잡고 뒤돌아 말한다.
“아니. 처음 1~2번만 힘들고 그다음부터는 하나도 힘이 안 드는데.”
“그래? 그게 관성의 법칙이라는 거야. 물체는 가하는 힘이 없으면 늘 그대로 멈춰 있고, 힘이 가해진 상태에선 멈추지 않으려고 하지. 페달을 계속 밟으면 저절로 가는 것 같지 않아?”
“응.”
“너가 지난주에 가져온 알 튕기기하는 거 있잖아. 하나의 알로 1개를 튕길 때, 2개 3개 4개를 튕길 때 튕겨 나가는 힘이 다 달라. 거기도 관성의 법칙이 있어. 오늘 아빠랑 해보자.”
“그거 뒷면은 알까기야.”
“그래?”
“그럼 알까기도 해보자.”
“그건 4명이서 해도 돼.”
“알까기를 4명이서 한다고?”
“응.”
어린이집으로 가는 마지막 횡단보도인 세 번째 횡단보도에 이르자 바론이가 아주 기발한 마음을 흘려보낸다.
“아빠, 그러면 하느님이 이렇게 만들면 좋겠다. 어른들은 페달자전거를 타게 하고 아이들은 전기자전기를 타게 하고.”
“그건 왜?”
“그냥. 흐흐. 근데 아이들이 좀 무섭겠다.”
“그럼. 전기자전거 기사를 두면 어때? 그럼 편하고 안전하지 않을까.”
“으, 그건 좀….”
바론이도 하느님을 찾는다. 하느님을 찾은 바론이가 횡단보도를 건넌다. 정부청사로 진입하던 차량이 멈춰선다.
“아빠, 근데 차는 왜 만날 내 앞에서 멈춰?”
“그럼 그냥 지나가도 돼? 그러면 너가 다치잖아. 차에 박히면 크게 다쳐. 그리고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는 사람이 우선이야. 차는 당연히 멈춰야 해. 횡단보도 건널 때 오른손 번쩍 들고 건너는 거 배웠지?”
“응.”
교육전문가 조벽 교수는 “마음은 생각과 감정이 연결된 상태”라고 말한다. 바론이 마음은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다. 그 호기심을 적실히 해소해 주는 건 부모의 몫이 크다.
오늘 아침엔 자전거 바구니에 텐텐 2개, 마이쮸 2개를 넣어갔다. 출근 중에 달콤하고 시큼한 젤리를 빨아 먹으며 철학을 열심히 한 바론이다. 중간중간 자전거를 멈추고선 “아빠 텐텐” “아빠 마이쮸”라고 짧게 말한다. 그러면 아빠는 텐텐을 까서 입에 넣어주고, 마이쮸를 까서 입에 넣어준다.
“바론아, 자전거로 어린이집 가니까 뭐가 좋아?”
잠시 고민하던 바론이가 내놓은 답이다.
“젤리 먹는 거.”
“그것뿐이야? 또 없어.”
“또오, 아빠랑 함께 가서 좋아.”
마지막 텐텐은 어린이집 출입문 삼보 앞에서 홀 털어 넣는다.
그리곤 세차게 허그하곤 홱 돌아서며 오른손을 들어 빠이빠이를 딱 두 번 하고 출입문을 들어선다. ‘아빠 잘 가’란 모양새가 참으로 쿨하다. 시원해 좋다.
바론이의 오늘 마음은 텐텐처럼 달고 마이쮸처럼 시었다.
우리 아가 마음속 쫀득쫀득 호기심 입속에서 사르르르 녹았기를.
/심보통 2026.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