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난 사람들

by 심지훈

오늘 아침 바론이는 알아서 마이쮸를 3개 챙긴다. 오늘은 첫 줄넘기 시간. 체육복을 입고 출근길에 오른다. 바론이가 페달을 밟아 앞서간다. 이내 어제 본 자목련 앞에 멈춘다. 뒤돌아 말한다.

“아빠, 나 아직도 기억해. 산은 우리, 이건 오리.”
“우와, 우리 똑똑이 역시 대단하다. 바론아, 오늘은 다른 길로 가볼까?”
“좋아.”
“오늘은 저 도장 가는 길로 쭉 직진하자.”

월화수목까지는 아파트 출입문을 나와 아파트 뒤편(북쪽) 도심 공원을 가로질러 출근했다. 북쪽으로 난 쪽문을 통해 공원을 가로질러 대로로 갔다. 오늘은 서쪽으로 아파트 동들을 쭉 지나 직진해서 대로로 나간다.

6동 사는 바론이가 5동을 지나 관리사무소 앞 화단에 이르자 화단 높이를 가리키며 말한다.

“아빠 고양이는 이 정도는 점프를 할 수 있지 않아?”
“그렇지. 그정도는 하지. 근데 왜?”
“내가 본 고양이는 점프를 하지 않고 저기(1층집 화단 아래)로 다니더라.”

바론이는 관찰력이 좋다. 그렇다. 아파트 길고양이들은 웬만해선 점프하지 않는다. 습기 방지 등을 위해 아파트를 지을 때 텅 비워 둔 1층 지하도(혹은 지붕) 같은 곳으로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닌다.

바론이는 동물과 동물의 진화에 관심이 많다. <진짜 진짜 재미있는 동물 그림책> 등 <진짜 진짜 재미있는 000> 시리즈를 5권 갖고 있다. 그걸 수시로 펼쳐서 보고 읽어달라고 한다.

최근엔 진화에 대해 어린이집에서 배웠다. 집에 와서 묻는다.

“아빠, 진화가 뭐야?”
“진화는 인간이나 동물이나 생명체들이 각자의 환경에 맞게 성장하는 거야. 거북이라도 다 같은 거북이 아니야. 바론이 혹시 갈라파고스 거북이 알아?”
“아니.”
“갈라파고스라는 섬에는 땅거북이 사는데, 그 섬의 거북들은 낮은 땅에 사는 친구들이랑 높은 땅에 사는 친구들의 등껍질 모양이 달라. 이게 진화의 결과인데, 왜 다르냐면 그래야 건강하게 살 수 있거든.”

어젯밤엔 <진짜 진짜 재미있는 동물 그림책> 포유류를 함께 봤다. 바론이는 두 가지 사실을 신기해 했다.

“포유류는 어미가 새끼를 낳아서 젖을 먹여 키우는 동물이에요. 우리 바론이는 포유류에요, 아니에요.”
“포유류에요.”
“맞아요. 바론이도 엄마가 낳아서 젖을 먹여 키웠지요. 인간처럼 소, 코끼리도 포유류래요. 우와, 바다에 사는 고래와 돌고래도 포유류래요. 얘네들은 물고기가 아니래요. 바다에 사는데도 물고기가 아닌 친구도 있네요. 고래는 원래 육지에 살았는데 바다로 이사를 간 거래요. 그래서 헤엄을 잘 치기 위해서 네 다리가 지느러미 모양으로 바뀌었대요. 우리 바론이 충주에 갔을 때 아쿠아리움 가봤지요. 그곳 고기들은 지느러미가 있지요. 우리 바론이가 알고 싶어하는 진화가 여기 또 나오네요. 이게 바로 진화에요. 땅에 살던 고래가 바다로 이사 가서 잘 살려고 네 다리가 네 지느러미로 바뀐 거, 이게 진화죠.”

바론이가 형 라온이와 함께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네 발 달린 고래 흉내를 내었다가 지느러미 달린 고래 흉내를 내며 깔깔댄다.

캥거루, 코알라 같은 몸에 새끼주머니가 있는 동물들 이야기가 이어진다.

“캥거루, 코알라도 포유류네요. 근데 얘네들은 포유류 중에서도 유대류라고 한대요. 우리 친구들 따라해 볼까요. 포유류!”
“포유류!”
“유대류!”
“유대류!”
“유대류는 아빠도 처음 들어봤어요. 훌륭해요. 유대류는 어미의 뱃속에 있는 기간이 짧기 때문에 다른 동물들보다 덜 자란 채로 태어난대요. 아하, 그래서 어미 캥거루는 주머니가 있는 거로군요. 이것도 처음 알았네요. 어, 근데 코알라는 주머니가 앞이 아니라 뒤에 있대요.”
“맞아. 나 코알라 새끼가 뒤에 붙은 사진 봤어.”

라온이가 말한다.

“그래? 근데 코알라가 주머니가 있나?”
“있어. 있어.”

라온이가 스파트폰으로 코알라 사진을 찾아 보여준다.

“우와, 그렇네. 근데 그냥 매달려있는 거 아닌가. 주머니에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얘네는 태어나면 6개월 정도 엄마 주머니에서 자라고 한 살이 될 때까지 등에 업고 기른대.”

바론이는 고래가 물고기가 아니라는 사실과 코알라 등뒤에 주머니가 달렸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아파트 화단 앞을 지나다 박스가 인도를 가로막아 차도로 나간다. 억센 경상도 말을 쓰는 요구르트 아줌마를 만난다. ‘등원 요구르트’를 산다. 카드를 건넨다.

“경상도 분이시네요.”
“네. 아주머니는 어디 포항 분 같으신데요.”
“경북지방. 저는 대구요.”
“저는 김천입니다. 반갑습니다. 대전서 경상도 사투리 쓰는 분 오랜만에 뵙네요. 좋은 날 되세요.”
“네. 감사합니다.”

카드를 받고 빨대와 요구르트를 바구니에 담고 출근길을 재촉한다.

오늘은 신호가 착착 잘 맞아떨어진다. 가는 길에 러시아워로 꽉 막힌 차들 사이에서 엄마 차를 발견한다.

“엄마, 안녕!”

바론이가 손짓하자 엄마가 손짓한다. 모자간 상봉에 아쉬움은 없다. 쿨하게 지나간다.

첫 번째 횡단보도를 지나자 간판이 딸기 사진 한 가득인 <대전팜 모던>이다.

“아빠, 이번 주 토요일이 아니라 다음주 토요일이라는 거지?”
“응.”
“그러면 그냥 들어가보기만 하면 안돼? 빨리 가고 싶다.”
“응. 그냥은 못들어가고 티켓을 끊어야 들어갈 수 있어.”
“티켓?”
“응. 표가 있어야 들어가고 그래야 딸기도 따고 케이크 만들기도 할 수 있는 거야.”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다. 사실 4,000원을 내고 들어가면 된다. 두 번 갈만한가, 다음주면 케이크 만들기까지 하는데 미리 갈 필요가 있는가. 그런 사사로운 문제 앞에 티켓 이야기로 무마한 것이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사사로운 문제 때문에 무마하는 일은 다반사다.

<모던>을 지나고 두 번째 횡단보도를 건넌다. 옆으로 왜건을 미는 엄마가 있다.

“어, 저런 차도 있네.”
“바론이도 애기 때 타봤어.”
“나도 타봤어?”
“그럼 아빠가 형이랑 바론이 태우고 슈퍼문, 달구경도 다녔는데. 애기가 두 명이구나.”
“응. 두 명이네.”

애들 엄마가 말한다.

“저기, 형아 자전거 타네.”

애들 엄마가 들고 있는 어린이집 가방은 하늘색이다. 가방 앞에 깨알 같은 글씨라 어느 어린이집인지 알 수 없다. 바론이와 같은 어린이집이 아닌 것만은 틀림없다. 바론이가 앞서간다.

킥보드 사건이 있던 세 번째 횡단보도를 목전에 두고 시외버스정부청사 매표소 앞에 다다라 다른 요구르트 아줌마의 전기차를 만난다. 아줌마는 매표소 매점 안에서 매점주인과 스몰토크 중이다. 바론이는 또 관찰력을 발휘한다.

“어, 요구르트 차가 또 있네. 근데 아빠, 여기는 붕어빵 팔던 덴데.”
“맞아. 붕어빵은 주로 추운 겨울에 먹거든. 봄이 와서 붕어빵 아줌마가 들어갔나 보다.”
“힝. 나는 지금 먹고 싶은데.”
“오늘은 요구르트 먹었잖아.”
“마이쮸 먹을래.”

자전거 바구니에 담은 마이쮸를 하나 까준다. 세 번째 횡단보도 앞에 세 살배기 딸아이를 안은 엄마와 그 모녀 뒤 아빠가 있다. 딸아이 손이 고사리손이다. 앙증맞다. 아기아기한다. 그 아기가 오른손을 내밀고 있다.

“바론아, 아기한테 마이쮸 하나 주자.”
“응.”

바구니에서 마이쮸를 하나 집어 아기에게 건넨다. 아기가 기다렸다는 듯이 마이쮸를 쥐려고 손을 뻗는다. 아기 엄마아빠가 감사함을 표한다. 아기 엄마도 아까 본 두 아이 엄마처럼 하늘색 어린이집 가방을 메고 있다.

신호가 바뀌어 횡단보도를 건넌다. 정부청사 내 횡단보도 앞에서 아까 본 왜건 미는 두 아이 엄마가 옆에 선다.

“아이가 몇 살이에요?”
“일곱 살이요. 이제 졸업반.”
“아, 저희 애들은 다섯 살이에요.”

엄마가 투명덮개를 한 왜건에 앉은 두 아들에게 말한다.

“형아네. 나중에 우리도 자전거 타자.”

애들 엄마 목소리가 다감해 ‘졸업반이에요’하고, 주책맞게 매일 아침 자전거로 출근하는 사연을 장황하게 풀어헤칠 뻔한다. 왜건 엄마가 우리보다 앞서간다.

바론이가 요구르트를 조금 남긴다. 마지막 마이쮸를 향해 “아빠 마이쮸”한다. 남은 요구르트는 아빠가 빤다.

마이쮸를 까주려는데 지금은 아니란다. 어린이집 앞에서란다.

어제는 어린이집 출입문 삼보 앞에서, 오늘은 사보 앞에서 마지막 마이쮸를 홀 털어 넣는다.

뜨겁게 허그하고 빠이빠이하고 휙 들어간다. 짜식 오늘도 쿨하다.

오늘은 출근길 ‘등원 요구르트’ 빠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바론이에게 커다란 눈을 동그랗게 뜨라고 주문하고 찍었다. 귀염귀염하게 잘 나왔다. 아내에게 보냈다. “귀엽다.”고 왔다.
/심보통 2026.3.13.

▪라온이 메모
*어제 영어교과서 출판사 이름을 알아오라고 하자 이름은 까먹고 대신 표지 모양을 상세하게 알려줌. 잉글리쉬가 대각선으로 써 있고 핑크색 표지에 남자아이가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있는 그림이 있다고 알려줌. 라온이의 장점 중 하나는 경청.
*등굣길에 “수영하니까 아빠랑 하굣길 시간이 줄어 아쉽다”고 함. 라온이는 감성적인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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