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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번 남자 이야기

by 심지훈

우리 인간이 단순 도구로만 여겼던 AI에 대해 머지않아 다수의 인간이 AI에 지배당하는 세상이 도래하지 않을까 하고 각계가 진지한 고민을 시작한 것처럼, 시나브로 신(神)도 인간 연구를 아니 시작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게 아닐까 싶은 때다.

특히 한국 사회를 보면 도처가 개판으로 굴러가는 통에, 누구는 신이라 부르고 누구는 자연이라 부르고 누구는 생태라 부르고 누구는 우주라 부르고 또 누구는 한울이라고 부르는 저 하늘을 여느 때보다 망연히 바라보는 시간이 는 것은 나만의 특이점은 아닐 것이다.


12.3 계엄 이후 나는 곧잘 서재 북편의 하늘을 올려다보는 버릇이 생겼다. 저 하늘은 만날 한시도 같을 때가 없이 변화무쌍하다. 저 변화무쌍한 얼굴 한가운데 내 두 아들 라온이와 바론이가 휘영청 보름달처럼 떠 있다. 밤낮 상관없이.


올봄 우리는 저 하늘을 보면서 얼마나 전전긍긍하였던가. 신 자연 생태 우주 한울의 조화는 우리 인간이 어쩌지 못하는 말 그대로 ‘신의 영역’이다. 우리는 총과 칼 그리고 말(馬)을 앞세워 제국을 건설한 뒤, 연이어 과학을 무기로 지난 200여 년 간 신의 영역으로 무진장 무섭게 치고 들어갔다.


그런 중에 우리가 드디어 신을 이겼다고, 깨부쉈다고 우쭐할 만한 이벤트가 있었다. 지금도 그런 소식은 간간 들린다. 하지만 늘상 인간의 치적이라고 하는 것들은 드넓은 우주의 한점에 불과한 것이었고, 시간의 문제일 뿐 새로운 사실로 종전의 이벤트는 ‘교두보’ 혹은 ‘진보의 과정’ 정도로 아전인수될 뿐이다. 우리 인간은 신을 넘어서기는커녕 신의 영역에 한 발짝도 다가갈 수 없는 미약한 존재이다.


나는 내가 스스로 미약한 존재라고 느낀다. 아니 그렇다고 확신한다. 내가 신을 상대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밖에 없다. 그리고 그 하늘 속엔 내 두 아들이 있다. 천만다행인 것은 내 두 아들은 한울의 품에서 늘상 웃고 있다는 사실이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는 두 아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밖에 없다.


봄이 오기는 올까 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봄은 (좀 유별났지만) 오긴 왔고, 두 아들은 꽃가루 알레르기 탓에 결막염에 걸려 두 달을 고생했다. 그러는 중에 비가 오면 좀 호전됐다가 다시 햇볕이 짱짱하고 봄바람이 불어제치는 날이면 눈알은 벌겋게 충혈되고 눈자위는 붉어져서 돌아오곤 했다. 그러면 다시 처방받은 안약을 정성을 다해 넣어주고 나는 또 한 번 망연히 하늘을 쳐다봤다. 이번 주말을 기해 두 녀석 모두 지긋지긋한 꽃가루의 심술에서 벗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시간은 내가 어쩌지 못하고 늘 하늘이 어쩌고 있다.


두 아들이 꽃가루와 일전(一戰)을 치르는 사이 내게도 전쟁 같은 변화가 몇 가지 찾아왔다. 25년간 따라다닌 술을 물리쳤으며, 18년간 곁에 둔 지방사를 단칼에 베어버렸다. 둘 다 자해(自害)에 비견되는 일이었다. 대신 넉넉한 시간을 곁에 둠으로써 이 상처는 빨리 아물었다.


넉넉한 시간. 엊그제 아내와 상의해 가계 대출을 일시에 갚는 조치를 감행했다. 15년간 부었던 개인연금보험을 해지했다. 월 25만원씩 108회를 불입하는 데는 15년이란 짧지 않은 시간이 걸렸지만, 해지하는 데는 고작 10초 남짓 걸렸을 뿐이다. 그리고 세금 700여 만원을 제한 돈은 1시간도 안 돼 통장으로 꽂혔다. 일시에 늘어난 통장 잔고에 기분은 좋았다. 그 돈은 이내 아내 통장으로 넘어갔고, 다시 은행으로 넘어갔다. 그 시간은 3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3분이나 걸린 것도 수 천 만원을 상환했을 때 남은 원금과 이자를 확인해 봤기 때문이다.


아내에게 물었다. “이제 얼마 동안 여유가 있겠나.” 애들이 중학교 때까지는 여유가 되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나는 그 정도면 제법 승산 있는 게임을 해 볼 시간을 번 것이라 싶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돈과 시간을 새삼 아니 생각해 볼 수 없었다. 돈과 시간은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일 것 같지만 실은 돈과 시간은 일란성쌍둥이란 사실이 새삼 5월의 신록처럼 짙게 다가왔다. 내게 여유는 시간이었고 아내에게 여유는 돈이었지만, 여유는 공히 돈과 시간의 합이자 하나다.


아내에게 당장 필요한 건 가계빚이라는 누수를 봉쇄함으로써, 매달 25일이면 너무나도 당연하게 은행으로 유유히 빠져나가던 돈이 물꼬를 돌려 드디어 우리집 생활비로 안착하는 것이었다. 내게 당장 필요한 건 충분히 몰입(沒入)할 수 있는 평화롭고도 감미로운 시간이었다. 시간, 그래 내게 지금 필요한 건 월급이 아니라 시간이다. 온전히 내 실력으로 설 수 있는 시간!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려봤다. 108회 불입금 기준으로 15년 뒤 20년간 매월 35만원이 지급되는 연금을 지금부터 15년간 받았을 때를 상정했다. 보험종사자의 계산으로는 터무니없는 셈법이겠다 싶어 설핏 웃음은 났다. 그런 셈은 다분히 이성적인 아내가 곁에서 해달라고 한 적 없는 데도 친절히 해주었다. 60~80세까지 1억 원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내가 80까지 살 수나 있을까.’ 문득 이런 생각을 했고, 이런 생각을 채신머리 없이 불쑥 뱉어버렸다. “나는 80까지 살 생각이 없는데.” 내 계산은 달랐다. 만약 45~60세까지 매달 35만원을 받는다면 6,300만원의 가치가 있다고 달리 셈을 한 것이다.


돈은 왜 버는가. 필요한데 적실하게 쓰라고 버는 것 아닌가. 지금이 그 적실한 타이밍이다. 내 생각은 그랬다. 내 말년이 35만원이 없어 비틀대고 허덕일 거라는데 배팅할 까닭이 현재의 나로선 하등 없다. 나는 자신한다. 내 인생의 성공을. 그러면 된 것 아닌가.


여유를 부림으로써 모처럼 여유다운 여유를 느낄 수 있었다. 아내의 짐을 든 것은 차치하고 당장 내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는 점이 두 아들과 가족의 입장에서도 긍정적인 것이다.


지방사(史). 사람의 터잡기는 매우 신중해야 한다. 어느 중학교로, 고등학교로 진학할 것인지, 어느 지역으로 대학을 갈 것인지, 무슨 직업을 가질 것인지, 어디 사는 누구와 결혼할 것인지 등은 모두 터와 관련이 있다. 나는 지방지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그 회사에서 스토리텔링이란 이색 분야를 경험함으로써 지방사와의 끈을 남들보다 견고하게 맬 수 있었다.


그런데 3년 전 신문사를 정리하면서 더는 지방사의 끈을 바투 맬 필요가 없어졌다. 지방사만으로는 가계를 책임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재를 정리하면서 조강지처 내쫓는 독한 서방의 마음으로 18년간 함께해온 지방사 관련 책들을 일거에 쓰레기통에 처박아버렸다. 버리는 김에 보조책상도 내버렸다.


책과 보조책상이 빠진 빈자리에 의자 두 개를 놓았다. 두 아들의 독서의자를 놓은 것이다. 아홉 살, 여섯 살 두 아들의 독서공간은 이제 침실 이층침대의 2층에다 아빠의 서재까지 공간이 늘어났다. 아이들은 특정 공간을 설정해주어야 능률을 발휘한다. 아이들에게 능률의 힘은 놀이의 값과 같다. 삼부자가 책을 읽는 공간, 책과 노는 공간. 좋다, 좋다 너무 좋다.


지방사 관련 책 수백 권을 일시에 처분하면서 든 생각은 거듭 말하지만 터잡기의 중요성이다. 내가 만약 사회생활을 다른 지역에서 다른 직업으로 시작했다면, 내 인생이 어찌 흘러왔을까 싶어 또 한 번 서재 북창 너머 높다란 메타세쿼이아들보다 훨씬 더 높은 저 하늘을 올려다봤다.


술. 술은 사람 잡는 요물이다. 술을 끊겠다고 공언하고 다닌 지가 2년이 넘었다. 제 버릇 남 못 준다고 2년을 질질 끌며 금주를 연장하고 연장했다. 그러다 한 가지 이유와 한 가지 각성으로 진짜 술을 끊었다.


이제 두 아이들이 송곳처럼 찌른다. “아빠는 좋아하는 술을 마시면서 왜 우리는 좋아하는 유튜브를 못 보게 해. 그럴 거면 아빠도 술을 끊어!” 내 얼굴이 붉어진 건 술기운 탓만은 아니었다. 아이들의 일격에 부끄러움이 낯빛의 홍조를 더했다. 아이들에게 좋은 습관을 물려줘야 할 의무는 아비인 내게 있다. 이게 내가 술은 끊은 한 가지 이유다.


지난 4일은 가시할머니(처 할머니를 이르는 북한말)의 첫 기일이었다. 장인이 제사에 참석했으면 해 처가를 찾았다. 7남매 맏이인 장인의 식구는 우리집에 비하면 그야말로 대가족이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지낸다는 처 할머니의 제사는 두 아들에게 돈 주고도 볼 수 없는 귀한 경험이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 지내는 제사는 나도 본 적이 없고, 아이들은 더더군다나 없다.


제사를 마치고 식사를 하는데 처 막내삼촌이 음복으로 술을 돌렸다. 그 장면, 그 찰나, 그 대사에서 ‘아, 내가 술중독이었구나’를 깨달았다.


장인을 비롯해 처의 둘째 고모부, 처의 막내삼촌 그리고 처남과 나까지 모두 술을 밥 먹듯 한 사람들이었다. 모두들 얼굴이 붉거나 시꺼맸다. 처의 막내숙모가 말했다. “만날 술이야. 안 마시는 날이 없어.” 처의 둘째 고모가 말을 보탠다. “고모부는 병원에서 술을 끊으라고 해서 못 먹는다”.


제사 전날, 장인과 처남, 나는 코가 삐뚤어지도록 술을 마셨다. 어린이날을 앞두고 장모가 맛있는 소고기를 사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계산은 장인이 했지만, 맛있는 소고기는 술을 술술 불렀다. 장모와 아내와 아이들은 먼저 집으로 돌아가고, 남자 셋이 경주 구도심을 술김에 흥얼대며 비틀대며 걸었다. 2시간쯤 걸었을까, 술이 좀 깬다 싶자 남자 셋은 또 술집을 물색했다. 술이 술을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시간까지 하는 술집은 없었다. 아내는 그 시각 ‘이제 그만 들어오라’고 성화다.


궁여지책으로 남자 셋은 슈퍼로 향했다. 거기서 회를 사고 소주를 샀다. 이날 남자 셋이 마신 소주가 15병 위인가 아래인가 그랬다. 그랬는데, 처남은 이튿날 음복으로 또 술을 마셨다. 친척들이 다 돌아가고 홀로 앉아 또 마셨다. 나는 생각했다. ‘아, 내가 장인과 처의 둘째 고모부와 처의 막내삼촌과 저 처남과 같아서야 되겠나.’ 자각이요 각성의 목소리가 내면에서 울려 퍼졌다. 다음 날 아침을 먹으며 처남에게 말했다. “정훈아, 나는 이제 술을 고만 먹기로 했다.” 장모가 옆에서 용하다는 듯 쳐다봤다. 처남에게는 지난번 우리집에 왔을 때 그런 언질을 주었다. “애들 보기 부끄럽다”면서.


내가 보기에 애주가 호주가 주객으로 불리는 음주가가 술을 끊기 어려운 결정적 이유는 반주습관 때문이다. 이 반주습관이 아니라면 술은 담배와 달리 작심하면 금방 끊을 수 있다. 반주는 우리나라 고유의 술문화다. 나는 기자로 있으면서 담당데스크(부장)에게 반주를 비교적 일찍 배웠다. 반주는 밥을 먹을 때 곁들여 마시는 술인데, 이 반주는 처음에는 말 그대로 반주일 뿐이다.


그런데 반주가 익숙해지면 그냥 술이 되고, 그 술은 만날 먹는 밥이 된다. 만날 먹는 밥처럼 만날 먹는 술. 그렇게 우리는 자신이 술중독인 줄 모르고 나쁜습관을 삶의 기둥으로 끌어안고 산다. 딱 술주정뱅이 모양이다. 기자들 중에는 술중독자가 많다. 기자가 아니어도 반주를 배운 사람은 거개가 술중독자다. 그걸 스스로만 모를 뿐이다.


술 끊기-지방사 끊기-대출 끊기는 모두 하나로 관통된다. 시간 벌기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나라 사람들은 시간을 허투루 쓴다. 자기 인생을 방기하는 것은 술중독자나 퇴직자나 별반 다르지 않은 게 우리네 현실이다.


나이가 들면 뇌와 몸은 그 기능이 자연스럽게 퇴화한다. 아무리 좋은 걸 먹고 운동을 한다 해도 세월 앞에 이길 장사는 없다. 시간을 잘 관리해야 한다. 버릴 건 과감하게 버리고, 수렴을 잘 해야 한다. 어쩌면 우리 인생은 수학의 미분과 적분 총합이라 봐도 좋다. 순간적인 변화를 정교하게 꺼내고 무수한 변화를 정교하게 합치는 기술이 각자의 시간 안에 잘 놓여야 한다.


술을 끊으면 차(茶)가 반기고, 지방사를 끊으면 인류사가 반긴다. 대출을 끊으면 누가 반기나. 바로 세상 아래 유일무이한 동지이자 적, 아내가 반긴다. 반가움 속에 생기가 돋고 생기가 돋는 중에 일은 순리대로 탄탄대로다. 마흔 중반 이후엔 시간을 인생 퍼스트로 놓을 이유다.


아, 하나를 더 놓았다. 물구나무를 쉽게 설 수 있는 에너드 스트레칭 비움 의자다. 책을 읽다가 머리가 아프면 물구나무를 서서 혈액순환을 돕자는 심산에서다. 아이들도 아내도 물구나무 서기를 재미있어 한다. 효험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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