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주체적인 삶’에서 ‘주체적인 삶이란 어떤 것인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국어사전에서 ‘주체적’이란 형용사(이면서 명사)를 찾아선 안 된다. 그 아래 나오는 ‘주체(主體)’란 명사를 찾은 뒤 첫 번째, 두 번째 뜻 말고, 세 번째 뜻부터 헤아려야 한다. 그 다음 ‘주체적’을 사전적 풀이 말고 ‘주체적 해석’으로 소화해야 한다.
■주체
-어떤 단체나 물건의 주가 되는 부분.
-사물의 작용이나 어떤 행동의 주가 되는 것.
-문장 내에서 술어의 동작을 나타내는 대상이나 술어의 상태를 나타내는 대상.
주체의 세 번째 뜻을 보면 문장의 주어와 동격이란 걸 알 수 있다. 주어는 한 문장의 주인이다. 주인은 ‘중심, 으뜸’이란 의미와 함께 ‘스스로’란 함의를 갖는다.
문장의 주인이 인간계로 넘어오면 “내 인생의 주인은 나”처럼 쓰이고, 문장과 마찬가지로 나라는 인격체는 중심, 으뜸, 스스로의 뜻을 갖는다.
스스로에 방점을 두면 ‘나’를 뜻하는 한자어 ‘자아(自我)’에서 그 ‘스스로성(性)’을 보다 명징하게 분별할 수 있다. 자아의 반대말·상대어는 타자(他者)인데 한자 생긴 꼴을 봐도 ‘나와 다른 놈, 나와 다른 자’가 타자고 ‘스스로 선 자, 스스로 한 자’가 자아인 걸 알 수 있다.
이렇게 ‘나=주체’는 물론 ‘주체=주어=나’가 한뜻임을 간파할 수 있다.
주체의 첫 번째, 두 번째 뜻에서 ‘주가 되는’이라는 뜻은 그러니까 ‘스스로 하여 주인 된다’는 뜻이다.
주체에서 파생된 주체적은 ‘스스로 성’을 아래와 같이 담고 있다.
■주체적
-어떤 일을 실천하는 데 자유롭고 자주적인 성질이 있는 것.
-어떤 일을 실천하는 데 자유롭고 자주적인 성질이 있는.
‘자유롭고 자주적인 성질’이란 곧 ‘스스로 함(혹은 스스로 하는 성질)’을 달리 표현한 것이다.
2.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주체(=주인)의 뜻이 담긴 으뜸 말은 수처작주(隨處作主)가 아닌가 한다. 임제라는 선사가 남긴 선어인데, 어느 시대 인물인지는 불분명한 채 그 말만은 유명해 현대차 정몽구 회장, 정치인 손학규 씨 등이 좌우명으로 삼는 것이다.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 한짝이다. ‘가는 곳마다 주인 되고, 머무는 곳마다 진실 하라’는 뜻이다.
후학들은 ‘어느 곳이든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면 그곳은 모두 진리다’는 뜻으로 임제 선사가 남긴 것이라고 풀이한다.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려면 어찌 해야 할까. 스스로 뭔가를 해야 한다. 그런데 그냥 뭔가를 하면 안 된다. 스스로 뭔가를 하고도 타자의 타박을 받지 않고, 눈흘김이나 불편한 심기를 느끼지 않으려면 내공(內功)이 강해야 한다. 내공은 오랜 기간 다져진 힘이다. 내공을 쌓는 방법은 세 가지다. 드넓은 경험을 하거나 드깊은 공부를 하는 것이다. 경험과 공부를 두루 하는 것이 그중 좋다.
스스로 센 자에게는 강한 기운이 뿜어져 나온다. 자신감이다. 강한 기운을 가진 자에게는 누구라도 섣불리 붙지 못한다. 강한 것은 실력이고 실력은 곧 기운이다. 기운이 약한 자는 주변을 불평불만의 대상으로 삼는다. 대안을 내놓기는커녕 자기불만에 가득차 있다.
내공의 초석은 기본 쌓기부터다. 기본도 없는 것들이 숙련자를 하루아침에 따라잡으려 한다. 그러니 하수 소리를 듣는 거다. 하수는 경이원지(敬而遠之·공경은 하되 가까이하지는 않음)와 인기아취(人棄我取·다른 사람이 버린 것을 자기가 거두어 씀)의 묘를 잘 살리면서 고수 옆에서 ‘서당개 삼년’이 돼야 한다.
3.
근자에 본 ‘주체적인 삶’의 모범으로는 미국 강연 에이전시 WSB 공동창업자 버니 스웨인의 스토리가 있다. 스웨인에 따르면 이 회사에는 정식 계약서가 없다. 연사가 회사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단다. 때문에 WSB는 ‘그저 올바른 일을 하라(just do what is right)’가 신조가 됐고, 이후에는 사규가 됐단다. 스웨인은 “(그랬더니) 각 직원은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배우고 생각하는 능력을 길렀다. 그 덕분에 자사에 많은 리더들이 생겼다”고 했다.
‘글쓰기의 시작’이란 글에서 나는 이렇게 말했었다.
“내 글은 내 손을 떠나면 공공재다. 누구든 활용해도 좋고 나누어도 무방하다. 대신 내 글로 문제가 생기면 내가 책임을 지겠다. 나는 그것이 진정한 글쟁이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WSB의 스스로 성과 내 글의 스스로의 성은 한가지라고 나는 생각한다. 무르익어 단단해지면 그칠 것이 없는 것은 당연한데, 신입사원이 소신껏 명료하게 툭툭 해결하면 될 싹으로 예의주시하며 예우를 해줘야 한다.
4.
한편 주체적인 삶을 영위하는 것도 타고난 기질 덕이 7할이라고 보면, 절대 다수의 생물학적 어른들은 보통 이상의 노력을 기울여야 스스로 성을 겨우 발현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세상 쉬운 일은 없지만, 타자를 불평불만할 시간에 자아를 다지는 게 자신의 정신건강에도 좋다. 이것이야말로 진리고, 진리를 따르다 보면 주인 된 삶, 주체적인 삶의 궤도에 오를 수도 있다.
부언 : 삶은 어느 때가 되면 살아온 가락대로 살아가는 게 순리일 수 있지만, 그 가락이 잘못 됐다면 남은 삶을 위해서라도 수정, 제 궤도에 진입하려 애써야 옳다. 헌데 현실을 보면 살아온 가락이 잘못 됐는데도 그 가락대로 살면서 스스로를 옥죄는 아둔한 자들이 적지 않다.
공자는 양약고구 충언역이(良藥苦口 忠言逆耳·좋은 약은 입에 쓰고, 충성스러운 말은 귀에 거슬린다)라고 했는데, 요즘은 진심 담은 말들도 미세먼지로 뒤덮인 하늘에 부질없이 흩뿌려지는 인공비와 같을 때가 적지 않다. 쓴맛이 이만저만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