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이 등굣길에 만난 연못에
청아한 분홍연꽃이 피었다.
형 배웅한 아직도 아가 같은
작은아이한테 연꽃을 소개해주자
서로 손인사를 나누었다.
맑음과 맑음의 만남
순수와 순수의 회우.
진흙 속에서도 티끌 하나 없이 피어
처염상정(處染常淨)의 화(花)라는 생명,
연꽃은 더러움과 깨끗함의 이분법을 해탈했다.
또 다른 이름은 해탈화.
아빠는 연꽃 앞이라면 울을 넘어도 좋겠다 싶었다.
연못 밖에서 연못가로 들어가 사진 한 장 찍었다.
하굣길에 큰아이한테도 연꽃을 소개해주어야지.
맑음과 맑음의 만남
순수와 순수의 회우.
기대되는 오후.
오늘 아침 연꽃을 만나 6.3대통령선거날 투표장에 나가기로 나는 결심했다. 가서 기호 2번 김문수 후보를 찍기로 결심했다. 나는 내게 투표권이 주어진 이래(김대중부터 윤석열까지) 대통령선거에서 내내 기권표를 행사했었다.
그런데 이번만은 기호 2번 김문수 후보를 찍으러 나갈 마음을 먹었다. 연꽃처럼 청정과 오염의 이분법을 해탈할 수 없는 인간계의 빅이벤트 중 하나인 대통령선거에서 이번처럼 황당한 후보들을 본 일이 없다. 그런데 가장 황당한 후보(기호 1번)가 대통령 당선이 확실시된다 하니, 나는 떨어질 후보일지언정 가장 황당한 후보가 당선되는 꼴을 눈 뜨고만 지켜볼 수 없어 주권을 행사키로 작심했다.
나는 12.3 계엄으로 탄핵당한 윤석열에게 ‘내란수괴’라는 꼬리표가 달린 걸 여적 이해하지 못한다. 수괴는 우두머리라는 뜻이 아닌가. 그렇다면 수괴 아래 졸개들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12.3 계엄은 삐뚤어진 자기 세계관에 갇힌 윤석열의 자작극이었음이 큰 윤곽으로 드러났다.
어째서 김문수와 윤석열이 같다고 할 수 있는가. 당이 같다고 해서 어째서 김과 윤이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가. 윤석열의 탄핵으로 나머지 후보들 중 가장 큰 세를 가졌기로, 어째서 가장 황당한 후보가 대권을 거저먹을 수가 있는가.
그래도 전 대통령 윤석열은 개인비리는 없었다. 민형사상 송사가 없었다. 하지만 이재명은 역대 유력 대통령 후보들 중 단연, 최다로 개인비리 혐의가 많다. 국가지도자로서는 최악의 인물인 것이다.
난세를 뚫고 나온 게 상대 당의 김문수 후보다. 김 후보는 어느 정치인들보다 국가관이 투철하다. 고용노동부 장관을 하면서 자기 색을 선명하게 그리고 뚜렷하게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청렴하다. 그의 재산을 보면 아직도 이 나라 정치인 중에 저리도 깨끗하게 산 사람이 있나 싶을 정도다.
또 윤석열의 아내(이름을 거론조차 하기 싫다.)와 문재인의 아내를 생각하면, 김 후보의 아내는 성자에 가까운 삶을 살았다. 그의 자식들 역시 건전하다고 알려져 있다.
종합적으로 김문수 후보의 국가관, 청렴성, 아내의 도덕성, 자식의 건전성 등이 ‘윤석열 자작극’을 단죄해야 한다는 쪽의 한동훈마저 최종 경선에서 물리칠 수 있었다.
이 점은 개화한 대한민국에서 아주 중요하다.
거듭 말하지만 윤석열이 어째서 내란수괴인가. 무슨 쪽수가 있었어야 수괴라도 될 일 아닌가. 그저 정신 나간 한 사람의 자작극이라고 해두자. 그 정신 나간 일인이 대통령이란 직분이었다는 점은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쯤에서 새 술을 새 부대에 부을 준비를 하자.
이번 대선에서 가장 황당한 후보가 이재명이라면, 가장 위험한 후보는 이준석이다.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이준석은 이제 겨우 마흔이다. 박근혜 키즈로 정치에 입문한 게 스물일곱 때였다.
윤석열 이후 대통령으로는 두 번 다시 뽑지 말아야 할 인물이 있다.
1. 인기에 영합한 자.
인지도가 있다고 실력이 있다고 착각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2. 결혼하지 않은 자.
결혼도 안 해 본 유치(幼稚)한 자가 어찌 국가 대사를 논할 수 있는가.
3. 애도 안 낳아 본 자.
애도 안 낳아 본 자가 어찌 조건 없는 무한 사랑과 깊고 넓게 보듬는 사랑을 알 수 있단 말인가, 할 수 있단 말인가.
4.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자.
상명하복의 특별한 경험을 하지 않은 자, 그 특별한 경험을 통해 굽힐 때와 주장할 때를 익히지 못한 자가 어찌 나라를 경영할 수 있는가.
5. 사유 공간(혹은 법)이 없는 자.
자기만의 사유 공간과 방법이 없는 자가 어찌 국가 위기 상황을 맞아 적실하게 처신할 수 있는가.
대통령의 자질로는 이밖에도 수없이 많을 것이다.
하나 이 기본자질 중에서만 보아도 이준석은 1~4는 자격미달이고, 5도 갖추지 못했다. 그의 언행이 5의 부족을 알려준다.
자작극은 범죄자의 범죄만큼 위험한 것이고, 싸가지는 자작극과 범죄 둘을 합친 것 이상으로 위험한 것이다.
범죄자를 대통령으로 올릴 까닭도 없지만, 싸가지없는 자를 대통령으로 올릴 까닭은 더더군다나 없어야 한다.
싸가지는 예(禮)와 직결된다. 예는 정(情)으로 통한다. 군대에서 눈물 젖은 초코파이 하나 안 먹어본 자가 무슨 전우애의 애(愛)을 알고 초코파이의 정(情)을 알겠는가.
나는 범죄혐의자 이재명을 지지한다는 국민이 10명 중 4.8~5명이라는 사실에 경악한다. 이 사실이 윤석열의 자작극보다 100배 1000배 10000배는 더 개탄스럽다.
이보다 더 개탄스러운 것은 싸가지없는 이준석이 차세대 지도자감에 올라 있다는, 대선후보군에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 사실이 이재명의 경우보다 더더욱 개탄스럽다.
정치경력 30년이 넘도록 삶의 과정을 깨끗하게, 진중하게, 조심조심 밟아온 김문수 후보를 대통령에 올리는 것만이 개탄스러움을 상쇄하는 길이다.
현재로선 그렇다.
6.3대선은 옳은 인간을 뽑는 마지막 보루다.
보편적 상식이 승리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