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묘>가 ‘맥락없이’ 1000만 관객을 돌파한 건 근자의 일이다. 최근 불거진 연예 기획사 하이브(HYBE)와 자회사 어도어(ADOR) 간 경영권 갈등 논란 중 돌출된 건 어도어 대표의 ‘독특한’ 경영방법이었다. <파묘>와 하이브-어도어 간 논쟁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주술’이다. <파묘>가 영화 비성수기에도 ‘신의 수’ 1000만 고점을 넘어선 건 신비에 가깝다. 단순히 최민식 유해진 김고은 등 기라성 같은 주연들의 티켓파워로도, (<서울의 봄>보다 못한) 스토리라인으로도 그 신비를 설명할 수는 없을 터다. 하이브-어도어 간 초기논쟁이 뜨거웠던 이유 중 하나는 어도어 대표의 ‘주술 경영’이었다. 어도어 대표가 무당의 코치를 받아 경영을 해왔다는 게 모회사 하이브의 폭로였다.
‘주술(呪術)’이 사회 이슈가 되는 건 우리 국민의 주술에 대한 양가적(兩價的) 감정 때문이다. <파묘>에서의 주술은 단순 호기심이고 원초적 끌림에 기반한다. 이 분석이 아니라면 맥락없는 1000만 관객을 설명할 길이 없다. 하이브-어도어 논쟁에서 주술은 미개와 비과학을 겨냥한다. 이 분석이 아니라면 하이브가 콕 집은 직격을 설명할 길이 없다. 끌림과 직격 이것이 주술에 대한 우리 현대인들의 양가적 감정의 실체인 것이다.
<한국문화의 뿌리를 찾아>의 저자 존 카터 코벨(백인 최초 일본학 박사)은 “세상을 놀라게 한 신라의 유명한 금관에서도 여러 가지 장식의 상징과 흔들리는 소리에 무속 문화의 묘미가 있다”며 무속(巫俗)에 한국 문화의 독자성(獨自性)이 있다고 간파했다. 한국학 전문가인 최준식 이화여대 교수는 “무교는 (무교를 천대시했던) 조선이라는 기나긴 역사 속에서도- 기층부의 대표적인 종교로서 그 자리를 내어준 적이 한 번도 없었다”며 “더구나 민속 예술을 논할 때 무교를 거론하지 않는 것은 차라리 어불성설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 민족이 단군과 함께 역사를 시작했다면, 우리는 무교와 더불어 문화의 전개를 시작한 것이 된다”고 했다. “단군(檀君)이 곧 무당(巫堂)이었다”는 것은 학계의 정설이다.
주술에 관한 이 양가적 감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려면, 한자(漢字)를 살펴야 한다. 한자 중에서도 그 모태인 갑골문(甲骨文)을 탐구해야 한다.<*우리가 배운 한자의 원형을 일러 ‘설문해자(說文解字·9,353자)’라 하고, 설해문자의 뿌리가 갑골문이다.> 갑골문은 한자의 가장 오랜 형태를 보여준다. 거북의 등딱지나 짐승의 뼈에 새긴 상형 문자다. 주로 점복(占卜)을 기록하는 데에 사용했다. 1899년 은대의 갑골문이 중국에서 다량(약 3,000자) 발견됐다.
우리가 배운 한자(漢字)는 설문해자 중에 별도로 1,800자를 추린 것이다. 1970년대 박정희 정부가 마련한 ‘상용한자 1,800’이 그것이다. 이런 식으로 중국은 2,205자, 일본은 1,945자를 기본으로 배운다. 그런데 이 한자들은 기본적으로 갑골문(甲骨文)을 비튼 것들이다. 때문에 원뜻이 왜곡됐거나 전혀 다른 뜻으로 사용됐다.
대표적인 게 글월 문(文) 자다. 한때 문사철(文史哲) 열풍이 분다고 언론에서 야단법석일 때 ‘인문학(人文學)’을 두고 ‘사람 마음에 무늬를 새기는 학문’이란 그럴싸한 풀이가 볼록 솟아났다. 하지만 文은 이런 감상적 풀이와는 무관하다는 게 갑골문을 풀어낸 학자들의 설명이다. 文은 ‘죽은 사람 몸에 심장을 그려넣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죽은 사람 몸에 심장을 그려넣음으써 부활을 기원하는 의식이 담긴 글자가 文이다. 그러니까 文은 주술적 그림을 그려넣었던 문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글자다. 이렇게 보면 <파묘>에서 무당으로 분한 김고은이 액운을 막기 위해 얼굴을 한자(태을보신경·귀신을 퇴치하는 축경)로 치장한 모습은 文의 문화가 수천 년째 전승 중이라는 의미가 된다.
이번엔 법(法) 자의 경우를 보자. 우리는 중고교 시절 “생긴 모양을 잘 풀이하면 그 음과 뜻을 쉽게 알 수 있는 게 한자”라고 배웠다. 어설픈 이야기다. 이 쉬운 法이 어째서 우리가 알고 있는 법이 되는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법은 물 수(氵) 변에 갈 거(去)가 합쳐진 글자다. 법은 ‘가다’와는 무관하고, 물(氵)은 어째서 붙었는지 아리송하기만하다. 갑골문 풀이를 통하면 法에는 이런 스토리가 담겼다. ‘동아시아 고대사회에서는 시비가 붙으면, 당사자 둘을 물가에 앉혔다. 그리고 검은 양을 두 사람 등뒤에 세운 뒤 아무나 들이받게 한다. 양에게 들이받혀 물 위에 고꾸라진 사람이 잘못한 사람이고 범인이다. 재판관인 무당은 이 범인을 자루에 넣어 물 속에 빠뜨린다.’ 法에 氵가 붙은 이유다. 오른쪽 去는 검은 양과 주술을 지껄이는 모습이 변화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일러 법치국가(法治國家)라 한다. 이런 맥락을 알고 나면 왜 법치가 이현령비현령식으로 황당하게 구현되는지 좀은 이해되기도 한다. 고대나 현대나 미개하긴 마찬가지다. 미개하다는 말은 야만스럽다는 뜻이다. 야만스럽다를 거칠게 표현하면 돌깡패 같다는 것이다.
조상을 뜻하는 조(祖) 자는 어떤가. 시(示)와 차(且)가 합해진 글자다. 이것이 어째서 조상을 뜻하는 것인가. 示는 제단의 모습을, 且는 남성 성기를 상형해낸 것이다. 이 글자는 남성 우월의 가부장 제도를 상징한다. 가부장제는 청동기 전반에 형성됐다고 알려져 있다. 이 발생론적 이유 때문에 제례에 여성이 참석하지 못하는 것이다. 제례는 사내들만의 은밀한 축제였다. 조선중기 성리학의 대가로 명성을 떨친 일두 정여창 선생의 생가에는 야릇한 보물 하나가 여적 전해져 내려온다. 바로 남근석이다. 이 남근석은 안주인이 거주하는 안방 아래 꼿꼿하게 서 있다. 꼭 且 자를 닮았다. 일두 선생 집안은 대대로 손이 귀한 집안이었기로 일두 선생 부친이 자신의 아내에게 좋은 기(氣)를 받으라고 안방 밑 곳간(庫間) 한켠에 남근석을 세워둔 것이다. 일종의 비보(裨補)인 셈인데 그 수가 적중해 일두 선생 부모님은 여창이라는 옥동자를 생산한 것이었다. 남근석(且)을 세워 고추를 얻은 묘법- ‘고추’는 씨의 대물림이자 제사의 상징으로 더없이 귀했다.
이번엔 유학 혹은 선비를 뜻하는 유(儒)를 보자. 이 글자는 은나라 때는 없던 글자다. 주나라 때 필요에 의해 생겨난 글자다. 儒는 사람 인(亻) 변에 필요 수(需)가 합쳐진 글자다. 고대 한자에서 亻은 사람뿐 아니라 남성, 성인 그리고 사회적 신분이 만만치 않은 사람을 뜻했다. 需는 비 우(雨)와 말미암을 이(而)로 쪼갤 수 있다. 이 조합 역시 석연치 않다. 자형 풀이로는 넘어설 수 없다. 而는 원래 ‘서 있는 사내의 모습’이다. 자형으로 보자면 턱(一) 아래 늘어진 수염을 상형한 것이다. 여기까지 보면 儒는 ‘성인 남자+비+성인 남자’로 이뤄져 있다. 이제 궁금증은 雨로 가닿는다. 雨만 풀면 儒의 실상을 알 수 있다. ‘비’는 고대 농업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그리고 그 자연현상을 관리하는 이는 성인 남자였다. 신이 아닌 인간이 자연현상을 관리한다고? 그렇다. 그가 바로 무당이다. 儒란 바로 ‘비를 부르고 멈추게 하는 존재’였다. 儒는 정치적으로 왕에게 종속돼 있었다. 儒는 왕의 정치적 고민을 주술적으로 해결해주는 해결사였다. 정리하면 儒는 은나라 출신의 무당 집단들이었고, 주나라의 제례를 관장하는 제례장들이었다. 또한 고대의 관리와 행정을 담당했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공무원이기도 했다. 뿐이랴. 만인의 스승이란 점에서 오늘날의 선생이기도 했다. 결국 儒란 농업에서 빼놓을 수 없는 ‘비’를 들어 문자화한 것이다. 우리가 배운 대로 유학이나 선비를 상징하려는 뜻은 전혀 없다.
사회과학의 아버지 오귀스트 콩트는 인류 역사의 과정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옛날에는 종교가 사상계의 큰 영역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성적 철학사유가 증대되면서 정신계의 큰 부분이 철학을 계승했다. 그러다가 근대사회로 접어들면서 과학의 발달과 더불어 종교는 설 자리를 상실해가고 있다.” 이에 대해 인간학의 아버지 막스 셸러는 이리 맞불을 놓고 있다. “인간은 종교적 신앙, 철학적 사유, 과학적 영역을 동시에 갖고 있으나 시대와 사회적 여건에 따라 비중의 차이가 있을 뿐 탐구의 과제와 영역이 다를 뿐이다.” 누대로부터 골수처럼 박혀 닿은 기저문화가 AI세상이 아니라 AI할애비 세상이 된다고 해서 어느 종의 멸종처럼 완전 사멸하겠는가.
인불충신 사개무실(人不忠信 事皆無實)이랬다. 사람에게 충실함과 믿음이 없으면 모든 일에 실상이 없게 된다는 뜻이렸다. 저마다 한번 사는 인생이다. 인생고수 헤르만 헤세 선생이 조근조근 알려준다. “이기주의에는 두 종류가 있느니. 하나는 자신의 이익만 챙기는 것이지비.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숨기지비. 물론 조금씩 내비치기도 허구. 다른 하나는 내 재능과 힘과 능력을 힘껏 발휘해 세상과 다른 이들에게 헌신하는 이기주의. 두 번째 이기주의의 길은 몹시도 험난한 법. 그럼에도 이 길을 가는 아름다운 이들이 있느니.” 네 조대로 살되 충과 신을 모시고 사소. 이런 말씀이렸다.
오늘도 조우성 변호사는 페북에 주구장창 AI 이야기로 도배요, 한 단체 심마니 100여 명은 지난주 일요일 강원도 정선 가리왕산 해발 700m 고지에 일정 때 왜놈들이 세웠다는 산삼봉표(탑) 앞에 통돼지 놓고 떡 놓고 전 놓고 술 놓고 산신령께 시산제(始山祭)를 지냈다. 뿐이랴. 누구는 이 고물가에도 이사비 곱절인 손 없는 날을 택해 이사를 오고 간다. 동티나지 말라고 축경을 온 얼굴에 써놓은 김고은이도 그 덕에 <파묘>를 미친 듯이 잘 찍었다나 어쨌다나.
다시 헤세 선생 가로대 “모든 사람의 삶은 제각기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지비. 자신에게 이른다는 거슨 ‘나답게 사는 삶’을 좇는 것이제 하모. 내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자신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어떤 순간에도 중심을 잃지 않는 삶. 이런 삶이 쉽겄냐 어렵겄냐. 결코 쉬운 벱이 아니겄제. 그렇지만서도 한 걸음 한 걸음, 연습하고 습관화하면 어느새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자신을 만나게 될 것이여. 하모 하모.” 어라, 이 말씀 또한 네 소신껏 사소, 이런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