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의 수사, 김문수의 반수사

by 심지훈

병원에 여행가서 라온이 바라지를 하다가 닷새 만에 아내와 교대하고 집으로 왔다. 집은 정적이 흘렀고 평화로웠다. 좀 덥다 싶었지만 에어컨 소음으로 가득 찬 병실보다는 훨씬 좋았다.


저녁답에 바론이가 패드를 충전시켜 달라고 했다. 아내가 충전기를 챙겨간 탓에 여분의 충전지를 찾다가 7년 전인 2017년 메모를 발견했다. 내 수첩에 써진 아내의 메모였다. 모두 넉 장.


처음엔 부부 싸움 뒤 응기난(무척 화가났다는 뜻의 경상도 방언) 아내가 자신과 나와의 특이점과 이상치를 분석한 메모인가 싶어 ‘별걸 다 했구만’ 하고 기분이 묘했다. 끝까지 넘겨 보니 언제고 아내가 들려준 라온이 이름 관련 상담 내용이었다.


거기엔 집사람의 성향과 나의 성향을 비롯해 라온이의 성향이 메모돼 있고, 이름 짓는 비용이 33만원이라고 적혀 있다. 메모 내용이 대체적으로 신통방통하게 잘 맞아떨어졌다는 인상을 주었다. 메모 내용을 사진으로 찍어 아내에게 보내주었더니 “오, 신이네.” 하며 “전화로 상담할 당시에도 참 잘 맞는다고 느꼈다”고 했다.


그런데 내 성향 중 ‘학문적’ 옆에 ‘욕구’라는 단어가 눈에 밟혔다. ‘내가 욕심이 많나? 난 욕심이 많지는 않은데. 왜 이렇게 본 건가.’ 그냥 넘길 수도 있는데 ‘욕구’라는 단어가 토요일까지 내내 목구멍의 가시처럼 까실까실 걸렸다.


라온이가 퇴원한 일요일 오후, 제법 가을바람 드는 서재 북창을 열고 평상 위에 앉았다. 평상 주변 책들을 뒤척이다 호기심 가는 책 한 권이 띄었다. <레토릭-세상을 움직인 설득의 비밀>. 서문이 흥미롭게 잘 읽혔다.


이 서문에서 내 ‘욕구’의 단서를 발견했다.


“인간은 욕망의 기계다. 언어는 인간의 욕망을 잘 드러내주는 도구다. 누군가를 유혹하기 위해, 감명을 주고 고무시키기 위해, 존경받고 정당화하기 위해 언어를 사용한다. 즉, 인간의 욕망에 가장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수단이 바로 수사라고 할 수 있다.” <레토릭> 12쪽.

이 대목을 읽으면서 퍼뜩 든 생각.


‘그렇네. 그러고 보면 나는 무지 욕구가 강한 인간이네.’

우리들 일상에서 수사(rhetoric·修辭)는 ‘정치적 수사’처럼 ‘정치적’과 합을 이루면서 부정적으로 사용된다. 수사가 부정적으로 사용되는 것은 구글 검색을 토대로 하면 세계적으로도 비슷한 추세다.


그러나 수사학은 약 1500년 전부터 서양 교육의 중심이었고, 남자라면 누구나 수사법을 알고 마음대로 구사할 수 있어야 했다. 그리 교육받았다. 특히 수사는 법과 정치에서 중요했고 실제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비록 ‘정치적 수사’라는 관용어가 부정적일지라도 그건 역설적으로 ‘정치에서 수사’ ‘수사에서 정치’가 여적 중요하다는 의미가 된다는 뜻이다. 수사의 절정기는 21세기라는 점과 수사로 서양 문명을 이룩했다는 점, 이 두 가지가 그걸 뒷받침한다. 수사를 안다는 것은 정치의 토대, 문화의 DNA, 생각의 원리와 같은 중요한 핵심을 꿰뚫는다는 것이다.


실은 우리의 부모도, 우리도, 우리 아이들도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숱한 수사를 구사한다. 수사와 수사학에 관한 시대적 관점이 변해 우리 삶과 동떨어져 있어 그 중요성을 체감하지 못할 뿐이다.


버락 오바마의 사례를 보면 수사의 기능을 잘 이해할 수 있다. 2009년 미 대선 당시 오바마는 힐러리와 민주당 경선을 치렀다. 힐러리는 유력 대선 후보였고, 오바마는 무명의 정치인이었다. 힐러리는 돈과 조직이 막강했고, 오바마는 선거 레이스에 있어 전통적 힘을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오바마는 힐러리를 누르고 민주당 후보로 선출됐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힐러리를 누른 힘도, 공화당의 존 매케인을 꺾은 힘도 그의 ‘화려한 수사’였다.


오바마는 민주당 경선과 대선 내내 ‘연설이나 잘하는’ ‘입만 살아있는’ ‘말만 번드르르한’ 사람이란 공격을 시종 받았다. 그는 젊음, 자유, 인종, 조지 부시와의 차별화를 꾀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라는 구호가 미국 국민들을 홀렸다. 당시 오바마의 인기는 실로 엄청났다. ‘오바마마니아(Obamamania)’ ‘오바마라마(Obamarama·오바마와 달라이 라마를 합친 신조어)’라는 말이 탄생했다. 미 언론은 2009년을 ‘오바마의 해’라고 기록하고 있다.


당시 공화당 부통령 후보였던 세라 페일린은 이렇게 말했다. “오바마는 말을 잘 골라내서 자신의 본질(나쁜 점)을 감추고, 매케인은 말을 잘못 골라내서 자신의 본질(좋은 점)을 감춘다.”


나는 오바마의 수사를 읽다가 오늘 임기를 시작하는 김문수 신임 고용노동부 장관이 떠올랐다. 오바마가 ‘수사의 대가’라면 이번 청문회 때 김문수 장관 후보자는 ‘반수사의 대가’가 아닐까 생각했다. 나는 서노불이(恕怒不二)를 떠올렸다. 용서와 성냄이 둘이 아니듯 수사와 반수사도 둘이 아니라 하나라 본 것이다.


김문수 후보자의 언변은 담박했다. 화려하지도 꾸밈도 없었다. 그저 그의 소신을 밝히면서 오랜만에 보수 국민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 이진숙 방통위원장처럼 억지도, 악도, 싸구려 티도 나지 않았다. 김문수 후보자는 보수에도 품격이 있음을 몸소 보여주었다.


<레토릭> 서문에서 내 ‘욕구’의 근원을 찾고, 오바마의 수사를 들여다보다 김문수 장관의 반수사를 읽어내다 오랜만에 충북 단양 미륵 대흥사 선방장 혜신 스님에게 문자를 넣었다. 혜신 스님은 영천 보리사 주지로 2년 전 여름 입적한 조계종 원로 월탄 스님과의 인연으로 대흥사에 5일 머물고, 보리사에 2일 머문다.


혜신 스님과 김문수 장관의 인연이 깊어 스님이 생각난 것이다.


‘유튜브로 김문수 장관 청문회를 보다가 스님 생각이 났습니다. 오바마가 수사의 대가라면, 김문수 장관은 반수사의 대가라 느꼈습니다.’


‘네. 무더위에 건강관리 잘하시길 바랍니다.’ 스님의 말.


반수사의 전략을 사용한 이로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는 명언을 남긴 미국의 전설적인 야구선수 요기 베라가 있다.


수사든 반수사든 그 힘은 공히 상대를 감흥시켜 행동토록 하는 데 있다.


당신은 수사 쪽인가, 반수사 쪽인가. 당신은 오바마 쪽인가, 요기 베라 쪽인가.


김문수 장관은 이번 ‘반수사 청문회’로 일약 차기 유권 대권주자로 떠올랐다. 보수든 진보든 소신과 강단과 함께 ‘담백의 격’을 필히 갖추어야 한다. 김문수 장관의 롱런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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