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맛

by 심지훈

“라온아, 가을이 왔다고 가을바람맛을 보러 가자는 아빠는 이 세상에서 흔치 않니라.”


어제 늦은 오후 두 아들을 구슬려 한밭수목원으로 가을바람맛을 선뵈러 가는 차 안에서 내가 한 말.


토요일 새벽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억수 같은 비가 내린 뒤 일요일 오후의 바람결은 변장 수준으로 확 달라졌다. 때맞은 바람이 때늦게 당도했기에 그 반가움이 더 컸다.


저녁답에 활짝 열어젖힌 북쪽 창문으로 진짜배기 가을바람이 메타세쿼이아숲을 넘어 내리 들이쳤다.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들어 한참을 서 있었다. 마침 세탁실에서 나오는 아내의 팔을 부여잡고는 창문 앞에 세웠다.


“가을바람맛 좀 봐. 얼마나 좋아.”


‘세상에 바람맛을 보라니….’ 아내는 별일이다 싶었던지 가던 길을 가려 했다. 두 손으로 아내의 어깨를 잡았다. “좀 더 있어 봐. 내일은 애들 데리고 수목원에 가자.”


사람들은 음식맛, 물맛은 잘 구별하려 들지만 바람맛은 여간해선 즐길 생각을 않는다. 내가 바람맛을 느끼고 즐기기 시작한 건 2년 전 겨울 충북 단양을 찾았을 때다. 소백산 아래 심산유곡의 고장이어서만 할까. 무슨 영문인지 그날따라 단양의 바람맛이 그리도 좋았다. 뭐랄까 맑고도 달았다. 어찌나 맛나던지.

“바람맛이 이렇게 좋다는 건 또 처음 느껴보네.” 아내에게 한 말.


“정말 그렇네. 바람이 참 맛있네.” 아내의 말.


속이 다 시원하고 머리가 새하얀 도화지처럼 맑아지는 것 같았다. 나는 그날 이후 낯선 장소에 가면 바람맛을 보려고 부러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는 버릇이 생겼다. 충북 단양의 최고급 바람맛을 본 뒤로는 대전의 바람맛은 물론 내 고향집 바람맛도 그보다는 훨 못하다는 걸 알게 됐다.


최근 단양의 바람맛만큼 좋았던 곳은 강릉 허균 허난설헌 기념관에서 맡은 바람이었다. 동해 바람을 머금은 그곳 감나무며 소나무는 말할 것도 없고 한 포기 잡초마저 파릇파릇한 생명의 힘을 뽐내고 있었다. 살다 살다 그렇게 위용을 뽐내며 실한 감나무는 처음 보았다. 웃자란 감나무 키도 키지만 거북 등짝처럼 쩍쩍 갈라진 감나무 껍질에선 경외감이 솟구쳤다. 이런 감나무는 가만 안아줘야 한다. 노거수에 대한 예의처럼.


바람과 소화는 분명 직결된다고 나는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배 불리 먹고 포만감을 숙지게 하는 자연스러운 방법은 시원한 바람을 또 배불리 먹는 것이다. 양질의 자연 바람은 그야말로 최고의 소화제다. 그런 천연 소화제를 일상으로 먹는 사람은 장수할밖에 없다.


허면 평소 시원찮다 느낀 대전의 바람맛이 이리도 좋다 느낀 까닭은 뭘까. 올여름이 정말이지 지긋하고 지독했기 때문이다. 흡사 잔혹한 고생 끝에 얻은 한 줄 낙이랄까. 그 후텁지근한 여름바람이 하루아침에 종적을 감추고 좀은 서늘하다 느낄 정도의 선선한 가을바람이 깜짝 등장했다. 왜 반갑지 않겠는가. 왜 고맙지 않겠는가.


이런 바람일랑은 부러 사방 뻥 뚫린 드넓은 장소를 찾아 머금고 삼켜야 한다. 많이 많이 마구마구 먹어줘야 한다. 보약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단순 가을바람을 선뵌 게 아니라 천연 보약을 양껏 선물한 것이다.


변화, 고통, 무아(無我·나 없음) 이 세 가지를 불가에선 삼법인이라고 한다. 세상 만물은 한시도 머물러 있지 않는다. 제행무상(諸行無常), 변화무쌍하게 변화한다. 그게 이 세상의 법도다. 그 변화 중에 계절의 변화도 있는 것인데 대자연의 순환은 인간예측을 비껴가기 마련이다.


주말 한밭수목원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곳 놀이터도 만원이었다. 행락객들은 단순 날씨가 좋아 나왔을 것이다. 우리의 목적은 달랐다. 변화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중에 보약을 양껏 섭취하는 것이었다. 라온이 바론이는 신명을 드높였다.


하늘은 조화를 부렸다. 둘로 나누었다. 앞쪽은 영락없는 천고마비지절인데 뒤쪽은 시꺼먼 구름떼가 층도 두텁게하여 버티었다. 그 하늘 아래 아이들은 땀이 나도록 뛰어다녔다.


돌아오는 길, 바론이는 지쳐 잠들었고 라온이는 체력이 남아 목욕 후에 블루마블을 1시간하고 곤히 잠들었다. 양기(陽氣)를 머금고 삼킨다는 것은 내 몸을 돋운다는 것이다. 오늘 아침 두 아들은 싱글벙글 등교·등원했다.


오늘도 아내에게 애들 가을바람 먹이러 가재야겠다.


나는 올해 첫 가을바람을 머금은 지난 일요일 새벽 서재 북창을 열어젖히고 신명의 시를 단숨에 지었다.


*바람

바람이 어찌나 좋던지요.

간밤 뇌성과 번개를 대동하고서

장마 같은 억수비가 몰아쳐대더니

오후부터 바람이,

어제까지만 해도 후텁지근하던 그 바람이

거짓말처럼 완연한 가을바람으로

깜짝 변신했지 뭐겠습니까.

아, 아버지

그곳 바람도 그리 바뀌었습니까.

이내 마음이

하루에도 천 번도 더 바뀌고

한순간에 홱홱 뒤집어지듯

진작 가을바람이었어야 할 그 바람이

시월을 아흐레 앞두고

돌연 성큼 찾아왔지 뭡니까.

바람이 바뀌듯

이내 마음도 뒤집어진 밤입니다.

아, 아버지

나는 서재 북창을 열어젖히고

향 좋은 바람내

양껏 깊이 들이키며

맛 좋은 바람맛

한입 물어 혀로 돌돌 돌려가며

늦도록 책을 본답니다.

어느 무명의 할아버지가

애오라지 아들과 딸을 위하여

그리고 태어날 손자 손녀를 위해

쓴 가정 지침서, 인생 교훈서를

참으로 달디달게 읽습니다.

세상 어느 무명의 할비가

자식을 위해서

태어날 손주들을 위해서

이리도 조근조근한

이리도 반듯반듯한

지침서를 쓸 수 있을까,

내내 감탄하며 감동하며 읽습니다.

아, 아버지

가을바람이 좋아

펼친 책장에서

나는 별안간 어머니를 찾습니다.

계신 그곳도 가을이, 가을바람이

무사히 잘 당도하였겠지요.


*이 야심한 가을바람을 찍을 수 있다면 참 좋으련만.

**선친은 바람맛을 잘 아시는 분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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