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구실

by 심지훈

아내와 나는 동갑이다. 우린 자식 복이 참 많다고 생각한다. 당시로선 비교적 늦은 나이인 35세에 결혼해서(크리스마스 이틀 뒤 결혼식을 올렸으니 36세라 봐야 할 듯) 결혼 3년 만인 38세에 첫째 라온이를 얻었다. 다시 3년이 흘러 둘째 바론이를 얻었다.


되돌아보면 라온이를 얻기까지는 여러 해프닝을 겪었다. 당시로선 나름 ‘곡절’이었다. 통상 여성병원에선 여자 나이가 35세 이상에다, 결혼 2년차인 데도 자연임신을 못한 경우 ‘난임’으로 판정한다. 자연임신이 어려운 경우라고 간주하는 것이다. 건강한 남녀도 ‘난임 판정’을 받으면 위축된다. 이 상황에서 아이를 갖고 싶어하는 부부는 귀신같이 임신 시간까지 지정해주는 명의를 찾는다. 대전에도 그런 명의가 있다.


우린 그 명의를 찾아갔다. 전통적으로 자녀는 삼신할매가 정해준다고 본다. 결과적으로 멀쩡한 부부도 생각보다 쉽게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걸 경험함으로써 ‘삼신할매론’이 괜히 나온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명의가 정해준 시간은 정자와 난자가 하나로 합쳐지는 수정(受精) 타이밍이었다. 이걸 점쟁이처럼 콕 집어 알려줬다. 하지만 난자가 정자를 받아들일 적실한 시간도 결국 확률이 아닌가. 해서 헛심 쓴 경우가 다반사였다.


차라리 인생 선배들의 조언이 더 알맞았다. ‘삼신할매 전통’이 신실한 믿음에 근거하는 것이라면 선배들의 조언은 충실한 본능에 근거한 처방이었다. ‘그냥 하라’ ‘무조건 열심히 하라.’ ‘거사를 치르기 전에 (남자는) 등산을 하라.’ 등의 처방전이 자녀를 득한 인생 선배들로부터 마구마구 뿌려졌다.


몇 번의 타이밍 처방이 실패하자 명의의 처방도 선배들의 처방과 점점 닮아갔다. “알려준 시간 하루 전후로 해서는 할 수 있을 만큼 열심히 하세요. 애가 그리 슬렁슬렁해서 생기는 게 아니에요.” 이쯤 되면 코미디다. 이쯤 되면 사랑은 극렬한 운동이 된다. 운동은 결국 지구력이 관건이다.


그런데 우리 부부의 경우, 결과적으로 엉뚱한 데 시간을 낭비했다. 미혼자가 기혼자가 되고 자녀를 얻겠노라 노력하다 보면 알 것이다. 우리는 우리들 몸에 대해 생각보다 무지하다는 걸 말이다. 그 깨달음의 시간을 ‘난임 판정’을 받게 되면 시나브로 갖게 된다.


남자의 경우 무정자나 발기부전의 문제가 아니라면 임신 능력엔 큰 문제가 없다. 운동 등은 부차적인 문제다. 무정자라면 애당초 임신이 불가능하다. 발기부전은 여러 요인이 있지만 대체로 젊은 시절 몸을 함부로 놀렸기 때문일 확률이 높다. 음주, 흡연은 둘째 문제다.


부부간 임신이 안 되거나 어렵게 된 경우는 여성 쪽 문제일 확률이 높다. 여성의 경우 몸이 냉하거나 체력이 약한 조건도 임신을 어렵게 한다. 생리의 불규칙은 허공에 화살쏘기만큼 공허해 적중률이 낮다. 게다가 남자건 여자건 몸뚱어리 함부로 굴린 벌은 결혼 후 내려진다. 사랑이 열차게 뜨겁지 않고 뜨뜻미지근하면 삼신할매가 콧방귀도 뀌지 않는다.


우리 부부는 둘째 바론이는 거뜬하게 가졌다. 아내의 몸과 내 몸의 상태를 이제쯤은 간파했기 때문이었다.


어느 병원이라도 병원에는 환자들이 상상외로 수두룩하지만, 여성병원에 가보면 난임으로 병원을 찾는 젊은 부부가 의뢰로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여성 나이 35세 미만인 경우도 적지 않다.


때문인지 난임과 관련한 민간처방은 ‘허준 시대’를 방불케 한다. 발바닥 땀나도록 걷기, 따끈한 술로 부인 달구기, 아들만 준다는 용한 한의원에서 약 지어 먹기, 막 신내림을 받아 백발백중인 점쟁이로부터 거사일 받기까지 별별 것이 다 있다.


아이를 가지려는 쪽에선 이처럼 안달복달인 게 엄혹한 현실인데, 반대쪽 현실은 아일랑은 가질 생각은 않아 천하태평이다.


이 땅에서 지금보다 한 세대 위의 ‘인간구실론’을 보면, 대체로 내 자식 낳는 것으로 인간 구실 끝이 아니라 손주를 보는 것으로 인간 구실 다했다고 보았다. 이때의 인간 구실은 작게는 씨족번식의 의무요, 크게는 인류유전의 의무일 것이다.


나는 두 아들에게 “너희는 어디에서 왔느냐”고 묻고, “너는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이냐(네 꿈은 뭐냐)”고도 곧잘 묻는다. 인간이 이 세상에서 이룰 수 있는 것이라고는 결국 자기를 닮은 자식뿐이겠거니 하는 생각으로.


나는 이 땅의 젊은이들이 힘을 내주었으면 좋겠다. 인간 구실을 제대로 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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