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자전거는 5대다. 내 자전거가 1대, 라온이 자전거가 2대, 바론이 자전거가 2대다.
내 자전거는 6년 전 당근마켓에서 안장 비닐도 뜯지 않은 새 자전거를 반값도 안 되게 산 것이다. 회계사 시험에 합격했다고 삼촌이 선물했다는 새 자전거를 여대생이 판 것이었다. 자기가 타기에는 크고 자기는 자전거를 못 탄다며 내놓았다.
라온이 자전거 2대 중 1대는 베란다에 세워만 놓아 새것 같은 중고를 2만원 주고 사온 것이고, 다른 1대는 집사람 직장 선배가 ‘몇 번 타지 않은 채 아이가 자라버려 선물하겠다’고 준 것이다. 비싸게 준 만큼 모양도 빼어났다. 라온이는 주로 이 자전거를 탄다. 내가 사온 자전거는 미운 오리 새끼마냥 자전거 보관소에 2년째 방치 중이다.
바론이 자전거 1대는 3발 자전거로 신상이고, 다른 1대는 기다란 어른 손잡이가 달린 자전거다. 라온이와 동갑내기인 이웃 이진이가 타던 걸 깨끗하다고 우리에게 준 것이다. 이 자전거도 2년째 아파트 계단에서 잠자고 있다.
바론이 자전거 중 1대가 신상인 데는 좀은 짠한 사연이 있다. ‘아이들은 금세 자란다’ ‘자전거 1년에 몇 번 탄다고 수십만 원을 주고 사나’가 자전거에 관한 내 생각이자 기본적인 내 소비 마인드다.
나도 6년 전 안장 비닐도 안 벗긴 새것 같은 중고를 사기 전엔, 대전정부청사 앞마당 공공자전거 판매소에서 재활용자전거를 8만원 주고 사다가 5년을 탔다.
라온이는 제 자전거를 갖기 전엔 한밭수목원 자전거대여점에서 30분에 3,000원을 주고 한 번씩 탔다. 거기서 자전거를 탈 때마다 라온이는 짙은 파란색에 흰 강아지 무늬 자전거만 고집했다. 그걸 가장 마음에 들어했다.
어느 날 당근마켓에 그 비슷한 색과 무늬 자전거가 나눔으로 나왔다. 그걸 받고 보니 막상 바퀴는 생각보다 낡았고, 손잡이도 해질 대로 해졌다. 고민끝에 자전거 판매점에 가서 손잡이만 바꿔서 태웠다. 중국제라 그런지 한동안 역겨운 고무내가 진동을 했다. 식초로 여러 번 닦고 방향제를 몇 번이나 뿌려 냄새를 뺐다.
라온이는 그래도 너무너무 좋아했다. 옅은 하늘색에 원숭이 무늬 자전거를 타고 아파트 뒤편 드넓은 공원에 나가면 그 행색은 가장 초라했지만, 라온이와 아빠와 추억 쌓기에는 손색이 없었다. 아빠는 늘 도둑이고 라온이는 늘 경찰이었다. 그리 깔깔대며 신명나게 공원을 누볐다.
라온이가 좀 더 자라고 바론이가 태어나자 아비의 마음이 바뀌었다. 바론이에게는 무조건 새 자전거를 사주자 한 것이다. 라온이 자전거는 그야말로 초라했고 궁색하기까지 했다. 라온이한테 미안한 마음을 바론한테 갚는 이상한 정산을 했다.
그리 ‘자전거 1년에 몇 번 탄다’고 하는 기조는 유지한 채, 라온이 자전거도 새것 같은 중고 1대를 사온 것이다. 금세 자랄 걸 감안하고 조금 큰 것으로 샀다. 그랬는데 그즈음 제 몸에 맞는 새것 같은 멋진 자전거를 엄마가 회사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리 라온이도 새 자전거, 바론이도 새 자전거를 갖게 됐다.
라온이의 생애 첫 자전거였던 낡고 해져 궁색해 보이기까지한 옅은 하늘색에 원숭이 무늬 자전거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반기마다 한 번씩 자전거 정리를 할 때 처분했다. 다시 나눔은 상대를 우습게 여긴다는 인상을 줄뿐더러, 어느 아이에게라도 도무지 태울 게 못 된다고 봤기 때문이다.
라온이는 엄마가 가져온 두 번째 자전거를 좋아했다. 1년을 신나게 잘 탔다. 공원에 나가 여러 자전거와 뒤섞여도 꿀리지 않았다. 그 자전거 앞바퀴가 빵구난 건 지난 여름의 일이었다.
그 자전거를 오늘에야 수리했다. 이 가을이 아니면 언제 자전거 추억을 갖고 쌓겠는가 하면서 장갑을 끼고 나섰다.
“라온아, 오늘은 아빠가 네 자전거를 고쳐 올 거야. 날씨가 추워지기 전에 열심히 자전거를 타자.” 오늘 아침 등굣길에 라온이에게 못 박은 말.
자전거방에 가서 알았다. 요즘은 빵구를 때우는 일이 없다는 걸. 또 알았다. 요즘은 청년 일꾼이 없어서 할아버지 사장님 혼자서 겨우겨우 연명한다는 사실을.
사연인즉슨 이렇다. 2년 전만 해도 빵구를 전문으로 하는 공장이 대전에 있었다. 그런데 그 공장이 문을 닫고는 중국산 제품을 들여와 썼다. 그런데 중국제는 이틀 만에 땜질한 고무가 떨어졌다. 그 바람에 고객들의 언성과 시비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리 빵구 때우기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제 빵구가 나면 튜브를 아예 교체한다. 비용은 15,000~16,000원. 빵구를 때우던 시절의 값은 그 반인 8,000원이었다고 한다.
라온이 첫 자전거 손잡이를 교체할 때가 벌써 3~4년 전인데, 그때만 해도 이 자전거방에는 건장한 젊은이 3~4명이 바삐 움직였다. 아파트 밀집 지역에 자리한 이 자전거대여점은 대전 맘카페 회원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싹싹하고 수리가 빠르단 이유였다.
그런데 오늘 아침엔 머리가 하얗게 센 할아버지가 홀로 수리 중이다. 그 할아버지는 내가 경험한 청년들보다 더 싹싹하고 빠르다는 느낌을 주었다. 생각보다 일찍 수리가 끝나 바로 차에 싣고 돌아왔다. 안내도 설명도 친절했다. 그야말로 숙련공.
그리 이것저것 물었다. “예전에는 젊은 분들이 많았는데요.” “그랬는데 요즘은 젊은 사람들이 이런 일을 하려고 들지 않아요. 한 녀석은 5년 하고 자기 가게 열어나갔고, 다른 녀석은 결혼한 후로는 통 연락이 없어요.”
오늘 나오기로 한 직원은 갑자기 못 나온다고 했단다. 자전거방 앞에는 오가는 자전거족들이 바람을 넣고 있었다. 그중 머리가 희끗한 한 아저씨는 바퀴에 바람이 안 들어간다고 투덜대다 가스 공기주입기로 좀 넣어달라고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좀 기다려 주세요.” 사장님의 말. 아저씨는 갈 길이 바쁜 듯 자꾸만 재촉한다.
“지금 일을 하고 있으니 좀 기다려 달라는 겁니다. 혼자 하실 수 있으면 해보시던지.” 다시 사장님의 말.
“방법을 알려 주셔야 하지.” 다시 아저씨의 재촉.
“그러니까 좀 기다려 달라고요.” 답답하다는 투의 사장님.
사장님은 차분하고 아저씨는 능글맞다.
대신 바람을 넣어줄까 하다가 능글맞은 아저씨가 밉살스러워 팔짱을 낀 채 허공을 본다.
파란 하늘 위로 흰 조각구름이 허허실실로 흘러간다. 차분한 사장님의 시간이나 능글맞은 아저씨의 시간이나 가만있어도 저 구름처럼, 저 자전거 바퀴처럼 돌고 돌 터인데, 아침부터 왜 그리들 궁상스레 찌르고 막아대는 것인지.
사장님은 직원이 무단결근한 바람에 가뜩이나 심기가 불편한 터인데, 능글맞은 아저씨는 제 잇속만 챙기려 드니, 씽씽 돌던 바퀴 돌연 빵구 안 난 것만도 천만다행 아닌가.
계산을 하고 자전거를 차에 싣는다. 차문을 닫고는 도로 사장님에게 간다.
“사장님, 좋은 날입니다.” “네?” “저기 저 푸른 하늘 좀 보세요. 얼마나 좋아요. 오늘도 복된 날 되십시오. 다음에 또 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조심히 돌아가세요.”
누군가 뒤집어 놓은 속은 또 누군가에 의해 가라앉기 마련이다. 그게 돌고 도는 인생사 아니던가. 좀 유식한 말로는, 이런 걸 인생유전(人生流轉)이라지 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