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직장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첫 직장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내가 꿈꾸는 첫 직장은 고용불안이 없는 안정적인 직장, 이직 없이 평생 오랫동안 다닐 수 있는 직장이었다. 사회생활을 해보지 못한 나에게 이직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는 말처럼 시작을 잘하고 싶어 오랜 시간 취업 준비를 했다. 그리고 몇 년의 노력 끝에 당시 신이 내린 직장(?)이라고 불리던 대학교 교직원이 되었다.(지금은 신이 버린 직장 일수도..)
대학교 교직원이 왜 신이 내린 직장이라 불리었는지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1. 정년이 보장된다.
2. 실적에 대한 압박이 없다.
3. 업무가 편하다.
4. 학기 중엔 정시 퇴근, 방학 중 단축근무가 있다.
막상 근무를 시작하니 맞는 부분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었다.
지금 과장, 처장급 직원들을 보면 정년까지 채우신 분들이 많다. 그런데 그 누구도 젊은 직원들이 정년까지 근무할 수 있다는 장담은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교육부의 대학구조평가,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위기로 대학들이 존폐의 위기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년까지 다닐 수 있다는 안정적인 직장이라는 믿음에(?) 업무가 다소 젊은 직원들에게 집중되어 있는 경향이 있다.
실적에 대한 압박이 없는 편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대내•외 대학의 위기로 빈자리를 외국인 또는 주변의 고3 학생들로 채우지 않으면 학생이 충원되지 않아 대학의 수입 대부분을 등록금으로 의존하고 있는 대학교의 경우 월급이 삭감될 수도 있다. 또한, 정부의 대학 등록금 정책으로 인해 월급이 10년 이상 동결된 곳이 많다.
업무가 사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편한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대학의 수입 감소로 신규 채용 규모를 줄이고 있어 한 직원이 멀티 플레이어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1년 2회에 정기적인 부서 이동이 있어 새 업무를 그때그때 배워야 한다. 심지어 6개월마다 부서 이동을 하는 직원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정시 퇴근, 방학 중 단축 근무가 가능할 수도 가능하지 않을 수도 있다. 부서에 따라 상황이 다르다. 하지만 교육부 3주기 평가 대비, 부서 직원 감소로 인한 업무 증가로 인해 정시 퇴근, 방학 중 단축 근무가 앞으로는 더 힘들어질 것이라 예상이 된다.
나의 경우 정시 퇴근은 꿈도 못 꿨다. 국제교류 업무를 하는 부서는 잡무가 상당하다. 외국 학생들의 입학, 학사, 취업, 장학, 졸업, 출입국, 학생 관리 등의 업무를 해야 한다. 또한, 여러 국가의 대학들과 교류 업무를 하고, 외국 출장을 가고, 외부 사업을 하는 등 업무량이 만만치 않다. 그런데 이 많은 일을 입사 3년 차 선배와 이제 갓 들어온 인턴 나부랭이 둘이서 해내야만 했다. 야근은 일상이자 내 절친이 되었다.
정시 퇴근은 힘들더라도 내 주말만은 보장받고 싶었다. 하지만 주말에도 근무를 해야만 했다. 주말 근무를 하는 경우는 크게 네 가지였다. 평일에 끝내지 못한 밀린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경우, 문화체험 등의 외부 활동 인솔하는 경우, 주말을 끼고 간 외국 출장 업무, 예상하지 못했던 외국인 유학생들의 사건•사고를 처리해야 할 때다. 밀린 내 일을 하거나, 외부 활동, 외국 출장 업무까지는 그나마 나은데(?), 외국인 유학생들의 사건•사고는 불시에 발생하기 때문에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다가도 학교로 복귀해야 했다. 살면서 평소 갈 일이 거의 없었던 경찰서와 병원을 생각보다 자주 방문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입사 1년은 지옥 같았다. 이 전쟁터는 내가 그동안 살았던 곳도, 아군이 있는 곳도 아니었다. 퇴근길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털어놓을 친구도 없었다. 대신 매일 퇴근길에 편의점에 들려 만원의 행복, 맥주 네 캔으로 마음을 달래야 했다.
입사 초기에는 상대적으로 편한(?) 부서에 배정된 동기들을 보면 부러웠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 그 경험을 통해 얻은 것이 많다.
사람을 얻었다. 당시 그 힘든 시기를 함께 했었던 선배, 조교 선생님과 전우애(?)가 생겨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 연락을 하고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있다.
멘털이 조금 단단해졌다. 예전에는 주말에 업무 연락 오는 게 너무 싫어 투 번호를 써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주말에 연락 오면 내가 일처리를 잘 못해서 연락 오는구나, 여러 상황과 변수를 고려해서 일처리를 해야겠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나만의 업무 노하우가 쌓였다. 학교의 1년은 1학기 개강 -> 여름 방학 -> 2학기 개강 -> 겨울방학이다. 개강, 종강, 방학이 반복되는 패턴이지만 매 학기 다양한 업무 경험을 많이 하면서 업무 노하우가 생겼다.
물론 지금도 더 배우고 경험해야 할 업무들이 많다.
세상에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 지금 내가 이 부서에 배정된 것은 어쩌면 그동안의 경험이 나에게 준 선물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