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직업병이 있다. 사무실에 방문하는 한국 사람이 중국, 베트남 국적의 외국인처럼 보이는 병이다. 종종 사무실에 한국 사람이 오면 나도 모르게 니하오를 외치다 상대방이 “저 한국 사람인데요..”라고 말하면 머쓱할 때가 있다. 이런 직업병이 생긴 이유는 중국, 베트남 등 외국인과 같이 근무하고, 우리 사무실에 방문하는 외국인이 한국인보다 훨씬 많아 외국인을 만나는 게 익숙하기 때문이다.
내가 근무하는 부서는 학교의 국제교류 업무를 하는 곳이다. 우리 부서와 외국어는 떼려야 뗄 수가 없다. 매일 아침 9시부터 사무실에 찾아오거나 SNS로 문의하는 외국인들의 민원을 해결해야 한다. 입학부터 수강신청, 졸업 등 학사, 그리고 장학금, 취업, 출입국 업무까지 외국인 학생을 위한 원스탑 행정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러한 업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실 외국어는 필수다.
학교마다 국적별 외국인의 비율이 다른데, 대다수 학교의 경우 중국과 베트남 학생이 영미권의 학생보다 많다. 하지만 채용공고에서는 외국어 면접을 보는 곳도, 보지 않는 곳도 있다. 우리 학교는 영어 또는 중국어 둘 중 하나를 선택하여 볼 수 있다. 나는 전공이 중국어라 다른 사람이 봤을 때 당연히 중국어를 선택할 것 같지만 영어를 선택했다. 기본적으로 전공인 중국어, 추가로 영어까지 2개 국어가 가능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한 나름의 전략이었다. 이 전략은 내 교직원 인생에 큰 사건이(?) 되었다. 그렇게 어필한 덕분에 의도치 않게 입사 후 2개 국어를 잘하는 신입으로 소문이 나있었다. 다른 직원들이 볼 때는 당연하게도 국제교류 부서에 배정을 받았고 벌써 7년 차가 되었다. 역대 국제교류 부서에서 근무한 직원 중 가장 오래 근무한 직원이 되어가고 있다.
몇 년간 영어, 중국어를 번갈아가면서 업무를 했다. 당시 중국 대학과의 교류를 활발하게 하였고, 재학 중인 중국인 유학생이 많기 때문에 업무 대부분 중국어를 구사하였다. 중국 교류대학 담당자와 이메일을 주고받거나 통화를 하고, 중국인 학생들을 관리하였다. 그리고 여권 도장에 중국 각 도시의 도장이 찍힐 정도로 중국 출장도 종종 다녔다.
반면에 영어를 쓸 때는 내가 상상한 영미권 사람들과의 비즈니스가 아닌 일본, 카자흐스탄, 베트남, 우크라이나 등 비 영미권 국가의 담당자들과 업무를 했다. 서로 네이티브 스피커가 아니기 때문에 영어를 부담 없이(?) 사용했다. 이메일, 전화로 업무를 하고 출장으로 담당자들과 몇 번 만나다 보니 일본인 친구가 생겼다. 가끔은 라인으로 서로의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되었다. 이처럼 국제교류 부서의 장점 중 하나는 외국인 친구를 사귈 기회가 많다.
방글라데시, 우크라이나 등 학생들의 민원을 해결해주곤 했다. 가끔 방글라데시 친구들의 영어를 알아듣는 게 어려울 때도 있었는데, 같은 부서에 근무하는 필리핀에서 어학연수를 한 선생님은 동남아시아 국가 학생들의 영어를 기가 막히게 잘 알아듣고 소통해서 놀라울 때가 있었다.
이렇게 글을 쓰고 나니 모든 교직원이 외국어를 잘해야 하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외국어를 전혀 구사하지 않는 부서도 있다. 재무, 예산, 총무, 시설, 취업, 장학 등의 부서에서는 외국어를 쓰는 경우가 드물다.
교직원이 되는데 외국어가 나처럼 결정적인 요인이 될 수도 있고, 전혀 상관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영어 회화는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교직원은 한 부서에만 근무하지 않고 여러 부서를 순환해서 근무하기 때문이다. 생각지 않게 가끔이라도 외국인 학생을 대면하는 업무를 할 수가 있다. 방심은 금물이다.
마지막으로 교직원을 준비하는 취업준비생에게 팁을 주자면 외국어는 회화가 중요하다. 이메일, 문서 작성은 번역기를 이용하여 업무를 할 수 있지만 학생 민원 처리, 통역, 전화 통화, 회의, 출장 업무를 하려면 회화실력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회화에 도움이 됐던 팁을 공유하자면 전화영어 또는 회화 스터디를 하든 외국어를 쓸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고 꾸준히 지속했던 게 도움이 됐다. 자신감은 필수다. 위축되어 있으면 평소 잘하는 말도 생각이 안 난다.
He can do it, She can do it, I can do 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