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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 Jan 03. 2020

언론사로 출근한다는 것

언론고시라는 말과 전혀 상관없는, 회사원으로서의 삶 

누구든 그렇지 않겠는가. 

수능공부를 하면서 공부를 마치면 꽃같은 나날이 펼쳐질 거라고. 

언론고시를 준비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언론고시를 준비한 이유는 다소 간단했다. 방송영상과 광고홍보를 전공했고, 둘 중엔 영상이 내 구미에 더 맞았기 때문이다. 


이 전공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다소 간단하게도, 그냥 점수에 맞게 대학 학과를 지원해야하는데, 인문대학을 가기는 싫고, 어학계열을 가기는 싫어서. 그리고 경제학을 하기엔 수학이 싫었고, 사회학과보다는 있어보이는 이미지? 때문에. 당시에는 훨씬 더 깊고 복잡한 고민이 있었겠지만, 10여년이 지난 지금 그 시절을 복기해보자면 생각나는 건 저 정도다. 복수전공을 한 이유는 취업을 위해서는 이력서에 글자를 한 줄이라도 더 넣는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고. 조금 더 학창시절을 되짚어보자면 광고홍보학과 교수들, 강사들은 방송영상학과 교수들보다 훨씬 더 비싼 명품옷을 걸치고, 명품백을 들었었고, 당장이라도 PT를 할 것 같은 준비가 돼 있었다.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그건 정말로 그 이유 때문이었다. 클라이언트들에게 있어보이는 인상, 당신이 내게 광고 집행권한을 주기만 하면 된다는 그런 신호. 홍보관련 수업을 들을때면 매번 '갑/을'을 들어야 했다. 선배들과의 대화에서도 그랬다. 갑/갑/을/을/병... 이런 식으로 서로간의 관계를 재정립할 수 있다고. 내가 홍보의 길을 걷지 않게 된 건, 지금도 잊히지 않는 어떤 한 마디 때문인데. 지금으로써야 기자들 문화가 많이 바꼈겠지만, 당시에는 기자가 꽤나 필력이 있는 집단이었고, 홍보회사에서는 "기자님, 저희 보도자료 보내드렸습니다. @@까지 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기자님, 지금 어디신가요? 저희가 직접 방문하고 제품 설명 드리고 싶은데 잠깐이라도 시간 내 주실 수 있을까요?" 라는 말을 할 줄 알아야 진정한 홍보맨이 될 수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게 남은 선택지는 방송영상학 관련 전공을 살려보자는 것이었고, PD가 되고자 했다. 그리고 기자시험과 PD시험을 함께 준비했다. 왜냐구? PD시험만 보자면, 자리가 너무 적었기 때문이었고, 시험장의 그 기운을 느끼고, 필기시험에 붙는지 아닌지 보면, 이 시험을 얼마 동안 준비해야할지, 내가 옳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 알 수 있다고 선배들이 말했기 때문이다. 언론고시를 시작한지 어느 정도가 되면, 필기는 붙을만한 필력이 생긴다. 언론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어떤 공통적인 특징 때문일 거다. 물병을 보고도, 어떤 큰 호기심을 가진다거나, 역사를 생각해본다거나.. 하는 식의 특이한 점이 다들 있었다. 이를 글에 녹여내는 법을 어느 정도 익히게 되면, 5번 중 2-3번은 필기시험에 합격하는 시기가 온다. 최종적으로 합격한 친구들을 보자면 PD시험은 최종면접에서 줄줄이 낙방하고, 기자로서는 덜컥 붙어서 커리어를 시작한 사람도 있고, 최종면접에서만 안 되는 친구들도 있었다. 결국 어쩌면 잔인하게도 어느정도 팔자소관?타이밍?이 이 시험에 작용하기 때문에 언론'고시'라는 말을 쓰는 것 같다. 아무리 글을 잘 써도, 요즘처럼 공채가 가뭄에 콩 나듯 난다면, 작은 언론사에서 일을 시작할 수 밖에 없을 수도 있고, 당장 밥벌이가 걱정이라 일반회사로 진로를 바꿀 수도 있는 거니까. 언론사의 문제는 KBS를 제외하고서는 많아봐야 한 기수에 10명 정도가 맥시멈 신입이라는 거다.


여하튼, 나는 운좋게도? 짧은 시간내로 PD라는 타이틀을 가질 수 있었고, 지금까지도 PD로서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고 지금 내가 꽃길을 걷는 것처럼 행복한가? 글쎄. 전혀 그렇지 않다. 나는 PD이기 이전에 언론사에 다니는 회사원이라는 생각이 첫번째이고, 당시에 내가 간과한 것은 PD라는 직함은 그럴듯해보이긴 하지만 사람을 통계로 나누기 좋아하는 카드사로부터, 은행으로부터 전혀 전문직으로서 분류되지 않는 직업이라는 거다. 이제서야 학창시절을 되돌아보자면, PD타이틀을 쥔 채 강의하는 이들은 정말 편해보이는 옷차림 후드에 운동화, 화장도 거의 하지 않은 여성들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그때는 그게 정말 멋있다고 생각했던 건데. 이 회사도 자유로운 차림으로 다닐 수 있는 건 맞는데. 내게 가장 고민인 건 내 노동력 가치를 회사가 너무 가치절하해서 준다는 거다. 


그리고 누구나 인플루언서가 될 수 있다는 이 시대에서 기존 뉴스의 법칙이 깨어지고 말았다. 이제는 굳이 PD나 기자가 될 필요가 없다는 거다. 콘텐츠 생산자가 되고 싶다면, 유튜브를 하든, 블로그를 하든, 브런치를 하든... 하면 된다. 굳이 언론고시 보려고 애쓸필요가 없다. 해봤자 회사원1이 될 뿐이니까. 그래서 나도,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고자 고심하고있다. 그리고 이 브런치에 그 여정을 담아보려 한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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