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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 Apr 08. 2020

남녀 구분 않는 젠더뉴트럴 화장품

레드오션을 블루오션으로. 없는 시장을 시장으로 만드는 법 

9조7774억원.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가 추정한 국내 화장품 시장 규모다(2018년 기준). 비누·샴푸 등 퍼스널 케어 제품까지 합하면 14조원이 넘고, 규모 면에서 세계 9위를 차지할 정도로 거대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화장품에 관심이 많고 관련 지식이 많은 한국 소비자 특성상 국내 화장품 시장은 경쟁이 치열하다. 한 해에만 수많은 브랜드가 생겨났다 또 소리 없이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다시 말하면 그만큼 자신만의 강력한 '무기'가 없다면 살아남기 힘든 게 바로 한국 화장품 시장이다.
      


남녀 구분없이 함께 쓰는 콘셉트의 젠더뉴트럴 화장품 '라카'의 CF 장면. 남성 모델이 립스틱을 바르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라카


최근 전엔 보지 못했던 독특한 콘셉트의 화장품 브랜드 광고가 눈에 띄었다. 남자 모델이 자신의 입술에 립스틱을 바르는 장면. 그것도 광고 메인 시간대인 오후 8시 JTBC '뉴스룸' 광고 중 하나로 송출됐다. 남성 화장품 시장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지만, 남자가 대놓고 립스틱을 바르는 CF는 지금까지 좀처럼 볼 수 없었다. 그것도 뉴스 광고로. 누군가에겐 충격이고, 누군가에겐 새로운 이 광고의 주인공은 젠더뉴트럴 화장품 ‘라카’였다. 

'라카'는 모든 제품의 광고에 남성과 여성 모델을 동시에 쓴다. 사진 라카


뾰족한 콘셉트의 힘

이제 2살밖에 안 된 라카는 10~20대 젊은 층에게 '힙'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인기를 끌고 있는 브랜드다. 사실 상품을 뜯어보면 획기적이진 않다. 립스틱과 아이섀도, 블러셔(볼 터치)로 구성된 색조 화장품으로, 종류도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 이들이 남달라 보이는 이유는 바로 '젠더뉴트럴'이라는 뾰족하고도 명확한 콘셉트 때문이다. 남성용, 여성용을 구분하지 않고 남녀 모두 쓸 수 있는 화장품이 이들이 추구하는 바다. 


이들은 모든 제품의 광고를 촬영할 때 남자와 여자, 두 사람을 동시에 쓴다. 예컨대 립스틱 광고를 찍는다면, 같은 립스틱을 바른  남자와 여자 두 명의 모델을 내세운다. 화장법도 똑같다. 그런데 이 모습이 이질적이지 않다. 남자는 잘 꾸며진 패션모델이나 남자 아이돌 같은 느낌이고, 여자는 또 나름의 여성스러운 모습이 나온다. 립스틱·아이섀도 등 제품에 사용하는 색도 '뉴트럴 컬러'로 남녀 모두 사용할 수 있는 중성적인 색을 사용한다.  


라카는 이런 독특한 콘셉트로 2018년 5월 처음 세상에 등장하자마자 화장품 업계 ‘선수’들 눈에 먼저 띄었다. '될만한' 신생 화장품을 끊임없이 찾는 화장품 유통업체 바이어와 MD들 말이다. 브랜드 광고를 인스타그램에 올리자마자 여러 화장품 바이어들의 문의 전화가 쏟아졌고, 론칭 4개월 만인 2018년 10월 국내 1위 헬스 앤 뷰티 스토어인 올리브영 20개점에 입점 기회를 얻었다. 지금은 전국 700개 올리브영과 자사 온라인몰에서 판매 중이고, 일본 편집매장 로프트·엣코스메 등에도 진출했다. 올해 1월엔 뷰티 인플루언서 전문 MCM 회사 '레페리'로부터 15억원의 시리즈A 투자를 유치했다. 이만하면 2년차 화장품 브랜드로는 성공했다 평가받을만하다. 누가 이런 화장품을, 어떻게 만들게 됐을까. 라카의 정체가 궁금해 이곳을 이끄는 이민미 디렉터(33)를 만났다. 

'라카' 이민미 디렉터


시작은 화장품 광고 기획부터

이 디렉터는 대학 재학 시절부터 인턴으로 광고업계에 뛰어들었다. 두 곳의 광고 회사를 거쳐 경력이 어느 정도 쌓였다고 판단했을 때 함께 일하던 5명의 동료 직원들과 함께 광고회사 ‘브랜디피티’를 세워 독립했다. 그리고 4년 뒤 다시 화장품을 만들며 '라카코스메틱스'를 세웠다. 


광고업계는 경쟁이 치열하기로 정평이 나있다. 작은 신생 회사로 어렵진 않았나.“처음부터 광고 수주율이 굉장히 높았다. 비딩(광고 수주 경쟁)에 들어가면 3번 중 2번은 계약을 땄다. 수주를 못 했을 때도 ‘정말 아이디어가 좋은데 우리 상황이 안 돼서 못한다. 미안하다’는 말을 들었다.”


비결이 뭔가.

“비딩 참여 방법부터 우린 남달랐다. 참신한 아이디어, 실제로 적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딱 1개만 들고 갔다. 광고대행사가 광고주에게 제안할 땐 보통 3개의 기획안을 들고 간다. 하나만 가져가는 건 불안하기도 하고 또 브랜드 광고 담당자 입장을 생각한 구색 맞추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그것부터 낭비라고 생각했다. 모든 걸 쏟아부은 최고의 한 가지 제안서면 되지 않나.”


불안하지 않았나.

“공을 많이 들인 하나였다. 보통 기획안 준비의 50%는 시장 조사에 사용한다. 우리는 이 시간을 없앴다. 아이디어를 내는데 주어진 시간을 100% 사용했다. 시장조사는 평소에 했다. 직원들이 모두 화장품을 좋아해서 항상 관심을 갖고 있었고, 이를 기반으로 아이디어만 새로 만들면 됐다. 다른 광고회사 대비 2배의 시간 만큼 아이디어를 만들고 다듬을 수 있었던 셈이다.”


브랜드피티는 LG생활건강의 후·숨37·빌리프·VDL 등 브랜드와 협업해 디지털 광고와 캠페인을 진행했다. 창업 2년 만에 35억원의 광고 수주를 달성하며 이후 에스티로더, 스와로브스키, 차앤박화장품 등 유명 브랜드와 함께 일했다.


작은 신생 광고 회사가 어떻게 큰 화장품 회사의 광고를 수주할 수 있었나.

“운때도 잘 맞았다. 당시(2014년) 잡지·방송 등의 매체에서 디지털 플랫폼으로 광고가 전환되고 있을 시기였다. 무엇보다 통통 튀고 참신한 아이디어가 필요한 시장이었고, 우리 스타일과 딱 맞아 떨어졌다.”


광고만으로도 사업이 잘됐는데, 화장품을 만든 이유는.

“화장품 광고를 만들면서 우리가 모두 화장품을 너무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다. 뷰티는 상상력을 매력적으로 풀어내는 게 중요한 시장이다. 그런 성격이 우리 성향과도 딱 맞았다. 물론 론칭 직전만 해도 걱정이 많았다. 브랜드 유통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어 걱정이 컸다. 그런데 인스타그램에 광고를 올린 바로 다음 날 고객센터로 유통회사 바이어들의 전화가 왔고 그 뒤로는 일이 술술 풀렸다.”


'라카'의 제품들. 가장 인기가 좋은 워터리 쉬어 립스틱(왼쪽)과 저스트 아이팔레트. 사진 라카


'젠더뉴트럴'을 콘셉트로 잡은 이유는.

“브랜드를 만들 때 가장 중점을 둔 게 시대적인 이야기를 담자였다. 지금 뷰티 시장의 화두는 비건·젠더·크루얼티프리(동물복지)로 정리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중에서 누구도 아직 손을 대지 못한 분야가 젠더 이슈더라.”


정말 궁금한 질문. 라카를 정말 남자도 많이 쓰나.

“먼저 바로잡을 것이 있다. 우리는 ‘남자도 쓰기 좋은’ 화장품이 아니고, ‘누구나 쓰기 좋은’ 화장품이다. 그래서 한 번 발랐을 때 발색력이 너무 튀는 립스틱은 우리 것이 아니다. 한 번 발랐을 때는 바른 듯 안 바른 듯 색이 연하게 나오고, 두 번 세 번 덧발라야 색이 나는 것. 휴대폰 뒷면에 얼굴을 비쳐서 대충 발라도 감각적으로 보이는 그런 화장품이 우리 제품의 특징이다.    


남자가 립스틱 바르는 장면을 광고로 보여줬잖나.

“그건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을 수 있는 장면을 보여준 거다. 여성 화장품을 남성도 쓸 수 있다는 게 아니라, 누구나 쓸 수 있다는 메시지였다. 실제로 남성 구매도 많다. 코랄 빛이 나는 밝은 갈색 립스틱 ‘레너드’는 10명 중 3명이 남성 고객이다. 반투명이라 내 입술색이 살짝 비치면서 생기있어 보이는 효과를 낸다. 그 다음으로는 어두운 톤의 파운데이션이 남성 고객에게 인기가 좋다.”


뉴트럴 컬러를 내세웠다. 대체 어떤 컬러인가.

"쉽게는 저채도의 색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모든 색에 베이지 빛을 가미해서 한국인 피부색과 잘 어울리게 했다. 한 팔레트에 담은 아이섀도는 모든 색의 명도와 채도 수준을 맞춰 4가지 색을 함께 바를 때 따로 돌지 않고 잘 어우러지도록 균형을 맞췄다."


유통을 올리브영에서 시작했다. 화장품업계에선 올리브영 들어가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고 하는데.

“고작 SNS 한 곳에 광고를 올렸을 뿐인데, 전화를 많이 받았다. 나도 신기했다.”


스스로 성공 비결을 꼽아 본다면.

"무조건 잘 팔릴 제품만을 목표로 하지 않았다는 것. 시장의 요구에 따라 '우리다운' 것을 만들어 냈다는 게 주요했다. 덧붙이자면, 포장지 하나까지 엄청난 공을 들였다. 어느 브랜드나 그렇겠지만 제품 출시 전까지 고치고 다듬고 다시 만들어 보기를 수없이 했다. 멤버들의 손을 너무 타서 윤이 난 느낌이랄까. 다들 화장품을 좋아하는 '화장품 덕후'이다 보니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다들 '내 맘에 드는 화장품'을 만들고 싶어 정성을 다했다."


https://mnews.joins.com/article/23735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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