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적인 내편

by TRILLIWON

본가에 다녀와 강아지 초코를 실컷 보고 왔는데도 돌아서면 어쩐지 더 보고 싶어집니다. 유난히 겁이 많아 낯선 사람에겐 으르렁대며 날을 세우다가도, 제 발소리만큼은 귀신같이 알아채고 꼬리가 떨어져라 흔들어대는 아이죠. 그 환대의 잔상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옅은 온기가 차오르곤 합니다.


사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조건'에 둘러싸여 살아갑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애쓰고,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며, 가끔은 내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기가 두려워 움츠러들기도 합니다. 끊임없이 증명하고 성취해야 하는 세상 속에서 마음은 자꾸만 건조해지곤 하죠.


하지만 초코를 마주할 때만큼은 그 모든 무거운 짐을 내려놓게 됩니다. 이 아이는 제가 얼마나 성공했는지, 어떤 실수를 했는지, 오늘 하루가 얼마나 엉망이었는지 따위엔 전혀 관심이 없거든요. 낯선 세상엔 사납게 짖을지언정, 제 곁에서는 그저 온기를 나누고 가만히 눈을 맞춰주는 것만으로도 모든 불안을 잊게 해줍니다.


그 어떠한 조건도, 계산도 없이 온전히 나라는 사람 자체를 환대해 주는 존재. 이런 무조건적인 편듦을 경험하는 순간, 밖에서 한껏 곤두섰던 마음의 날들이 비로소 부드럽게 가라앉는 것을 느낍니다. 저는 초코를 통해 세상이 요구하는 모습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단순하고도 강력한 위로를 받습니다.


바쁜 일상에 치여 마음이 메말라갈 때, 잠시 눈을 감고 여러분을 조건 없이 반겨주던 존재를 떠올려보셨으면 합니다. 그게 가족일 수도, 친구일 수도, 혹은 저처럼 작은 강아지일 수도 있겠죠. 그 온기를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여러분의 마음속엔 이번 봄이 조금 더 다정하게 머물 수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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