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하인드 스토리펀딩 4편] 조곤조곤 사회 모순을 말하다 '김민섭 작가'
초면인 남자 둘이 홍대 앞 일식집에 마주 앉았다. 둘만 만나려 했던 건 아니다. 주선자 역할을 하던 한 사람이 점심 때 삼겹살을 먹다가 물렁뼈를 씹었는데 어금니가 깨져서, 갑작스럽게 못 나온다고 통보했다.
“요즘 얼마나 살림살이가 나아졌으면, 점심 때 삼겹살을 먹겠어요? 보통 점심 때는 삼겹살 집에서도 김치찌개 먹지 않나요. 참 부럽네요.”
나는 어색한 정적을 깨기 위해 무리한 ‘드립’을 쳤다. 상황은 더 어색해졌다. 마침내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는 처음 뵙는 분과 할 이야기 없을 때는, 그냥 제가 살아온 이야기를 해요. 먼저 제 얘기를 해도 될까요?”
뭔가 매우 예의 있는 제안을 했다. 내 얘기하겠다는데 이렇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는 경우는 흔한 일이 아니다. 보통은 ‘내가 왕년에 말이야’ 하면서 호방하게 이야기를 시작하기 마련이다.
그는 조곤조곤 말을 이어갔다. 대학 시절 이야기부터, 지금의 아내를 만난 이야기. 아이 키우는 이야기, 지금 칼럼 3개를 쓰고 있는데 그게 생각보다 돈이 안된다는 이야기까지 시시콜콜한 이야기지만 금세 빠져들었다.
소주를 적당히 나눠먹으니 취기도 올랐다. 처음 만난 사람 치고는 꽤 친밀감이 느껴졌다. 그는 나에게 물었다.
“혹시 이브 좋아하세요?”
90년대 말 비주얼 록 그룹. ‘X재팬의 짝퉁’이라는 말도 있었다. 록발라드 ‘너 그럴 때면’ ‘아가페’ 등의 곡을 남겼다. 버즈가 데뷔하기 전 남학생들의 ‘워너비’였던 그룹이다. 그 시절, 노래방에서 우린 모두 이브였다.
그는 이브의 노래를 한 소절 불렀고, 나는 자연스레 따라 불렀다.
“그럴 땐 나를 생각해, 너 초라해 진대도
세상이 다 너를 (너를) 외면한대도..”
여기서 ‘너를’이란 코러스를 완벽하게 해내자 우린 기쁨의 하이파이브를 했다. 한 곡이 다 끝나기 전에 일식집에서 쫓겨났다. 아주 고즈넉한 일식집이었다.
이브를 좋아하는 그는 ‘나는 지방대 시간 강사다’ ’대리사회’라는 책을 쓴 김민섭 작가다. (중요한 건 아니지만) 삼겹살 먹다가 이가 부러진 그는, 스토리펀딩에서 10억 펀딩 받은 박상규 기자. 김 작가와 친분 있었던 박 기자의 중재로 술자리가 만들어졌지만, 둘만 먹게 됐다. 김민섭 작가의 인생 이야기와 이브 노래 덕에 우린 금세 ‘한통속’(서로 뜻이 통하는 무리)이 됐다.
김민섭 작가에겐 자신의 이야기를 조곤조곤 담담하게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듣는 이를 빠져들게 한다. 공감하게 한다. 묘한 매력이다.
이 특별한 능력은 김민섭이라는 새로운 ‘르포 작가 브랜드’를 만들었다. 많은 르포 작가들이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하려 노력한다. 현장감이 느껴지지만 인간미는 떨어진다. 김민섭 작가의 글에는 인간미가 있다. 책 안의 글이 살아 숨 쉬는 것처럼 느껴진다. 글을 쓰기 위해 체험을 하는 게 아니라, ‘먹고살기 위한 체험’이라 글의 맛이 강렬하게 느껴진다. 그게 비록 쓴 맛일지라도..
“저는 강단에서는 '허울 좋은 젊은 교수님'이지만, 실상은 노동자로 규정될 수 없는 4개월짜리 계약직 강사일 뿐입니다. 생업인 강의와 연구로는 도저히 생계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저와 같은 처지의 연봉 천만 원 남짓의 4대 보험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시간강사들이 오늘도 대학 강의의 절반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학생들은 스스로 노동자로서, 사회인으로서, 자기 존엄성을 지닐 수 없는 한 존재와 강의실에서 마주합니다.”
김민섭 작가는 4대 보험을 보장받기 위해 맥도널드의 아르바이트로 취직했다. 학교에서는 ‘교수님’으로 불리지만, 아이의 건강보험을 위해 맥도널드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조곤조곤 읊조렸다. 교수보다 맥도널드 아르바이트가 더 인간다운 대우를 해줬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는 제목의 글은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널리 퍼졌고,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다. 이 사회, 특히 대학 사회의 모순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다. 줄여서 ‘지방시’라는 별칭도 생겼다. 이름은 프랑스 명품 브랜드지만, 풀어쓰면 ‘4대 보험 보장도 못 받는 지방대 시간강사’ 딱 알맞은 말이었다.
스토리펀딩에서도 많은 후원자들이 ‘지방시’의 글과 상황에 공감했다. 1600만 원의 펀딩을 받았고, 이 돈으로 김민섭 작가는 아들 장난감을 사줄 수 있었다.
대리 사회는 그의 새로운 도전이었다. 이 또한 글보다는 생계를 위한 도전이다. 흔히 ‘할 거 없으면 대리운전이나 하지 뭐’라는 말을 한다. 20대 청춘을 바친 대학에서 나온 김민섭 작가가 할 수 있는 건 정말 대리운전뿐이었다.
타인의 운전석에 앉은 그는 상황의 모순을 얘기하는데 그치지 않았다. 우리 모두의 안에 숨어 있는 ‘갑의 모순’에 대해 이야기했다. 대학 이야기엔 ‘내 이야기가 아니야’하던 독자들도, 대리기사 이야기엔 크게 공감했다. 누구든 대리운전 한 번씩은 불러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대리운전을 하면서 처음 들었던 말은 ‘아저씨 언제 와요’ 짜증 섞인 목소리였다. 나에게는 나의 호칭을 결정할 권한이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아직 대학이라는 공간에 젖어 있던 나의 신체를 우악스럽게 현실로 잡아 끌어왔다. 나는 지금 대학이 아닌 거리에, 그리고 세상에 있다. 아저씨에 익숙해져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뛰었다.”
“차가 많이 낡았죠 하고 웃던 그는, 차의 '가격'과는 별개로 내가 만난 가장 '품격' 있는 손님이었다. 대리기사와 자신을 함께 주체로 만들었다. 그러한 힘은 상대방의 처지에서 공감하고 또한 경청하는 데서 나온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대리기사와 자신을 함께 대리로 격하시킨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보이지 않는 선을 긋고 하대하지만 결국 자신도 그 밑에 존재하게 됨을 알지 못한다.”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들은 많은 이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간의 삶을 돌아보게 했다. 대리운전 기사 여러 명을 불러놓고 누가 빨리 오는지 지켜보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런 이들에게 김민섭 작가는 일갈한다.
“당신 때문에, 누군가는 뛰고 있다.”
난 대리사회를 세 번 읽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나의 행동을 변화시켰다. 대리운전을 이용할 때면 기사님께 꼭 정중하게 말씀드린다.
“선생님, 내차라고 생각하시고 편하게 운전해주십시오.”
대리사회에는 이런 이야기도 나온다. 좁은 공간에 주차를 하던 중, 차 주인이 ‘오라이 오라이’ 해서 믿고 후진했더니 사이드 미러가 살짝 긁힌 사고가 있었다. 이때 주인은 인상을 찌푸리면서 사이드 미러를 보더니 “조금 긁혔네요”라고 말했다. 이후 별 이야기 없이 헤어졌는데 김민섭 작가는 잠을 못 이뤘다고 한다.
‘조금이 얼마나 긁힌 걸까?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정도인가? 30만 원을 물어줄 정도인가? 아니면 100만 원?’
수많은 생각들이 들었다고 한다. 다행히 이후에 아무런 연락은 없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김민섭 작가는 말한다.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조금’ 같은 모호한 언어를 쓰면 안 돼요. 을의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엄청난 폭력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얘기를 듣고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그간 내가 갑의 위치에서 모호하게 썼던 표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후 회사에서 팀원과 이야기할 때 가능한 구체적으로 말하려 노력한다. 김민섭 작가의 글은 나의 행동까지 바꿨다.
‘대리사회’로 1800만 원 펀딩 받았다. 큰돈은 아니지만 작가로 자립하는데 도움을 줬다. 3개 쓰던 칼럼은 5개로 늘었다. 그의 특별한 경험을 듣기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여기저기 강연 다니고 있다. 최근에는 군부대와 교도소에 다녀왔다. ‘대학의 유령’으로 살고 있는 후배들을 위해 대학 노동자 인권 개선 활동도 하고 있다.
내가 갑의 위치에서 모호한 이야기를 할 때, 대리 운전을 이용하면서 ‘아저씨’라고 부르려 할 때.. 나 그럴 때면, 이브의 노래와 함께 김민섭 작가가 생각난다.
그럴 땐 나를 생각해.
* 스토리펀딩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이야기 가진 창작자를 만납니다. 비하인드 스토리 전합니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책에 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