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하인드 스토리펀딩 5편] 재심 전문 박준영 변호사
리우 올림픽을 앞둔 2016년 8월, 사람들의 관심이 모두 올림픽 행사에 쏠려 있던 어느 날이었다. 박상규 기자와 박준영 변호사를 만났다. 상황이 급박했다.
“운이 좋다고 생각했어요. 불행한 사람들을 위해 일할 기회와 능력이 있으니 행운이라고. 그런데 막상 재정 상황이 어려워지자 세상이 나를 버릴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밀려들었어요.”
그의 말속에는 정의를 향한 열정 못지않게 경제적인 문제에 대한 불안감이 묻어 있었다.
“목표를 얼마로 잡을까요?”
그를 돕고 싶다는 마음이 앞섰지만 실질적으로 얼마나 펀딩을 해야 그의 어려움이 덜어질지 감이 없었다.
"2000만 원 정도면 되지 않을까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위해 10년간 무료 변론했다. 3억 원의 빚을 졌다. 그는 2000만 원이라는 제안도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고개를 떨어뜨렸다.
1억을 제안했다. 이 용감한 변호사의 빚을 모두 갚을 수는 없겠지만 어려운 이들을 돕는 그에게 우리 사회가 지고 있는 마음의 빚을 조금이나마 갚고 싶었다.
“올림픽을 앞두고 있는 데다가 돈 없는 변호사를 돕자는 얘기에 사람들이 1억이나 낼까요?”
‘하나도 거룩하지 않은 파산 변호사’ 박준영 변호사를 위한 펀딩 프로젝트는 그렇게 두려움 속에서 시작되었다.
우리도 ‘파산 변호사 프로젝트’에 사활을 걸었다. 리우 올림픽 열기에 펀딩 금액이 곤두박질치던 시기였다.
두 가지 전략을 세웠다. 첫 번째는 ‘사전 예고’. 스토리펀딩 재심 3부작을 진행했던 박 변호사가 빚을 많이 지고 있고 이를 위한 펀딩을 진행한다는 소식을 소셜미디어와 언론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알렸다. 언제 펀딩이 시작되느냐는 문의가 빗발쳤다. 후원자들은 지갑을 들고 대기하고 있었다.
두 번째는 ‘프로젝트 이름’이다. 처음에는 ‘하나도 거룩하지 않은’이 박 기자가 제시한 프로젝트 제목이었다. 뭔가 밋밋했다. 그러자 그는 ‘하나도 거룩하지 않은 공익 변호사’라는 제목을 보내왔다. 완결성은 있지만 임팩트가 없었다. 의견을 모았다. ‘가난한 변호사’, ‘빚쟁이 변호사’ 등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오갔다.
“파산 변호사로 합시다.”
처음에 박 변호사는 반대했다. 법률적 의미로 아직 자신은 파산이 아니라는 이유였다. 하지만 법률적 의미와 콘텐츠적인 의미는 다를 수 있다. 일종의 ‘시적 허용’인 셈이다. 박 기자와 나는 박 변호사를 설득했고 결국 ‘하나도 거룩하지 않은 파산 변호사’로 프로젝트 이름을 결정했다. 아직도 박 변호사는 ‘파산 변호사’라는 수식어 소개된다.
어느 토요일이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집에 늦게 들어간 탓에 가정에 지은 죄를 뉘우치며 아이와 놀아주고 있었다. 박 변호사에게 전화가 왔다.
“스토리펀딩에 댓글을 30개밖에 달 수 없던데, 좀 늘려주세요.”
주말에 전화해서 미안하다 같은 인사도 없이 무턱대고 건넨 한마디였다. 뭐라고 답해야 할지 잠깐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데 박 변호사의 말이 바로 이어졌다. “내가 지금 댓글 단 독자들에게 댓댓글을 달아주고 있는데, 하루에 30개밖에 못 단다고 하네요. 더 늘려주세요.”
댓글의 수를 하루 30개로 제한하는 것은 댓글 도배를 막기 위한 회사 전체의 규정이다. 한 사람의 요구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박 변호사는 막무가내였다. 진실을 밝혀서 사람들이 재심 중인 사건에 대해 오해하지 않게 하려면 댓글을 달아야 하는데, 하루에 30개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이야기였다.
박준영 변호사는 계속 댓글을 늘려달라고 요청했다. 아무리 나에게 말해봤자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사정을 설명했다. 당시 박 변호사는 누구보다도 억울한 사람의 심정을 알리고 싶어 했다. 그래서 독자들과 꾸준히 소통하면서 한 사람에게라도 더 알리려고 노력했다.
우리 가정의 평화로운 주말은 방해받았지만 박 변호사가 스토리펀딩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 하는 마음만은 깊이 전해졌다. 마음을 다해 이야기하고 싶다는 진심, 나는 그날 그의 진심을 보았다.
“진실은 영원히 가둘 수 없다”라는 박준영 변호사의 말처럼 진짜는 모두가 알아보는 법인가 보다. 사전 예고와 귀에 꽂히는 프로젝트 이름 덕분에 ‘하나도 거룩하지 않은 파산 변호사’는 오픈과 동시에 후원액이 몰렸다.
어려운 이들을 위해 무엇이든 돕겠다는 그의 진심이 1만 7112명의 후원자들에게 전해졌는지, 목표했던 1억 원은 3일 만에 달성되었다. 목표를 달성한 날, 박 변호사와 박 기자는 기쁨의 페이스북 라이브를 하며 자축했다. 후원이 후원을 불러왔다. 후원액은 무섭게 올라갔고 스토리펀딩 역사상 최고 금액이 모였다. 박준영 변호사는 말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가난하지 않습니다."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석 달 동안 5억 원이 넘는 돈이 모였다. 5억 원이라는 금액 안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진심이 모여 있었다. 거기엔 최저임금을 받는 사람의 일당도, 500원씩 모은 초등학생의 용돈도, 박 변호사의 취지에 공감하는 통 큰 후원도 있었다.
다들 세상을 바꾸는 힘에 대해 말한다. 하지만 그게 정말 무엇인지를 고민하던 우리에게 박준영 변호사의 프로젝트가 해답의 일부를 보여주었다. 누군가의 용기 있는 고백과 억울한 이들의 아픔에 대한 관심, 그리고 선한 연대의 힘으로 세상은 조금씩 바뀐다는 것을 말이다.
박준영 변호사의 '재심'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스토리펀딩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이야기 가진 창작자를 만납니다. 비하인드 스토리 전합니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책에 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