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하인드 스토리펀딩 6편] 오마이뉴스 선대식 기자
선대식 기자의 기사는 재미 없다. 때로는 지루할 때도 있다. 기사가 생명력을 갖기 위해선 다양한 요소를 갖춰야 한다. 시의성, 정확한 팩트, 수려한 문장 등이 있지만, ‘재미’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재미는 독자들이 기사를 읽게 만드는 주요 원동력이다.
"이번 기사도 노잼인데.."
선대식 기자가 스토리펀딩에 기사를 보내면 항상 이런 말을 건낸다. 이렇게 공개적으로 ‘디스’ 할만큼 친한 사이다. 친하다고 농담을 건네는 게 아니다. 팩트에 근거해서 얘기한다. 선대식 기자의 기사는 정말 재미 없다. 일종의 '팩트 폭행'이다.
선 기자와 나는 오마이뉴스 공채 3기 동기다. 힘든 시절을 함께 했다. 동고동락이라는 상투적 표현은 쓰지 않겠다. 동고동고 했다. 주로 괴로울 때만 함께 했다. 그만큼 막내 기자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신입 기자 시절 나는 젊은 패기를 보여주고자, 다양한 시도를 했다. 꽉 막힌 고속도로에서 뻥튀기를 팔아보고 이를 체험기로 썼다. 거리의 담배 꽁초를 직접 주으며 얼마나 많은 양심이 버려지고 있는지 숫자로 보여줬다.
당시 반지하에 자취를 하고 있었는데, 옥탑방에 살고 있는 여자 후배를 꼬드겨 ‘반지하 남자와 옥탑방 여자의 자취 이야기’란 제목의 에세이를 연재했다.
반응이 좋았다. 2009년 ‘대한민국 20대 자취의 달인’이라는 책으로 펴내기도 했다. (사실 책에는 큰 관심 없었다. 옥탑방 사는 후배에 관심 있었다. 책을 함께 쓰면서 우린 부부가 됐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 그때 나의 기사를 읽어보면 참 부끄럽다. 한 단락도 읽지 못하고 닫아버린다. 손발이 오그라들다 못해 사라진다. 당시의 트렌드를 좇기 위해 무리수를 둔 문장도 보인다. 개그 프로그램에서 유행하던 “운전해~ 어서~” 같은 표현이 기사 곳곳에 등장한다. 당시 독자들의 이목을 끌었을지는 몰라도, 지금 내 글은 부끄러운 과거다.
선대식 기사는 신입 기자 시절부터 참 재미없는 글을 썼다. 20대 기자들은 기피하던 노동 현장의 기사를 고집했다. 그래서 선 기자의 기사는 트렌디 하지 않았고, 톡톡 튀지 않았다. 고루하고 지루했다. 나는 항상 “네 기사 정말 재미없다”며 핀잔을 주었다.
10년이 지난 후 선 기자의 기사를 다시 읽어보았다. 문장 하나에 하나에 절박함이 느껴진다. 재미는 없지만 큰 울림이 있다. 가슴을 뜨겁게 때리는 이유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게 없는 현실 때문이다.
선대식 기자는 지난 2016년, 두 달간 불법 파견 노동 위장 취업을 했다. 그 가혹한 현실을 몸소 체험했다. 얼마나 불합리 한지를 낱낱이 밝혔다.
“저희 부모님은 과거 치킨집·노래방을 운영했습니다. 장사가 안 돼 가게를 접었고, 두 분은 지금 파견·용역 회사를 통해 청소와 경비일을 하고 있습니다. 새벽 5시에 출근하는 두 분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그래도 저희 부모님은 일자리를 구했으니, 파견법에 고마워해야 할까요. 저희 부모님은 저임금과 고용 불안정에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특히 어머니는 "단기 계약서를 썼는데 퇴직금을 받을 수 있냐"고 제게 물었습니다. 또한 최근 파견 회사에서 퇴직금을 주지 않기 위해 직원들을 괴롭혀 퇴사하도록 했다고도 했습니다. 다음은 당신이 되지 않을까 걱정을 하셨습니다.
어머니의 불안한 마음을 달래드리고,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파견노동자인 어머니의 상황을 생각하면, 현실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파견법의 진짜 이름은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입니다. 하지만 파견법은 파견노동자를 보호하는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파견을 합법화 합니다.”
선 기자의 출사표다. 부모님이 직접 격은 파견법의 부조리를 아들이 직접 체험했다.
"A조 조장이 파견노동자만 모이라고 했어요. 파견노동자들에게 가위바위보를 시켰어요. 여기에서 진 사람만 해고했어요. 친한 형도 해고 됐는데, 큰 충격을 받았죠."
"정규직 되려고 눈치 봐가면서, 남들 쉴 때 일했어요. 일하면서 언제 잘릴지 몰라 불안했는데, 결국 해고 됐잖아요. 저도 그렇고, 그때 해고된 사람들은 말 한마디 못하고 받아들였어요. 그때 너무 암담하고 힘들었어요."
"출퇴근 시간까지 생각하면, 하루 15시간 이상을 회사를 위해 일해야 해요. '일찍 퇴근해서 여자친구랑 놀고 싶다'라고 한다면, 그 길로 퇴사하시면 돼요. 생산직은 부지런해야 해요. 일하려면 잠을 줄이는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마음 독하게 먹어야 합니다. 공장에서는 무시당하고, 막말도 들을 거예요. 대우 좋다고 하는 곳에 가서, 속아도 봐야 해요."
선 기자는 두 달간의 파견 노동 후 기자로 돌아왔다. 보고 들은 일을 그대로 옮겼다. 상상한 것보다 더 열악하고 처참했다. 누군가의 아들 딸이고, 누군가의 엄마 아빠, 우리들 삶의 이야기였다.
선 기자의 글은 재미가 없어서 그런지 펀딩도 잘 안된다. 불법노동 위장 취업 보고서는 241만원을 받았다. 스토리펀딩 프로젝트당 평균 900만원에 한참 못 미치는 금액이다.
이전에 진행했던 ‘집을 짓자 비정규직의 쉼터 꿀잠’ 프로젝트는 313만원 받았다.
노동의 현장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시력을 잃는다. ‘누가 청년의 눈을 멀게 했나’ 프로젝트로 현장의 위험성을 알렸다.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기업에겐 책임을 물었다.
이 프로젝트에 소개된 피해 청년은 UN 인권 이사회에서 발언까지 했다.
선대식 기자는 기자협회에서 주는 이달의 기자상을 두 번 탔다. 기자들도 이 재미없는 기사의 필요성을 인정한 셈이다.
“단지 운이 좋아서, 눈이 멀지 않았습니다.”
선대식 기자의 소개 글이다. 이런 문장에서 어떻게 재미를 찾을 수 있겠는가. 모든 기사가 재밌어야 하는 건 아니다. 때로는 분노해야 하고, 때로는 눈물 흘려야 한다.
재미는 없지만 묵묵히 나간다. 이게 선대식 기자의 스타일이며, 그의 존재 이유다.
* 스토리펀딩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이야기 가진 창작자를 만납니다. 비하인드 스토리 전합니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책에 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