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하인드 스토리펀딩 7편] 성 소수자의 목소리를 전하다
스토리펀딩 서비스를 운영하기 전 포털 사이트 Daum 뉴스 팀에서 뉴스 콘텐츠를 편집했었다. 하루 3만여 건의 기사가 포털로 전송되는데, 그중 기사의 경중을 파악해 다음 내 주요 영역에 배치하는 것이 내 업무였다. 수많은 기사와 댓글을 수시로 확인한다. 이 일만 6년 정도 했다.
기사와 댓글을 자주 보다 보면, 기사 제목만 보고도 댓글이 예상되는 경우가 있다. ‘이 기사엔 욕이 달리겠구나’ ‘이 기사는 선플이 달리겠구나’ ‘이 기사는 무플이겠구나’ 하는 예측, 6년 정도 일을 하면 이 예측이 어느 정도 들어맞는다.
무조건 악플이 달리는 키워드들이 있다. 바로 ‘페미니즘, 외국인 노동자, 성적 소수자’다. 이 세 가지 키워드는 기사를 올리자마자 악플이 달린다. 말 그대로 기사 내용조차 읽지 않은 채 헤드라인만 보고 악플을 다는 것이다. 기사를 읽지 않고 악플을 단다는 건, 그만큼 이유나 논리도 없이 미워하는 혐오의 감정이 담기지 않고서야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최근 페미니즘 기사엔 예전만큼 악플이 많이 달리지 않는다. 점점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페미니즘을 올바르게 알리려는 분들의 활약이 컸다.
지치지 않는 소수자 혐오
외국인 노동자와 성적 소수자에 대한 기사에는 여지없이 혐오성 댓글이 달린다. 문제는 댓글창에서 이들을 대변해 싸워줄 사람도 많지 않다는 데 있다. 그렇게 되면 자기 항변을 해볼 기회 없이 악플이 베플이 되어 댓글창 전체를 장악한다. 외국인 노동자와 성소수자는 그런 면에서 보면 예전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사회적 약자이자 소수자다.
소수자는 수의 문제는 아니다. 만약 숫자의 문제라면 우리나라의 권력자는 모두 소수자고 평범한 우리가 다수자가 되어야 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소수자는 숫자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권력의 문제다. 자기를 대변해줄, 자기를 설명할 수 있는 힘조차 갖지 못하는 사람들이 소수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기를 대변할 수 없는 사람들을 배척하고 모른 체해야 하는 것일까? 나와 다르다고 한 사람씩 밀어내기 시작하면 어떻게 될까? 결국 나와 다르다고 밀어내는 나 자신조차 다른 누군가에게 밀려날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함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의 가치를 내 것으로 받아들이지는 못해도 사회에서 함께 살 수는 있어야 한다.
특히 성소수자는 혐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어쩌면 남과 여로만 나뉜 우리의 이분법적 세계에 균열을 내며 세상을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특별한 존재들은 아닐까?
성소수자에 대한 대우는 곧 한 국가의 수준이다
성소수자가 세상에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소수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면 그곳은 스토리펀딩이 됐으면 좋겠다. 세상 모든 이들이 창작자가 될 수 있다. 이를 위해 성적 소수자들에게도 그 공간을 제공하고 싶었다.
그러나 결정까지는 쉽지 않았다. 성적 소수자들이 목소리를 냈을 때, 그동안 경험했던 일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악플. 무척 단순하게 들리지만 그 안에 담긴 성적 소수자에 대한 악의는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스토리펀딩 팀에서 좋은 취지로 성적 소수자를 위한 공간을 마련한다 하더라도, 댓글까지 통제할 수는 없었다. ‘여기서 한번 이야기해 보세요’라고 장을 펼쳤지만, 거기서 혐오성 댓글만 달려든다면.. 그들에게 말을 하라고 제안할 수 있지만, 거기서 오는 상처까지 당신이 감수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었다.
딜레마였다. 성소수자들에게 마이크를 쥐어주자니 악플이 달릴 테고, 그렇다고 악플이 두렵다고 그들에게 침묵을 지키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그전과 달리 모든 이용자가 댓글을 달 수 없게 만들었다. 후원자만 댓글을 달 수 있게 했다. 아무리 싫더라도 돈을 내고 욕할 사람은 없지 않겠는가?
트랜스젠더의 이야기를 전하다
그렇게 후원자 전용 댓글 시스템으로 시작한 프로젝트가 바로 김승섭 고려대 보건정책관리학부 교수의 ‘트랜스젠더 건강 연구 시작합니다’
트랜스젠더와 건강이 도대체 어떤 연관관계가 있는지 궁금한 사람도 있겠지만, 한국은 누구나 알 듯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상당히 강한 편이다. 이 프로젝트는 한국 의료시스템의 사각지대에 놓인 트랜스젠더들이 더 나은 건강과 삶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변화는 무엇인지 알아보는 프로젝트였다. 후원금은 트랜스젠더 건강 연구를 위한 설문조사 실무 비용과 연구결과를 알리는 데 필요한 비용으로 사용됐다.
과연 될까? 싶겠지만, 결과는 놀라웠다. 총 후원액 16,449,000원으로 원래 목표했던 금액보다 164%나 목표를 초과해 후원을 받았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프로젝트에 공감했다. 말 못 하고 숨어 있던 수많은 성소수자들의 후원이 많았다. 이 프로젝트는 평소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던 이들에게 오아시스가 됐다.
“수익성이 전혀 없다는 까닭으로 정부나 기업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받기 마련인 이런 연구를 열악한 환경과 연구에 방해만 되는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마저 극복해가며 진행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직 이 나라, 소수자가 살기에는 너무나도 버겁고 힘겨운 곳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연구를 묵묵히, 꾸준히 진행해 주시는 여러분 같은 분들이 계시기에 세상은 그래도 살 만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후원자 알바트로스 님
“같은 트랜스젠더로서 뜻깊은 연구에 도움이 되고자 후원합니다. 부족하지만 앞으로의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연구가 잘 진행이 되어서 트랜스젠더의 건강 매뉴얼이 만들어지고 사회에서도 인정받는 훌륭한 분들이 많이 동참했으면 좋겠네요" – 후원자 Dosion 님
김승섭 교수는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며 후원자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그리고 이 연구를 하면서 어떻게 자신도 변했는지 솔직하게 고백했다. 역시나 이야기는 사람을 변하게 한다. 마음을 움직여 사람을 변하게 하는 일이 진정으로 스토리의 힘이라는 생각이 드는 글이었다.
저는 성소수자 건강 연구를 시작하기 전까지 트랜스젠더를 만나본 적이 없었습니다. 과거에 텔레비전에서 하리수 씨를 본 게 전부였어요. 그러다가 몇 년 전 성소수자 건강 연구를 시작하면서 트랜스젠더 친구들이 생겼습니다. 그들과 함께 글을 쓰고, 치킨집에서 맥주를 마시고 그렇게 지내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내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것들이 그들에게는 숨 막히게 높은 장벽일 수 있음을 깨닫기 시작했어요.
함께 맥주를 마시는 동안에 건너편 테이블에서 우리 쪽을 힐끔거리면서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로부터 느끼는 불쾌감이나, 남·녀로만 구분되어 있는 화장실을 갈 때마다 조심스러워지고 고민하게 되는 것이나, 트랜스젠더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의료인들이 없어서 병원을 방문하는 것 자체가 힘든 것까지요.
지난 몇 년간 무엇이 더 합리적이고 올바른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누가 더 힘이 있는지를 먼저 물었던 한국 사회에서 연구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질지 회의가 들기도 합니다. 과연 트랜스젠더가 겪는 차별과 어려움, 그리고 그것들이 이들의 몸을 어떻게 해치는지에 대한 좋은 연구가 쌓이면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을까. 무관심하고 냉소적인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설득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당장 눈에 보이는 희망이 없다고 해서 그냥 주저앉아 슬퍼할 수는 없지요. 학자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해서 하려고 합니다.
자, 트랜스젠더 건강 연구,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김승섭 교수의 이야기는 책으로 더 자세히 만날 수 있다. '출판 편집자가 뽑은 2017 올해의 책'으로도 선정됐다.)
LGBT,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스토리펀딩의 성공 기준은 후원 금액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다. 먼저 수치가 나와야 ‘펀딩 성공’이 뜨고, 후원자와 창작자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결과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트랜스젠더 건강 연구’ 프로젝트는 다른 느낌이었다. 댓글을 제한할 정도로 조심스러웠다. 악플만 생각했을 뿐, 성소수자들이 정말 어떤 고민을 안고 있는지 미처 헤아리지 못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들은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사소한 다름이 좁힐 수 없는 차이가 되어 그들은 없는 사람처럼 다루어지고 있었다. 트랜스젠더도 아플 수 있기에 의료서비스가 필요하지만, 국내에 그들의 건강을 연구하는 기관조차 없다는 현실은 알지 못했다.
‘트랜스젠더 건강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나 자신도 나름 성소수자에 무관심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다른 사람들처럼 그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며 나도 모르게 배척하고 있던 것은 아닌지 고민할 수 있었다. 성소수자의 추상적인 삶이 아니라 구체적인 건강과 죽음까지 고민해야 성소수자의 삶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아닌지 새롭게 생각할 수 있었다.
그들에게 반대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도움을 준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기만일 수 있다. 그들에게 말할 권리를 주고,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배려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구성원들에 대한 윤리다. 건강한 사회는 성소수자를 배제한 사회가 아니다. 모두가 함께 생긴 대로 살아갈 수 있는 곳이 건강한 사회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스토리펀딩을 통해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담는 그릇을 잘 빚어내고 싶어 졌다.
LGBT, 주변에서 흔히 보이는 이 단어는 레즈비언(lesbian)과 게이(gay), 양성애자(bisexual), 트랜스젠더(transgender)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 분들을 상징하는 색은 알록달록한 ‘무지개색’이다. 말하기 전에는 누가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우리 주변엔 사회적 편견 때문에 말하지 못하는 LGBT가 분명 많을 거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성소수자 분들이 스토리펀딩에 많이 찾아주시면 좋겠다.
필요하다면 성소수자 분들이 마음 놓고 말할 수 있도록 못다 한 이야기들, 서운했던 이야기들, 행복했던 이야기들까지 나눌 수 있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을 만들어놓고 편하게 말을 꺼낼 수 있도록 준비해두려 한다. 스토리펀딩에 보다 다양한 시선의 다양한 색깔을 가진 이야기들이 그들만의 모험을 떠나길 바라본다. 비 오는 날에만 무지개를 보는 것이 아니라 맑고 환한 날에도 희망의 무지개가 스토리펀딩에 가로 놓이길 기대해 본다.
* 스토리펀딩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이야기 가진 창작자를 만납니다. 비하인드 스토리 전합니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책에 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