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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건 Jul 26. 2018

듣보의 갑툭튀를 꿈꾸며

[업 에세이] 콘텐츠 플랫폼 마케팅

[업 에세이] 콘텐츠 플랫폼 마케팅

출근길엔 음악을 듣는다. 과일 이름의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한다. 습관적으로 실시간 차트를 플레이 한다. 최근 걸그룹이 많이 컴백했다. 트와이스, 에이핑크, 블랙핑크, 반가운 (그리고 고마운) 이름들이다. 셋 중 누가 나와도 좋다.  


1위 노래가 흘러나왔다. 걸 그룹의 목소리가 아니다. 기대는 무너졌지만 노래는 괜찮다. 아침에 듣기 좋은 목소리다. ‘괜찮은 신인이 나왔나보다’ 생각하고 조금 기다리니 트와이스 목소리가 나왔다. 행복했다. 


회사에 도착하니 연예 기사면이 들썩였다. ‘숀’이라는 단어가 실시간 검색어 순위를 오르내렸다. ‘숀 차트 역주행 논란’ ‘차트 사재기 의혹’ 제목의 기사가 쏟아졌다.  


신인 가수 숀의 노래 ‘웨이 백 홈(way back home)’ 이야기다. 이 노래는 6월 27일 발매됐다. 보름 가량 천천히 역주행을 시작했고 급기야 7월 17일 트와이스, 블랙핑크, 에이핑크, 마마무 등 쟁쟁한 걸 그룹을 모두 제치고 1위에 올랐다.  



팬덤이 탄탄한 걸 그룹을 신인 가수가 제치자 많은 사람들이 사재기가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런 일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널리 알려지지 않은 가수 닐로의 ‘지나오다’라는 곡도 갑자기 순위가 급상승 했다. ‘웨이 백 홈’과 유사한 패턴으로 상승 곡선을 그렸다. 누리꾼들은 이런 현상을 ‘닐로하다’라는 말로 풍자한다.  


숀 측은 음원차트 1위 논란에 대해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이 노래를 소개했고 그 폭발적인 반응이 차트로 유입됐다. 빠른 시간에 상위권까지 가는 현상이 나타났다. 사재기나 조작, 불법적인 마케팅 같은 건 없다"고 해명했다. 


닐로에 이어 숀까지 사재기와 편법 마케팅 논란이 일면서 음원 시장 전체가 들썩이고 있다. 당사자와 소속사는 억울하다는 입장이지만 신인 가수의 음원차트 1위에 의혹 어린 시선을 보내는 이들이 많은 건, 그만큼 일어나기 힘은 일이 연이어 벌어졌기 때문이다.  


한편에서는 차트 중심의 음악 소비 패턴의 근본적인 문제까지 제기하고 있다. 객관성을 담보할 수 없는 실시간 차트가 음원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또한 차트 선정에 대한 기준도 제대로 공개되지 않아 투명성 논란도 일고 있다.  


음원 차트와 베스트셀러는 닮았다 

 

음원 시장과 출판 시장은 닮았다. 키워드로 정리하면 ‘신인 불신’ ‘차트 중심주의’. 


대중의 취향이 모호해지고 있다. 차트의 힘이 막강해지면서부터다. ‘지금 이 시점에선 노래를 들어야 해’ ‘이 노래를 듣지 않으면 트렌드에 뒤쳐져’ 차트가 주는 메시지는 강력하다.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는 첫 화면에 차트를 보여준다. 내가 듣고 싶은 노래가 아닌, 남이 많이 들은 노래를 찾는다. 듣는 이는 ‘이게 요즘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노래구나’하며 안도한다.  


시장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심해진다. 인기 있는 가수의 노래가 차트에 오르는 건 당연한 일로 여겨진다. 팬덤이 있는 보이 그룹-걸 그룹의 노래는 발매된 지 1~2년 지난 노래까지 차트를 점령한다. 


갑자기 신인 가수가 차트에 오르면 ‘이거 사기 아니야?’ 의심부터 한다. 여기엔 ‘네가 감히’의 정서도 깔려있다. 물론 사재기나 불법 마케팅을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일단 의심부터 하는 게 문제다. 무죄 추정이 아닌 ‘유죄 추정’이다. 듣도 보도 못한 가수에 대한 대중의 평가는 냉혹하다. 


7월 18일 <보그 코리아> 매거진에 재밌는 글이 실렸다. 제목은 ‘베스트셀러 유감’. 글의 내용은 이렇다. 

요즘 베스트셀러는 몇 가지 키워드로 압축된다. SNS, 인플루언서, 힐링과 위로, 짧은 텍스트, 예쁜 책. 잘 팔리는 책이 훌륭한 책은 아니지만, 요즘은 더욱 의문이다.  


“언제 베스트셀러가 좋은 책이었냐마는 요즘은 심하지 않니?” 우리는 베스트셀러 키워드를 SNS, 인플루언서, 힐링, 위로, 짧은 텍스트, 간지럽히기로 꼽았다. SNS에서도 용납하기 힘든 글을 써놓고 ‘창작의 고통’을 얘기하는 작가의 인터뷰를 보면 허망할 지경이었다.  


왜 그것이 베스트셀러가 됐는지 논의하다 작가의 인스타그램을 들여다보고 인정했다. 잘생겼다. 인플루언서다. 누구도 토를 달 수 없는 내용이다(이별하면 아프다, 배고프면 밥 먹는다).’ 출판사 편집자인 친구도 말했다. “출판계가 전성기인 적은 없지만 요즘은 진짜 붕괴된 것 같아. 저자가 잘생겨야 한다니까.” 

 

저자가 잘 생겼고 SNS에서 인기가 있어야 베스트셀러가 된다는 주장이다. 약간은 비약이 섞인 풍자다. 자조적이기도 하다.  


누구나 동의하는, 상식적인 수준에서 ‘좋은 책’이라는 기준이 통용되지 않는다. 좋은 책이 베스트가 아니다. 많은 사람이 구입해서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 그것이 베스트다.  

 

차트가 엄청난 권력을 갖고 있다는 점, 그 차트가 좋은 콘텐츠의 절대 기준은 아니라는 점, 신인에게 유독 가혹하다는 점.  

 

책 베스트셀러와 음원 실시간 차트, 둘은 닮았다.  


TV 감상문은 가치 있는 기사인가? 

 

나는 10년 전 포털 뉴스 에디터로 IT 업계에 발을 들였다. 포털 첫 화면에 노출되는 뉴스를 골라 편집하는 일이다. 


지금은 기사 자동 배치 알고리즘, 자동 기사 분류 기능 등 기술이 많은 부분을 전담하고 있지만, 내가 일 할 때만 해도 수동 방식으로 기사를 분류하고 배치했다. 수백 개 언론사에서 쏟아지는 수만 개 기사를 전부 읽어보고 분류하고 배치했다. 우린 이를 ‘최첨단 수동’ ‘IT 가내 수공업’이라고 불렀다.  


기사 배치의 기준은 명확하다. 현재 가장 중요한 기사를 신속하게 배치한다. 물론 상식적인 수준의 ‘좋은 기사’도 배치의 중요한 기준이다. (각 플랫폼마다 기사 배치 기준(다음, 네이버)을 외부에 공개하고 있다. 현재는 알고리즘 중심으로 배치한다.)

 

기자 생활 했던 나는 기사를 보면 어떤 과정을 거쳐서 나오는지 짐작 할 수 있었다. 발로 뛰며 직접 취재한 기사, 독창성을 주려고 노력한 기사. 어휘 하나하나 고심해서 쓴 기사, 기자들이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머릿속에 그려졌다. 가능한 땀 냄새 나는 기사를 배치하려 노력했다.  


그렇지 않은 기사도 있다. 여기저기서 소스를 모아 짜깁기 한 소위 ‘우라까이’ 기사, 인터넷 검색으로만 쓴 기사, TV 보고 쓴 기사 등은 내 기준에서 좋지 않은 기사라 생각하고 배치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지금은 뉴스-연예-스포츠 전문화 된 에디터가 있지만, 당시는 사람이 많지 않아 3교대로 돌아가며 다양한 섹션을 편집했다. 연예 섹션을 담당할 때였다. 당시 ‘추노’라는 드라마가 인기 많았다. ‘추노’가 끝나면 꼭 TV 감상문 기사가 나왔다.  


‘대길이 장혁, 언년이 이다해와 눈물의 재회’ 이런 식의 기사다. 전형적인 ‘TV 보고 쓴 기사’다. 내 기준엔 좋은 기사가 아니다. 이걸 꼭 걸어야 하나 싶었지만, 드라마 방송이 끝나면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고 화제가 되기 때문에, ‘현시점 중요한 기사’의 원칙에 의해 배치했다. 당시 편집장 역할 하던 선배에게 물었다. 


“집에서도 쓸 수 있는 TV 감상문 수준의 기사를 꼭 걸어야 하나요? 이건 가치 없는 기사 아닌가요?” 

“이 기사 트래픽(기사 조회수)을 봐요. 정치-경제-사회 뉴스보다 2~3배는 많이 보잖아요. 독자들이 이만큼 선택을 했다는 건데, 이걸 가치 없는 기사라고 볼 수 있을까요?” 


독자들의 선택에는 다 이유가 있다. 그걸 간과했다. 내가 경솔했다.  

 

‘발견성’‘다양성’ 플랫폼 운영자의 책무 

 

베스트셀러로 다시 돌아오자. 아까 언급했던 <보그 코리아>의 기사의 일부다. 


염경원 기자는 “독자들이 어떤 식으로든 책을 소비하고 즐긴다면 반갑지 않나요?”라고 반문한다. “책의 물성은 단순히 읽는 것에 그치지 않아요. 좋은 인테리어 수단 혹은 튼튼한 냄비 받침이 될 수도 있죠. 리커버한 책이 인기인데, 읽었더라도 사는 거죠. 책을 수집품으로 여기는 독자가 많다는 의미죠. 책을 정보와 지식의 도구로 한정하면 안돼요. 책의 역할을 대체할 도구·미디어·콘텐츠가 수없이 많으니까요. 온라인 콘텐츠의 질이 낮고 정보를 믿을 수 없다는 것도 옛말이에요. 작금의 온라인 콘텐츠 정보를 따져보면 어중간한 책보다 훨씬 나아요. 지식이나 정보 전달 수단으로서 책의 필요가 약화되면서 자연스레 엔터테인먼트나 취향에 호소하게 된 것이에요. 책이 살아남으려는 노력 중 하나예요. (중략) 한 해 출간하는 책이 8만 권이에요. 책의 홍수에서 책의 존재를 알리는 ‘발견성’이 출판계의 화두죠. 발견성을 끌어올릴 큰 무대가 SNS예요.” 


염 기자 의견에 동의한다. 어떤 이들에겐 수준 미달의 글이라도, 손발을 오그라들게 하는 내용이라도, 어떤 식으로든 그 콘텐츠를 소비하고 즐기고 있다면 반가운 일이다. 

 

TV를 보고 쓴 기사라도, ‘갑툭튀 듣보’ (갑자기 툭 튀어나온, 듣도 보도 못한) 노래라도, 어떤 식으로든 수용자가 그걸 소비하면 그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다.  

 

차트 중심의 콘텐츠 소비 패러다임이 쉽게 바뀌진 않을 것이다. 차트가 주는 장점도 있지만, 고착화 되면서 부익부 빈익빈이 심해진다면, 신인의 시장 진입은 요원하다. 

 

‘발견성’과 ‘다양성’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차트를 소유한, 혹은 차트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플랫폼 운영자의 책무다.  


작은 책의 모험을 응원한다 


의미 있는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모험을 시작한 작은 책들’이라는 제목으로 브런치와 스토리펀딩 두 플랫폼에서 동시 진행한다. 동네 출판사 대표들이 모였다. 온갖 노력을 들여 만들었지만, 빛도 보지 못하고 사라진 작은 책들을 소개한다. 프로젝트의 소개 글이다.  

 

어떤 책은 수십 권의 친구들과 함께 대형서점의 가장 잘 보이는 매대에 놓인다. 시간이 흘러 자신의 분야 매대로 자리를 옮긴 이후에도 전면에 자리하고, 기획이 있을 때마다 불려 나온다. 


여러 일간지와 잡지에 몇 줄의 신간소개는 물론 작가를 조명하는 몇 단의 특집으로도 자신의 이름을 알린다. 그렇게 우리에게 익숙한 베스트셀러가 된다. 


그러나 어떤 책은 시작부터 외롭다. 한두 명의 친구들과 신간코너의 가장자리에서 며칠을 보낸다. 곧 아무도 찾지 않는 먼지가 쌓인 서가로 홀로 사라지고 그 몸에는 먼지가 쌓여간다. 저자나 그의 친구가 와서 굳이 들추어 보기 전에는 누군가가 펴 보는 일도 별로 없고 어느 날 반출되어 생을 마감한다. 

 

온라인에서 그의 이름을 검색해도 블로그에서든 뉴스에서든 제대로 한 줄을 찾아보기도 힘들다. 그런 책들은 왠지, 더욱 작아 보이고 마는 것이다. 그러다가 조금씩 움츠러들어서 정말로 ‘작은 책’이 되고 만다. 


책을 만드는 마음에 귀를 기울여 보자. 이 프로젝트는 그 작은 책들을 당신의 눈이 닿는 곳에 잠시 가져다 두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모두가 서점이라는 공간에서 이전과 조금은 다른 눈높이로 책과 마주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장 크다. 언젠가는 반드시 만나게 될 독자를 위해 책을 만들고 그 모험을 돕는다. 


주간 연재 방식으로 콘텐츠에 집중 할 수 있는 브런치 위클리 매거진으로 프로젝트 내용을 전한다. 모금에 강점이 있는 스토리펀딩으로 프로젝트에 필요한 비용을 후원 받고 있다.  

후원자들에겐 동네 출판사들이 모여서 진행하는 컨퍼런스(9월 1일 팟빵홀)의 초대권과 브런치에 소개된 작은 책들을 선물한다. 프로젝트 시작 나흘 만에 목표했던 금액 300만원 다 채웠다. 


발견되지 않고 아무도 모르게 사라졌던 책들이, 이 프로젝트를 통해 세상에 널리 알려질 수 있으면 좋겠다. 무모한 바람이지만 베스트셀러에도 오르면 좋겠다. '네가 감히' 논란은 있겠지만 ‘듣보’가 ‘갑툭튀’ 했으면 한다. 작은 책의 모험, 혹은 반란을 응원한다. 숀과 닐로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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