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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건 Jul 05. 2018

유연한 유료화 전략

[업 에세이] 콘텐츠 플랫폼 마케팅

[업 에세이] 콘텐츠 플랫폼 마케팅

약속 장소는 항상 광화문에서 가장 큰 서점으로 잡았다. 다양한 책이 있었고 얼마든지 읽어볼 수 있었다. 10~20분 일찍 와서 요즘 어떤 책이 잘 팔리는지, 어떤 새로운 책이 나왔는지 보고, 그 자리에 잠깐 서서 훑어봤다. 짧은 시간에 충분히 파악이 가능했다.  


서점에 100명이 함께 앉을 수 있는 대형 탁자가 생겼다. 사람들은 자리에 앉아 책을 보기 시작했다. 서가에 서서 책을 훑어보던 재미가 사라졌다. 마음만 먹으면 그 책을 끝까지 읽을 수도 있었다.  


졸고지만 책을 내본 경험이 있다. 책값이 너무 싸다고 생각하고 있다. 대형 탁자는 괜히 얄미웠다. 서점에서 책을 다 읽을 수 있게 하면 누가 책을 사갈까 싶었다. 책에 담긴 콘텐츠를 재화의 개념으로 볼 때, 앉아 볼 수 있는 테이블 있다면, 돈으로 사고 파는 행위는 성립되기 어렵다. 그때 이후 서점을 약속 장소로 잡지 않았다.  


서점은 더 이상 ’책만 파는 공간’이 아니다 

 

서점이라는 공간의 본질, 사전적 정의는 ‘책을 사고 파는 가게’이다. 이 본질을 흔든 이유가 궁금했다. 2016년 6월 조선일보 <"서점, 이제 문화·분위기·라이프 스타일을 팝니다"> 기사 일부다.


 

- 2000년대 이후 오프라인 서점은 출판시장의 불황과 온라인 서점의 등장으로 입지가 점점 줄어들었다. 약속 시간을 기다리거나 공짜 책을 보러 가기 위해 번화가에 있는 서점을 들르긴 하지만, 실제로 이런 방문은 오프라인 매장에서 실질적인 구매로 이어지지 않는다.  

 

최근 이런 위기를 색다른 방법으로 돌파하려는 국내외 서점의 변신들이 눈에 띈다. 책을 파는 장소에 그치지 않고, 고객을 다양한 방법으로 붙잡아두는 매력적인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초창기 공짜 손님만 늘어날 것이라는 부정적인 예상도 있었지만, 현재 서점의 변신은 업계의 새로운 활로로 주목받고 있다.

 

리모델링 공사를 마치고 2015년 11월 다시 오픈한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중심부에 놓인 거대한 원목 책상(길이 11.5m) 두 개다. 테이블 한 개당 가로 11.5m, 세로 1.5m~1.8m. 무게는 약 1.6t에 달한다.

 

교보문고 광화문점 점장은 "전에는 서점 바닥에 앉아 책을 읽는 고객이 적지 않았고 '통로가 좁아 불편하다'는 민원도 많았다"며 "독서할 수 있는 자리 400석을 새로 만들면서 사람이 모이고 머무르며 즐기는 공간으로 콘셉트를 바꿨다"고 말했다. 그는 "독자 반응이 좋고 장기적으로는 득이 될 것"이라고 했다. -

 

가장 큰 서점조차도 실질적인 판매가 이뤄지지 않아 ‘도서 비즈니스’가 아닌 ‘공간 비즈니스’ ‘문화 비즈니스’ ‘라이프 스타일 비즈니스’로 사업의 범위를 넓혔다.

 

최근에 개점하는 대형 서점은 아예 라이프 스타일 공간을 표방한다. 4월 개점한 교보문고 광교점은 커피 마시며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카페 공간을 중간에 크게 배치했다. 정규 강좌 및 저자 강연이 열리는 홀이 있어 고객들이 다양한 문화생활을 체험할 수 있게 했다.  


큐레이션 공간인 '헬스앤뷰티'를 만들어 건강, 미용, 취미 등 관련 제품과 함께 큐레이터가 추천하는 연관 도서를 한 곳에서 만나볼 수 있게 했다. 취향을 파는 서점 일본의 츠타야를 벤치마킹 했다.  

 

독립 서점도 취향을 저격하는 새로운 문화 공간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서울 강남 한복판의 ‘최인아책방’은 전 제일기획 부사장이자 카피라이터 출신 최인아 대표가 운영하는 서점이다. 책방이라기보다는 문화센터에 가깝다. 거의 매일 연사 초청 강연과 클래식 콘서트가 이어지고, 동네 주민 파티까지 연다.  


김소영 전 MBC 아나운서가 직접 운영하는 ‘당인리책발전소’, 유희경 시인이 차린 시 전문 서점 ‘위트앤시니컬’는 본인이 직접 큐레이션 한 책으로 인기를 끈다. 책방 주인이 스스로 셀럽화 되면서 주인을 보기 위해 책방을 찾는다는 사람도 늘고 있다.  

 

대형 서점의 변신, 독립 서점의 약진은 반갑지만 ‘책 자체로는 재화가 될 수 없다’는 명제를 증명하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다. 서점은 이제 더 이상 책만 파는 공간이 아니다. 다양한 문화 활동이 이뤄지는 곳이다. 책은 ‘매개’다.  


 

유연한 유료화 전략이란? 

 

"수준 높은 콘텐츠엔 값을 지불한다. 하지만 유료화 전략은 유연하게 가야 한다."


<콘텐츠의 미래>의 저자 프랭크 로즈가 했던 말이다. 테크 매거진 <와이어드(WIRED)>의 객원 편집자이며 미디어-콘텐츠-IT 분야의 전문가다.

 

(<콘텐츠의 미래>는 최근 우리나라에 두 권 출간됐다. 프랭크 로즈가 쓴 책의 영어 원제는 <The Art of Immersion> 직역하면 <몰입의 기술>이다. 경영 컨설턴트인 바라트 아난드가 쓴 책도 <콘텐츠의 미래>다. 원제는 <The Content Trap> 즉 <콘텐츠의 함정>이다. 개인적으로 원제인 <몰입의 기술> <콘텐츠의 함정>으로 출시 됐어도 괜찮았을 것 같다. 두 권 모두 재밌게 읽었다. 콘텐츠 산업 사례와 연구 결과를 잘 정리해뒀다. 두고두고 볼만하다.)  


수준 높은 콘텐츠에 값을 지불한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다. 재화로서 매력도를 높이기 위해 생산자들은 수준 높은 콘텐츠를 만들어왔다.  


‘유연한 유료화 전략’은 무엇일까. 콘텐츠 유료화를 고민할 때, 보통은 유료와 무료의 양극단만 생각하게 된다. 유료 판매를 할 것인가, 무료로 보여주고 광고 등 다른 비즈니스를 할 것 인가 고민한다.  

 

기존의 미디어, 특히 신문, 잡지 등은 유료와 무료 비즈니스를 동시에 해왔다. 유료 판매를 하지만, 광고도 넣어 수익을 챙긴다. 그래서 미디어 시장을 대표적인 ‘양면 시장’이라고 한다.  

 

텍스트(활자) 콘텐츠만 놓고 보면 무료 콘텐츠 시장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21세기 인터넷과 모바일이 발달하며 생긴 시장이다. 20세기만 해도 콘텐츠에 값을 지불하는 게 어색하지 않았다. 곳곳에 버스 회수권과 껌 등을 파는 가판이 있었고, 각종 일간지와 주간지, 매거진을 구입할 수 있었다. 지하철 탈 때면 항상 스포츠 신문을 한 부 사서 읽었던 기억이 있다.  


2000년대 들어 인터넷망이 곳곳에 깔리며 무료 콘텐츠 시장이 생겼다. 콘텐츠는 사람을 모을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사람 모아놓고 광고를 보여줬다. TV 매체의 전통적인 비즈니스 방식이 텍스트 콘텐츠 시장에도 적용됐다.  


무료 콘텐츠가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지면서, 사람들은 콘텐츠는 돈 주고 사보는 것이라는 걸 잊어버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신문과 잡지, 출판 시장이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무료 콘텐츠는 가능한 많은 사람의 눈에 띄어야 한다. 그래야 광고 단가가 높아진다. 일부 콘텐츠 생산자들은 무리수를 두기 시작했다. 자극적인 제목을 달았고, 흥미 위주의 가벼운 콘텐츠를 만들었다. 생산자들이 투자 대비 리턴 효율을 생각하면서, 콘텐츠는 더 자극적이고 가벼워졌다. 미디어 시장엔 효과적으로 트래픽을 모을 수 있는 ‘가짜 뉴스(fake news)’가 등장하기도 했다.  


특히 무료 기사 하나를 보려면 수많은 광고를 봐야한다. 인터넷 기사 한 개를 볼 때 무려 10개가 넘는 광고를 함께 본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인터넷신문위원회는 지난 6월 21일, PC로 인터넷 신문을 볼 때 기사 한 개에 평균 광고 13.2개, 모바일 화면에서는 7.4개가 노출된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결과에 따르면 450개 매체의 PC 페이지에는 총 5천934개 광고가 게재돼 매체 당 평균 13.2개 광고가 기사와 함께 노출됐다.


모바일 페이지 437개에는 총 3천254개 광고가 있어 매체 당 평균 7.4개 광고가 기사와 함께 보였다. 공짜로 뉴스 기사를 보기 위해 10개가 넘는 광고를 봐야하는 대가를 치르고 있는 셈이다.  


독자들은 혼탁해진 무료 콘텐츠 시장에 싫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그 움직임이 감지된다. 미국의 유서 깊은 미디어 뉴욕타임스는 2010년을 기점으로 온라인 구독 매출이 광고 매출을 넘어섰다. 이 현상은 2015년 미국 대통령으로 트럼프가 당선되면서 더 가속화 됐다. 가짜 뉴스에 시달린 많은 독자들이 ‘차라리 돈을 낼테니 신뢰 있는 뉴스, 정확한 뉴스를 보여 달라’고 말했다.  


텍스트 콘텐츠 시장이 서서히 변하고 있다. 20세기까지 유료에서 2000년대 초 무료로, 현재인 2010년대 후반은, 질 낮은 무료 콘텐츠에 지친 독자들 덕분에 유료 콘텐츠가 다시 부각 되고 있다. 유료와 무료가 복합된 시장이 형성 됐다.



유료와 무료의 경계, 모호함 


그동안 책은 돈 주고 사서 볼 수 있는 재화였다. 서점에 100명이 앉을 수 있는 탁자가 생겼다. 탁자가 생기면서 재화로서 역할이 줄었다. 사실상 서점에선 무료다. 하지만 이 책을 집으로 가져오려면 유료다. ‘서점에선 무료’지만 ‘소장하려면 유료’다. 100인 탁자에서 ‘유연한 유료화 전략’의 힌트를 얻었다.  


유료와 무료 그 중간 지점에 ‘유연한 유료화 전략’이 있다. 무료인 듯 무료 아닌 유료 같은 모호함을 무기로 하는 전략이다. 크라우드 펀딩 방식도 이런 모호한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콘텐츠를 일단 무료로 보여주지만, 책과 같은 형태로 소장하거나, 콘텐츠의 생산자를 만나고 싶으면 결제를 해야 한다.  

 

특히 게임 시장이 이런 모호한 전략을 아주 잘 활용한다. 무료인줄 알고 다운로드 받은 게임이 지속적으로 ‘현질’(현금 결제)를 유도한다. 반복 행동을 하지 않으려면(속칭 ‘노가다’) 돈을 지불해야 한다. 아주 영리한 ‘유연한 유료화 전략’이다.  

 

최근엔 웹툰 웹소설 시장도 유무료 복합 방식을 전략적으로 사용한다. ‘기다리면 무료’ ‘오늘만 무료’ 등이 유연한 유료화 전략이다. 무료로 앞부분을 보여주고, 기대감을 한껏 높인 후 더 보려고 하면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한 달을 기다리라고 한다. 참을 수 없으면 돈을 내고 봐야 한다.  


출판 시장은 불황을 타계하기 위해 다양한 융복합 사업을 구상한다. 대형 서점과 독립 서점은 답을 찾아가고 있다. ‘유연한 유료화 전략’을 잘 활용해 꾸준히 실험한다면, ‘츠타야’와 같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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