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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건 Sep 01. 2018

고양이 집사를 닮은 플랫폼

[업 에세이] 콘텐츠 플랫폼 마케팅

글쓰기는 참 요망하다. 막상 쓰려면 안 써진다. 별생각 없었는데 갑자기 글감이 막 떠오른다. 마구 쓰다가도 한번 막히면 대책 없다. 하루가 지나도 생각이 안 난다. 그러다가 술 먹고 놀다 보면 또 글감이 생각난다.


고양이 같다. 우리 집 고양이 ‘마리’는 내가 부르면 안 오고 내가 별 관심 없으면 슬쩍 와서 내 몸에 제 얼굴을 비비고 ‘꾹꾹이’ 해준다. 내가 다가가면 앞발로 펀치를 날리다가도, 본인이 필요할 땐 소리 없이 다가와 보석 같은 눈망울로 바라본다.


다가가면 멀어지고, 멀어지면 다가온다.


‘요망한 글쓰기를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까’ 이것만 고민하는 플랫폼이 있다. 카카오의 콘텐츠 퍼블리싱 플랫폼 ‘브런치’다. 요망한 고양이 같은 글쓰기를 언제든 품어줄 준비가 되어있다. 마치 고양이 집사 같다.


시대의 흐름을 역행한 브런치


나는 브런치 초기 멤버가 아니다. 2017년 브런치 팀에 합류했다. 브런치가 출시되던 2015년 나는 다른 부서에 있었다. 브런치의 탄생을 옆에서 지켜봤다. 서비스를 처음 출시했을 때 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곧 망하겠구나’


2015년 당시 콘텐츠 업계 파란을 일으키던 서비스가 있다. TV 광고까지 했다. 우주복 입은 캐릭터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됐다. ‘우주의 얕은 재미’라는 TV 광고 카피로 스낵 컬처와 카드 뉴스 열풍을 일으킨 ‘피키캐스트’다.


대박이었다.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피키캐스트는 인터넷의 무수히 많은 정보 중에서 젊은 세대들이 좋아할 만한 재미있는 콘텐츠를 제공했다. 카드 형태 콘텐츠, 움짤(움직이는 사진) 등 모바일에 최적화된 형태의 콘텐츠를 큐레이션 했다.



피키캐스트의 최초 슬로건은 '세상을 즐겁게’다. 모바일 시대 사용자들의 심심한 시간을 잡는 것이 피키캐스트가 추구하는 방향이었다. 사용자들의 일상과 가장 밀접한 이야기를 담기 시작했고, 여러 종류의 재미있는 콘텐츠를 제공했다.


거의 모든 미디어가 피키캐스트를 벤치마킹했다. 더 재밌게, 더 짧게, 더 화려한 콘텐츠를 만들었다. 작은 콘텐츠 제작사는 물론 메이저 언론사까지 스낵 컬처 열풍에 동참했다. 너도나도 카드 뉴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짧은 글, 재미, 킬링타임, 신선한 포맷, 비주얼. 피키캐스트가 선도한 트렌드다.


브런치는 이와 정반대로 갔다. ‘우린 좋은 글이 가진 가치를 믿는다’고 선언했다. 시대의 흐름을 정면으로 역행했다. 브런치 오픈 공지 글의 첫 단락이다.


우리는 좋은 글이 가진 힘을 믿습니다. 좋은 글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시간이 지나서 다시 읽어도 그 가치가 오롯이 살아 있습니다. 브런치는 좋은 글을 쓰고 싶은 모든 이들을 위해 준비한 서비스입니다. 한 편의 글이 작품이 되는 브런치를 만나보세요.


나중에 꺼내 보아도 그 가치가 변함없는 글. ‘에버그린 콘텐츠’라고 한다. 짧고 빠르게 소비되는 스낵 콘텐츠와 대비된다. 재미보다는 공감과 감동을 좇는다. 신선한 포맷 대신 글 작성에만 집중한다. 화려한 비주얼보다는 오롯이 텍스트만 잘 보여준다.


‘시대를 역행하는 서비스’ 브런치의 첫인상이었다. 망할 거라 생각한 이유다. 2017년 나는 브런치팀 멤버들과 함께 일하게 됐다. 2018년 현재 망하지 않고 잘 살아남았다. 오히려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작가수 2만 명, 브런치에서 출간된 책은 무려 900권이 넘는다. 엄혹한 콘텐츠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던 이유를 브런치 초기 멤버들에게 들어봤다.


오로지 글에만 신경 쓰세요


전설의 레전드 영상


“하얀 천이랑 바람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어~"


드라마 ‘꽃보다 남자’ 김현중의 오그라드는 대사지만 이만큼 적당한 표현이 없다. 브런치의 글쓰기 툴은 글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모든 기능을 단순화했다. 브런치와 글감만 있으면 무엇이든 쓸 수 있다


‘글이 작품이 되는 공간’이라는 슬로건으로, 글 하나를 아름다운 작품으로 보이게 했다. 작가들이 쓴 글이 온전히 글만으로 존중받을 수 있도록 화면에서 글 이외 요소를 최대한 배제했다. 브런치에서는 글을 쓰고 어떻게 꾸며야 할지 걱정할 필요 없다. 글쓰기에만 집중하면 된다. 실제로 브런치 글쓰기 툴의 콘셉트는 ‘흰 종이에 펜 하나만 준비했습니다’.


이를 위해 브런치팀 멤버들은 글 쓰는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어떤 기능을 제공해주면 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관찰과 고민의 결과는 ‘아무것도 제공하지 않는다’였다.


글 쓰는 사람들은 글쓰기 툴의 다양한 기능을 거의 이용하지 않았다. 아래아한글이나 워드를 연다. 그간 생각해두었던 글감이나, 메모해두었던 내용을 옮긴다. 그리고 단숨에 글을 써 내려간다. 이후에 이를 컨트롤+C 컨트롤+V로 글쓰기 툴에 붙여 넣는다.


이런 단순한 패턴에 착안해 글쓰기 툴의 기능을 단순화했다. 워드프로세서에서 쓴 글을 붙여만 놓아도 글이 작품처럼 보이게 하는 기능에 집중했다. 더 나아가 워드프로세서 대신 브런치 글쓰기 툴에도 단숨에 글을 써내려 갈 수 있도록 단순화했다.


생각날 때마다 틈틈이 글감을 정리할 수 있도록 어떤 디바이스에서도 작성과 수정이 가능하게 했다. 스마트폰으로 글감을 정리해 잠시 저장해 두고, 이를 다시 PC에서 꺼내 보강하고, 발행 이후에도 스마트폰이나 PC를 통해 수시로 수정할 수 있도록 했다.


흰 종이와 검은 펜, 결국 그 카피를

막상 쓰려면 머리가 백지장처럼 하얘지는, 요망한 글쓰기에 적합한 기능이다. 길을 가다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거나, 어딘가에 기록하고 싶을 때면, 언제 어디서든 브런치 앱을 열어서 바로 글을 쓸 수 있다. 방금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을 자유롭게 배치할 수 있다. 작성된 글은 모든 디바이스에서 매끄럽게 수정 가능하다. 필 받을 때 주르륵 써내려 가면 된다.


글 쓰는 사람들이 쓰는 건 금방 쓰지만, 편집이 오래 걸린다는 점도 관찰했다. 편집을 쉽게 해주면 어떨까 고민했다. 어떤 화면에서도 디자이너의 손길을 거친 듯 아름답게 보이게 만들었다. 요리할 때, 내가 플레이팅 한 것과 셰프가 플레이팅 한 것은 다르다.


‘디자이너가 여러분의 글을 아름답게 플레이팅 해드리겠다’는 콘셉트로 기능을 구현했다. 글만 쓰면 한 권의 책처럼 보일 수 있도록 했다.


브런치와 블로그의 차이점


브런치 프로젝트를 준비하며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브런치가 블로그와 무엇이 다르냐’였다.  디지털 콘텐츠를 모바일 또는 온라인 환경에서 생산하고 유통하고 소비하는 콘텐츠 퍼블리싱 플랫폼으로 언뜻 보면 다른 블로그와 차이가 없어 보인다.


‘블로그는 집, 브런치는 서재’라는 개념을 설정했다. 블로그는 집처럼 마음껏 꾸밀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다. 어떤 콘텐츠든 담아낼 수 있다. 브런치는 오로지 글에만 집중했다. 나만의 콘텐츠를 담는 공간이다. 서재, 서랍이라는 개념으로 서랍에서 글을 저장해 두고, 발행하면 서재에 꽂아 놓는 식으로 블로그와 차별성을 뒀다.


오픈형 플랫폼이 아닌 폐쇄형 플랫폼이란 점도 다르다. 브런치에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은 ‘작가 신청’을 통해 포트폴리오와 이력 정보, 집필 계획 등을 제출해 일련의 심사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블로그는 회원 가입만 하면 누구나 운영할 수 있다. 많은 이용자를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정보의 홍수 속에서 양질의 콘텐츠를 찾기 어렵고 상업적이고 광고성 글이 많은 문제점이 있다.


브런치는 다른 블로그와 다르게 폐쇄형 플랫폼이다. 심사를 통해 전문적이고 정제된 콘텐츠만 발행해 글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 상업성이나 홍보성을 띤 글을 업로드하면 작가 자격을 잃을 수도 있다. ‘브런치는 믿고 보는 콘텐츠’라는 인식을 독자들에게 심어주고 있다.


대세를 거스르고, 철학을 확고히 하다


언제 보아도 가치 있는 글에 대한 독자의 니즈는 점점 커지고 있다. 수치가 이를 말해준다. 브런치의 글 수는 4년째 꾸준히 늘고 있다. 작가는 2만 명에 육박한다. 독자 수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브런치를 통해 출간된 책은 900권이다. 매년 브런치북이라는 신인 작가 대상 공모전을 진행한다. 60여 명의 작가가 출간 데뷔의 기회를 얻었다.


올해 1월 출간해 2018년 상반기 종합 베스트셀러 1위(교보문고 집계), 판매부수 30만 부를 기록한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의 정문정 작가는 브런치 연재를 계기로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올랐다. 정문정 작가뿐 아니라 <모든 순간이 너였다>의 하태완 작가,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의 하완 작가 등 브런치 작가의 작품도 현재 서점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만날 수 있다.



글뿐 아니라 일러스트로 작가의 꿈을 이루기도 한다. 브런치 ‘윤직원’ 작가는 스스로를 직장 팔아 만화를 그리는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라 이야기한다. 윤작가는 현재 회사에 재직 중이며, 일을 하며 보고 느끼는 것들을 소재로 한 만화를 브런치에 연재 중이다.


많은 직장인들과 사회인들의 공감을 얻은 덕에 이 만화를 모은 ‘윤직원의 태평천하’라는 책을 출간했다. 윤작가는 출간뿐 아니라 카카오톡 이모티콘 '직장인의 넵!모티콘’을 출시했다. 출간뿐 아니라 이모티콘 작가, 강연자 등 다양한 기회로 연결되고 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다.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 스낵 컬처 열풍은 잠잠해졌다. 브런치는 살아남았다. 시대의 흐름을 역행했다. 때론 바보처럼 우직하게 좋은 글이 가진 힘을 믿었다. 대세를 거스르고, 철학을 확고히 했다. 뚝심 있게 밀어붙였다.


고양이처럼 요망한 글쓰기를 쉽고 편하게 해주는 단순한 기능에 집중했다. 집사처럼 따뜻하게 보듬어줬다. 고양이 눈동자처럼 아름답고 보석 같은 글들이 브런치에 아직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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