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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건 May 25. 2018

콘텐츠 마케팅은 타노스처럼

[업 에세이] 콘텐츠 플랫폼 마케팅

- 이 글엔 영화 <어벤저스:인티니티 워>의 소소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예상이 맞았다. 영화 제목은 ‘어벤저스’지만 진짜 주인공은 따로 있었다.  

 

나는 마블 영화를 좋아한다. 엄청난 덕력을 쌓은 ‘마블 덕후’는 아니지만, 같은 영화를 대여섯 번 볼 정도로 마블 영화를 좋아한다.  


늦은 나이에 만학도로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다. ‘복잡계 네트워크 이론’이라는 수업을 듣는다. 사회 전반의 데이터를 수집해 다양한 네트워크 현상을 수치와 그림으로 표현하는 법을 배운다. 수학적 통계와 미분과 적분, 로그 함수 등도 배우는데 정말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네트워크 시각화하는 방법만 겨우 따라 했다. gephi(게피 혹은 지파이라고 한다)라는 강력한 프로그램으로 쉽게 시각화할 수 있다. 오픈소스 네트워크 분석 및 시각화 툴이라고 하는데, 그냥 내가 생각하는 gephi의 정의는 ‘개떡 같이 데이터 입력해도 찰떡 같이 예쁘게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노드(node, 점)과 링크(link, 선)만 설정해주면 뚝딱 예쁜 그림을 그려준다.  

 

무슨 말인지 도통 이해할 수 없고, 하기 싫을 땐, 내가 좋아하는 걸 하면 된다. 무엇이든 네트워크 분석을 해보자는 교수님의 과제 요청에 ‘마블 인물 관계도’로 응답했다. <어벤저스:인피니티 워> 개봉을 앞두고 있던 시점이었다.  

 

그동안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arvel Cinematic Universe, MCU. 마블 코믹스를 기반으로 제작된 영화들이 함께 공유하는 가상의 세계관을 뜻한다.) 영화에 출연했던 주요 등장인물을 노드로 설정했다. 한 영화에 함께 출연했다면 링크로 연결했다. 만나지 않았더라도 같은 작품에 출연했다면 링크로 연결했다. (생업이 있어서 만난 횟수, 시간 등을 디테일하게 데이터로 가공할 순 없었다.) 각 노드와 링크를 연결했더니, 재밌는 그림이 나왔다.  


누구나 예상했든 매번 등장했던 인물이 중심에 배치됐다. 단독 주인공으로도 나왔던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을 중심으로 매 영화마다 얼굴을 비추었던 ‘효자’ 닉 퓨리, 그와 세트로 항상 등장하는 블랙 위도우와 호크아이가 중심에 섰다.  


여기까지는 예상 가능한 그림이지만, 재밌는 현상을 하나 발견했다. 각자 <어벤저스> 시리즈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로 만날 일이 없었던 캐릭터들을 이어주는 허브(hub)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바로 타노스. <어벤저스 : 인피니트 워>의 빌런(악역, 악당)으로 등장하는 인물이다.  


빌런을 중심으로 두 개 큰 축의 캐릭터들이 이어진다. ‘<어벤저스:인피니티 워>가 타노스 중심으로 이야기가 구성될 수 있겠다’는 추측을 할 수 있었다.


<어벤저스:인피니티 워> 개봉을 앞두고 마블 측은 스포일러의 유출에 매우 신경을 썼다. 최대한 영화 내용이 유출되지 않길 바랐다. 많은 마블의 덕후들이 어떤 캐릭터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될지 추측했다. 아이언맨이라 얘기하는 사람이 있었고 캡틴 아메리카라는 주장도 있었다.


정답은, 데이터가 말해주었다.

 

‘어벤저스 증후군’을 경계하라


콘텐츠 마케팅을 하려는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간혹 주제넘게 멘토링이나 컨설팅 같은 것도 하게 된다. 최근에는 대학생들이 스토리펀딩으로 콘텐츠 마케팅해보고 싶다고 나에게 찾아왔다. (물론 대부분은 교수님이 시켜서 한다. 나도 교수님이 시키지 않았다면 저런 마블 인물 관계 네트워크 그림은 그리지 않았다.)


“스토리펀딩으로 무엇을 하고 싶어요?”하고 물어보면 학생들은 이렇게 답한다.

 

“저희는 스토리펀딩으로 공익적인 캠페인을 하고 싶어요. 예쁜 리워드를 만들어서 판매도 하고 싶고요. 이 활동을 영상으로 찍어 콘텐츠를 만들고 싶고요. 세상에 긍정적인 메시지를 주고 싶어요.”


그럼 난 이렇게 대답한다.


“It's the end game.(가망이 없어.)”

 

콘텐츠로 마케팅하고 싶은 많은 사람들이 하는 흔한 실수다. 어벤저스급 목적을 갖고 있다. 어벤저스 히어로들은 본인들이 큰 힘을 지녔기 때문에 큰 책임이 따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구의 평화를 위협하는 악의 무리들을 어떤 방식으로든 무찌르려고 한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과정은 중요치 않다. 소코비아라는 나라 하나를 통째로 날렸다. 룩셈부르크를 누르고 1인당 GDP 1위를 찍을 법한 와칸다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린다. (이런 어벤저스의 모순과 갈등은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다.)


어벤저스는 ‘지구 포함 전 우주적 평화’라는 엄청난 대의명분을 갖고 있다. 콘텐츠 마케팅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실수는 바로 어울리지 않는 과도한 대의명분, ‘어벤저스 증후군’이다.  

 

콘텐츠 마케팅은 대의명분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하나만 잘하기도 어렵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목적을 명확하고 뾰족하게 다듬는 것이 중요하다.  


크라우드 펀딩을 예로 들어보자. 사람들의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게 하는 요인은 세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1)창작자 2)스토리 3)리워드. 보통은 이 세 가지 요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세 개 중 하나에 꽂히면 사람들은 돈을 낸다. 하나에 집중하는 게 중요하다. 여기서 가장 많이 하는 실수는 두 마리 혹은 세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고 목표 설정을 하는 것이다.  

 

스토리에 자신 있으면 사람들을 울리거나 웃길 스토리에 집중하면 된다. 창작자 본인 자체가 너무 매력적이다 생각하면 나 자신을 알리는데 집중하면 된다. 리워드에 자신이 있다면 그 리워드를 잘 소개하는데 모든 공력을 쏟으면 된다.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얻으려는 목적을 명확히 하고 하나의 목적에만 집중하면 된다. 욕심이 나겠지만 참으면 된다. 프로젝트는 여러 번 할 수 있다. 하나의 프로젝트엔 하나만 집중한다.  

 

목적은 1)본인 혹은 업체의 브랜딩 2)수익 창출 3)트래픽 등으로 나눠볼 수 있다. 하나의 목적을 정하고 그 목적 달성에 가장 적합한 펀딩 요인을 매칭 시키면 된다. ‘수익 창출을 위해 리워드에 집중한다’ ‘브랜딩을 위해 스토리에 집중한다’는 식의 3X3 매트릭스 경우의 수가 나온다.


보통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창작자들은 ‘스토리’ 혹은 ‘리워드’에 먼저 집중하는 게 좋다. 이를 통해 사람들에게 본인과 콘텐츠를 알리는 게 먼저 필요하다. 많이 알려졌고 고정 팬 층이 생기면 그때부터는 브랜딩 효과를 노려볼 수 있다. 인지도가 쌓이고 좋은 평판을 갖춘다면 이후엔 좀 더 쉽게 마케팅에 성공할 수 있다.  

 

박상규와 타노스는 닮았다 


박상규 기자는 스토리펀딩을 통해 10억 원 이상을 펀딩 받은 대표 창작자다. 10년 간 <오마이뉴스>에서 기자로 일해 왔다. 후원 기반 프리랜서 기자의 성공 가능성을 보고 회사에 사표 냈다. 현재는 셜록 프레스라는 스타트업 매체를 차려 운영하고 있다.


처음부터 박상규 기자가 많은 사람들에 알려진 건 아니었다. 박상규 기자는 본인의 기자로서 브랜딩을 위해 좋은 기사, 좋은 스토리로 본인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브랜딩’을 위해 ‘스토리’에 집중 했다.  


박상규 기자의 첫 프로젝트는 ‘그녀는 왜 칼을 들었나’. 가정 폭력에 시달리다 살인을 저지른 여성 무기수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다. 충격적이고 사람들의 분노를 자아내게 하는 이야기였지만 엄청난 규모의 펀딩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첫 프로젝트였고 박상규 기자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스토리만으로만 승부를 보아야 했다. 결국 마지막 편에는 기사에 등장하는 여성 무기수의 얼굴까지 공개하면서 스토리의 몰입도를 높였다. 목표했던 1000만원은 프로젝트 마지막 날에서야 달성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박상규 기자는 본인의 이름을 알렸다. 이후 재심 전문 박준영 변호사와 함께 진행한 ‘재심 3부작’ 시리즈를 통해 박상규라는 하나의 브랜드를 구축했다. 그가 다뤘던 재심 프로젝트는 ‘재심 결정’이라는 좋은 결과를 이끌었다.  

 

박상규 기자가 발굴한 스토리는 <지연된 정의>라는 책으로 묶여져 나왔다. 2016년에는 영화 <재심>으로 개봉되기도 했다. 다양한 분야로 콘텐츠가 확대됐다.


이후 박상규 기자의 이름 석 자만 걸고 ‘셜록’ 프로젝트를 걸었다. ‘박상규가 새로운 매체를 차리는데 월 후원금을 모아달라는’는 것이다. ‘수익을 위해 창작자를 활용’한 케이스다.  

그저 본인의 이름만 걸고 후원금을 모금 했는데 월 400만원 가까운 후원금을 정기적으로 모았다. 스토리를 통한 브랜딩이 됐기 때문에 가능했던 결과다. 박상규 기자는 ‘현장에서 쓴 좋은 기사는 세상을 바꾼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그걸 그대로 행동했다.  


또한 박상규 기자는 스스로 ‘허브’를 자처했다.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고 본인 팬들과의 네트워크 연결고리가 됐다. 후원자와의 만남을 수시로 진행했다. <지연된 정의> 책이 나왔을 때는 ‘책은 작가가 팔아야 한다’는 신념으로 후원자와의 만남 때마다 사비로 책을 사서 나눠주곤 했다.  

 

어벤져스가 될 필요는 없다. 신념을 갖고 하나의 목적에만 집중하면 된다. 타노스 또한 묵직한 신념을 갖고 있다. ‘우주의 영속함을 위해 우주 생명체의 절반을 날려버려야 한다’는 명확한 신념이다. 그리고 떨어져있던 이들을 연결해주는 ‘허브’의 역할까지 했다. 박상규와 타노스는 닮았다.(외모를 얘기하는 건 아니다.)

 


콘텐츠 마케팅은 ‘잘라내기의 미학’이다. 타노스처럼 신념만 있다면, 잘라내기는 어렵지 않다. 당신이 생각했던 목적, 거기서 딱 ‘절반’만 날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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