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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건 May 19. 2018

낄끼빠빠 블록체인

[업 에세이] 콘텐츠 플랫폼 마케팅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지는 건 참 어렵다. 아무리 눈치 빠른 사람도 ‘낄끼빠빠’를 제대로 하기란 쉽지 않다. 얼마나 어려우면 ‘낄끼빠빠’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낄끼빠빠 :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져라’를 줄여 이르는 말로, 모임이나 대화 따위에 눈치껏 끼어들거나 빠지라는 뜻으로 하는 말.


플랫폼 운영자는 ‘낄끼빠빠’를 항상 고민한다. 좀 더 어려운 말로 ‘개입 정도’라 할 수 있다. 언제 끼어야 할지 언제 빠져야 할지를 알아야 플랫폼이 원활하게 운영된다.  


개입 정도를 낮추는 건 플랫폼 운영자의 숙원이다. 플랫폼 사업은 끊임없는 리소스 조정이 필요하다. 전통적 산업은 초기 생산 라인을 갖추기까지 큰 비용이 들지만, 이후 같은 비용이 계속해서 드는 구조가 아니다. 진입 비용은 높지만, 운영 비용은 낮다. 플랫폼 산업은 설비를 갖출 필요는 없다. 전체 비용 중 플랫폼 구축 및 운영에 대한 비용 비중이 가장 크다. 진입 비용은 낮지만 운영 비용이 높다.  


플랫폼 입장에서 미들맨(middle man, 중개인)을 많이 두고 싶어 하지 않는다. 크게 손을 대지 않아도 알아서 잘 돌아가는 시스템, 플랫폼 운영자라면 누구나 꿈꾸는 이상적인 구조다. 미들맨을 최소화하면서 최대 효과를 내는 플랫폼을 꿈꾼다.  


최근 부각되고 있는 블록체인도 이런 플랫폼 운영자의 욕망과 무관하지 않다. 블록체인의 핵심 가치는 ‘탈중앙화’다. 중앙화 된 플랫폼은 미들맨의 역할이 크다. 수많은 콘텐츠 중 양질의 콘텐츠를 선별해 배치하는 역할, 어떤 유형의 콘텐츠에 가중치를 더 줄지 판단하는 역할, 어떤 콘텐츠가 플랫폼 생태계에 기여를 할지 정의하는 역할 등을 한다. 미들맨은 플랫폼이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많은 장치를 만든다.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하는 토큰이코노미 모델은 미들맨의 역할을 유저들이 상당 부분 대신한다. 유저들이 플랫폼 생태계에 도움되는 액션을 스스로 하고, 플랫폼은 이 액션에 대한 보상을 한다. 유저들은 플랫폼에 도움되는 일을 자발적으로 찾아서 한다. 토큰이코노미를 잘 구현했다고 평가받는 스팀잇은 업보팅(좋아요)과 리스팀(공유)이 중요한 보상 시스템이다.

 

현실은 녹록지 않다. 미들맨이 크게 개입하지 않고 돌아가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싶으면 언제나 어뷰저(abuser, 남용자-악용자)가 등장한다. 좋은 콘텐츠가 보상받는 시스템을 구축하면, 이 시스템의 허점을 파고들어 좋지 않은 콘텐츠에도 보상이 돌아가게 한다.


어뷰저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인다면 생태계에 전혀 기여를 하지 않는 액션에도 보상이 돌아간다. 블록체인 기반의 시스템을 구축할 때도, 어뷰저를 막는 정책이 시스템 설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플랫폼의 근본적인 가치에 집중하고, 진심으로 유저들에게 다가가면 플랫폼의 가치는 스스로 올라갈 것’이라는 성선설 기반의 가설, 물론 중요하다. 주객이 전도되면 안 되고,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우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겠지만, 많은 콘텐츠 플랫폼들이 (운영자 기준 혹은 유저 기준에서) 수준 낮은 콘텐츠 생산하는 어뷰저들 때문에 문을 닫는다. 생각보다는 심각한 문제다.


참여 콘텐츠는 어뷰저 막는 효과적 방법 

 

스토리펀딩은 질 높은 콘텐츠에 펀딩을 하고 끝나는 일방적 관계가 아니다. 후원자와 소통을 통하여 후원자들이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를 가지고 있다. 스토리펀딩은 총 후원자가 약 40만 명인데, 펀딩에 참여 건 수는 약 80만 건이다. 많은 후원자들이 여러 번 참여한다.  


단계별로 ‘창작자와 독자를 연결 -> 독자의 개념을 후원자로 정의 -> 콘텐츠를 공개하고 마음에 들면 후원’ 흐름으로 설계했다. 수동적으로 글을 읽기만 하던 독자는 창작자를 직접 후원하는 역할까지 하게 됐다. 이후엔 창작자를 직접 발굴하고 함께 키워나가는 ‘육성자’로 활동 범위가 넓어졌다.  

 

독자의 펀딩 참여는 ‘어뷰저’를 막는 효과적 방법 중 하나다. 콘텐츠에 일정 금액을 지불했기 때문에 콘텐츠와 창작자에 대한 책임감이 생긴다. 콘텐츠가 널리 퍼져나갈 수 있도록 돕는다. 내가 펀딩 한 창작자가 좋은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도록 응원한다. 내 돈이 헛되게 쓰지 않았음을 스스로 증명하는 행위다. 굳이 돈까지 지불하면서, 생태계에 악영향 미치는 행위는 하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도 깔려있다.  


앞서 언급한 '탈중앙화'는 미들맨 위주의 불투명한 구조의 비판에서 시작됐다. 기존의 콘텐츠 플랫폼은 생태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들맨에 권력이 집중되어있다. 콘텐츠 플랫폼으로 한정해보면, 창작자건 독자건 미들맨의 마음을 훔치거나, 그들의 계획을 읽어야 한다. 그래야 창작자는 플랫폼에서 얻어갈 수 있는 게 많고, 독자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크라우드 펀딩은 미들맨의 역할을 최소화한다. 가급적 창작자와 독자를 다이렉트로 연결해주려 한다. 직접 연결됐을 때의 불편한 부분을 해소해주는 역할을 주로 한다. 실제로는 만나면 돈을 모아 전달하는 게 어렵기 때문에, 간편 결제 기능을 제공한다.


창작자가 일일이 독자들을 만나러 다니기 힘들기 때문에 다양한 채널로 노출될 수 있도록 돕는다. 혹시나 창작자가 돈을 받고 잠적(흔히 ‘먹튀’)할 수도 있기 때문에, 돈을 대신 보관해뒀다가 지급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제공한다.  

 

기능 중심으로 접근하고 미들맨의 권한과 역할을 최소화한다. 일종의 ‘콘텐츠 직거래’라 할 수 있다. 펀딩에 참여한 독자는 일종의 '심리적 지분'을 확보한다. 나중에 금전으로 보상되는 물질적 지분은 아니지만, 콘텐츠가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호응을 얻고, 창작자가 명성을 얻으면, 후원자는 대리만족한다. 적은 돈이지만 얻을 수 있는 심리적 만족도는 크다.


‘참여 콘텐츠’는 여기서 큰 역할을 한다. 수동적인 독자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하며 새로운 콘텐츠 제작에 기여한다. 어뷰저들을 막고 생태계가 잘 굴러갈 수 있도록 돕는다. ‘창작자만의 콘텐츠’가 아닌 ‘우리의 콘텐츠’로 새로운 의미가 부여된다.

 

마지막 15분 함께 만들어주세요 


위안부 영화 ‘귀향’으로 스토리펀딩은 세상에 알려졌다. '귀향'의 개봉과 흥행 성공으로, 소수의 크라우드펀딩에 관심 있는 사람들만 아는 서비스에서, 대중적인 서비스로 성장했다.  



영화 투자와 두레 방식의 제작이 생소한 건 아니다. 많은 저예산-독립 영화들이 이 같은 방식으로 제작됐다. 기존 방식의 영화 투자 방식으로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미 귀향은 11년 전부터 투자를 받고 있었고, 총 제작비 11억 원 중 5억만 모아둔 상태였다.

 

‘마지막 15분을 함께 만들어주세요’라는 메시지를 만들었다. 단순히 영화 제작비 후원해달라는 게 아닌, 15분을 함께 만들자고 제안했다. 마지막 15분은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다. 핵심 가치를 담고 있는 장면이다. 메시지는 후원자 마음에 동요를 일으켰다.  

 

15분만 더 제작하면 영화가 완성될 수 있다는 ‘희망’ 11년간 영화가 표류하는 동안 나는 무엇을 했을까 하는 ‘부채의식’ 마지막 15분을 만드는 데 나도 함께했다는 ‘만족감’. 후원자들이 지갑을 연 결정적 계기가 됐다.

 

“눈물이 차마 멈춰지지 않습니다. 이런 영화는 역사적으로 남겨야 합니다. 얼마 되지 않는 돈으로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려 합니다. 힘내세요.” - 후원자의 댓글 중


후원 첫날에만 2843만 원이 모아졌다. 당시 하루 역대 최대 금액이었다. 두 차례에 걸친 펀딩으로 6억 원이 모아졌다. 영화 <귀향>은 2016년 2월 무사히 개봉했다. 누적 관객 수 358만 명으로 2016년 박스 오피스 17위(역대 148위)에 올랐다.


이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는 무려 8분이다. 8분간 이 영화에 후원한 후원자들의 이름이 흐른다. 3만 명 후원자의 마음이 느껴졌다. 영화의 그 어떤 감동적인 장면보다 묵직하게 다가왔다. ‘이 영화는 혼자 만든 게 아니다. 3만여 명의 마음이 모아져서 만들어졌다’고 무색무취의 텍스트가 외치는 것 같았다. 참여 콘텐츠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이었다. 창작자와 후원자의 끈끈한 연대 속에 미들맨인 플랫폼 운영자가 낄 자리는 딱히 없어 보였다.  

  

참여 콘텐츠는 묵직한 프로젝트만 있는 게 아니다. 다양한 프로젝트에 독자들은 참여하고 있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좋은 콘텐츠를 만들고 창작자를 응원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독자가 엮는 사진집 유민의 땅’ 프로젝트는 이름부터 ‘독자가 엮는’이다. 편집자 역할을 독자에게 맡겼다. 성남훈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는 세계 여러 지역 난민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 이를 묶어 사진집으로 출간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1000만 원 넘게 펀딩 받으며 목표했던 500만 원의 두 배 이상 성과를 거뒀다. 무사히 책이 출간됐다. 후원자들에게는 작가의 사인이 담긴 책을 증정했으며, 사진집에 후원자의 이름을 기재했다. 작가와의 만남을 진행해 독자와 접점을 넓혔다.  


작가와 독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건강한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미들맨은 낄끼빠빠를 고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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