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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건 Jan 23. 2018

마이크로 인플루언서 마케팅

[업 에세이] 콘텐츠 플랫폼 마케팅

김민섭 작가에게 카카오톡 메시지가 왔다. 2017년이 얼마 남지 않은 12월 29일. 연말에 무슨 일인가 했다. 연초에 술 한 잔 하자는 연락이겠거니 생각했다.


"정말 좋은 책이 있어서 한 권 소개해 드리고 싶은데요. 제가 지금까지 본 가장 독특한 작가예요. 소설이란 원래 이런 거였지, 하는 감탄과 반성을 주고, 또 전에 없던 방식으로 글을 쓰는 작가입니다. 광고나 홍보가 아니라 주변의 책을 좋아하는 분들께 책을 소개해 드리고 있어요. 공장에서 10년 동안 노동한 노동자 출신의 작가예요. 그래서 글을 배운 적이 없고 기존의 문법에서도 자유로운 작품들이 가득해요.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김민섭 작가와는 스토리펀딩 서비스를 운영하면서 작가와 기획자로 만나게 됐다. 페이스북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페이지에서 그의 글을 처음 접했다. 맥도널드 아르바이트보다 못한 처우를 받는 시간강사의 상황을 전했다. 굉장히 처연하고 분노를 자아내게 하는 내용이지만, 오히려 글은 담담했다. 글을 참 담백하게 잘 쓴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토리펀딩의 작가로 영입하고 싶었다. 수소문을 해 스토리펀딩으로 모셔왔다. 그때부터 인연이 시작됐다.


2016년 12월 31일 김민섭 작가의 책을 읽으며 한해를 마무리했다. 지방대 시간강사와 맥도널드 아르바이트를 거쳐 카카오 드라이버의 대리기사가 된 김민섭 작가가, 타인의 운전석에서 세상을 바라본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1년의 마지막을 의미 있게 보내고 싶었다. 김민섭 작가가 쓴 '대리사회'와 함께 2016년을 마무리했다.


2016년 나에게 가장 의미 있었던 책을 쓴 작가가 추천해준 책이다. 개인 취향으로 단편 소설을 그리 좋아하진 않는다. 호기심이 들었다. 과연 어떤 책이길래 김민섭 작가가 이렇게 극찬을 하나 싶었다.


김동식 작가의 소설집이다. '회색인간' '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 '13일의 김남우'. 신인 작가가 무려 3권의 책을 한꺼번에 냈다. 출판 시장을 조금은 안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신인에게 뭘 믿고 3권이나 내줬지. 출판사가 제정신인가?' 생각이 들 정도였다. '회색인간'부터 읽어보았다. 3분의 1 정도 읽었을 때 생각했다.


"이런 기본도 갖추지 않은 글이 책으로 나올 수 있나?"


나는 국어국문학을 전공했다. 소설 작법을 배웠다. 인물-플롯이 중요하다고 배웠다. 제대로 써본 적은 없지만 이론은 대충 알고 있었다. 이 책에 인물 설정과 플롯 설계는 찾기 어려웠다. 상황만 있었다. 상황 하나만으로 이야기를 풀어냈다.


'기본도 안 된 글을 쓰는 작가'라고 폄훼하는 마음은 반 정도 읽었을 때 사그라졌다. 상황만으로 묵직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 능력이 경이로웠다. '어디까지 갈 수 있나 보자' 오기가 생겼다. 편을 거듭할수록 나의 예상을 뛰어넘는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무한한 상상력으로 다양한 상황들을 쏟아냈다. 그리고 후회했다.


"내 판단이 틀렸다."


나의 시각은 낡은 레거시(legacy)였다. 새로운 작가와 새로운 작품의 탄생을 경계했다. 그리고 책을  읽고  , '기본이 안된 '이란 편견부터 가진  자신을 반성했다. 이렇게 대단한 책을 써낸 사람이 글쓰기 교육을  번도 받은 적이 없는 '주물 공장 노동자'라는 소식을 듣고  한번 놀랐다.


'회색인간'은 출간 3주째(1월 15일 기준), 알라딘에서는 한국소설 4위 (문학 16위), 예스24에서는 한국소설 12위 (문학 54위), 교보문고에서는 한국소설 9위 (소설 26위)에 올라 있다.


(책과 작가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시사인 기사 '새해 출판계 흔든 김동식 소설집'에서 더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셀럽 아닌' 김민섭의 힘


책을 다 읽고 마지막 장을 보았다. 편집인 이름에 '김민섭' 이름이 쓰여있었다. 알고 보니 김민섭 작가는 이 책의 기획자였다.


김민섭 작가는 인터넷 커뮤니티 ‘오늘의 유머’ 공포 게시판에 소설을 연재하던 김동식 작가에게 관심을 보였다. 지난해 10월 <기획회의>의 ‘김민섭이 만난 젊은 저술가들’의 인터뷰어와 인터뷰이로 만났다. 이런 인터뷰는 처음이라며 어색해하던 김동식 작가와 인터뷰를 마친 후 김민섭 작가는 말했다.


“제가 뭘 어떻게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출판 생각이 있으면 돕겠다고 했어요.”


여담이지만 나는 지난해 8월 김민섭이 만난 젊은 저술가로 소개됐다. 스토리펀딩 플랫폼 운영 경험을 '스토리의 모험'이라는 책으로 냈다. 10월의 젊은 저술가는 출간 일주일 만에 3쇄까지 찍었고, 8월의 젊은 저술가 책은 1쇄 출간 이후 소식을 들을 수 없다.


1쇄 2,000부, 총 3권이니 3쇄면 18,000부. 10,000부만 팔려도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는 현재 출판 시장에서, 신인의 책이 18,000부를 찍어냈다. 이 저력은 어디서 나왔을까? 데이터를 확인해봐야 알겠지만, 나는 김민섭 작가, 아니 김민섭 기획자의 역할이 컸다고 생각한다.


책이 초반부터 무섭게 팔린 데는 '오늘의 유머' 게시판 역할이 컸다. 김동식 작가가 활동하던 공포 게시판에 책의 출간 소식이 전해졌고, 평소 그의 글을 재밌게 보던 유저들이 책을 사기 시작했다. 일종의 '의리'였다.


김민섭 작가는 오늘의 유머와 본인의 페이스북, 카카오톡을 활용해 전방위로 홍보했다. 특히 페이스북에서 열심히 알렸다. 김민섭 작가의 페이스북 팔로워는 2766명(1월 15일 기준)이다. 많지 않은 수지만, 셀럽이 아닌 사람 치고는 많은 편이다. (김민섭 작가에겐 미안하지만 아직 셀럽급은 아니라고 본다.)


김민섭 작가는 오히려 셀럽이 아니기에 저력이 있다. 셀럽은 팔로워가 많다. 셀럽이 소셜미디어에 포스팅하면 즉각 수천수만 명이 반응한다. 하지만 그 반응이 크게 적극적이지는 않다. 댓글과 공유 등 유저의 리소스, 수고로움이 크게 들지 않는 반응이다. 어차피 셀럽은 너무 많은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어서 '어떤 반응을 보이더라도 셀럽에게 크게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셀럽은 '가깝지만 먼 당신'이다.


그에 비해 '비 셀럽' 김민섭 작가는 친근하다. 조금이라도 반응하면, 김민섭 작가는 더 큰 반응을 보인다. 일례로 김민섭 작가의 김동식 작가 추천 글에는, '책 구매 인증 릴레이'가 이어졌다. 김민섭 작가는 일일이 고마움을 표시했다. 책에 대한 (대부분 긍정적인) 평가 또한 이어졌다. 이런 행위들이 모두 바이럴 됐다.  일종의 오가닉 마케팅(organic marketing, 자발적인 입소문 마케팅)이 된 셈이다.


김민섭 작가의 팔로워들은 김동식 작가의 책을 읽지 않으면 이 커뮤니티에서 도태될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을 느끼게 됐다. 너도나도 구매 인증 릴레이에 이은 책 서평 릴레이에 참여했다. 김민섭 작가의 이런 마케팅은 초반 상승세를 견인했다.


김동식 작가(좌)와 김민섭 작가(우), 김민섭 작가는 "나보다 싸인을 못하는 사람은 처음봤다"고 말했다.



마이크로 인플루언서 마케팅


최근 좋은 콘텐츠의 기준이 바뀌고 있다. 퀄리티가 높은, 감동을 주는 콘텐츠가 아닌 '연결된 콘텐츠가 가장 좋은 콘텐츠'라고 정의 내리고 있다. 연결되지 않으면 아무리 퀄리티가 높더라도 좋은 콘텐츠가 아닌 셈이다. 연결의 가치는 더욱 높아지고 있고,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소규모 연결 중심의 '마이크로 인플루언서(micro influencer)'가 부상하고 있다. 수많은 팔로워를 보유한 셀럽, 메가 인플루언서보다 수백수천 명의 팔로워를 가진 마이크로 인플루언서가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분석이다.


아래 '인스타 스타보다 마케팅 효과 낫다..마이크로 인플루언서의 부상' (디지털데일리, 2018년 1월 8일) 기사의 일부 내용을 발췌했다.


"인플루언서 중에서도 특히 무게 중심은 ‘마이크로 인플루언서’로 이동하고 있는 추세다. 삼성패션연구소는 지난해 10대 이슈 중 하나로 ‘마이크로 인플루언서 영향력 확대’를 꼽았다. 개별 소비자 취향이 세분화되면서 이들이 1020 젊은 층 소비자의 큰 호응을 얻었다는 것이다. 서울대 소비 트렌드 분석센터가 내놓은 ‘트렌드 코리아 2018’ 역시 “인터넷의 마이크로 인플루언서들이 대형 스타보다 인기를 더 끄는 현상이 속출하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통상 인플루언서를 구분할 때 연예인, 유튜브 스타 등 100만 명 이상 팔로워를 보유했다면 ‘메가 인플루언서’, 500~1만 명의 팔로워를 보유했다면 마이크로 인플루언서로 정의한다. 마이크로 인플루언서는 팔로워의 절대 규모는 작지만 관심 분야에 전문성이 높고 팬 층과 가깝게 소통한다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같은 규모 광고비를 집행할 경우 투입 대비 성과가 더 높게 나타나기도 한다.

인플루언서의 팔로워가 수십만 이상일 경우 광고 유통량 절대 규모는 커지지만 오히려 고객이 정보를 인지할 가능성은 더 떨어진다. 적정 수준의 팔로워를 보유한 마이크로 인플루언서의 경우 팔로워 동질성, 신뢰성 등이 영향을 미치면서 광고주의 고객 타겟팅 효율은 높이는 것으로 측정됐다.

이 같은 현상은 ER지수(팔로워가 라이크, 공유, 댓글 등으로 홍보내용에 반응하는 비율) 차이로도 증명된다. 미국 광고 전문지 애드위크에 따르면, 10만 명 이상 팔로워를 보유할 경우 ER지수는 2.4%에 불과한 반면 팔로워 1000명 이하의 ER지수는 15.1%로 나타났다."



김민섭 작가는 효율 좋은 마이크로 인플루언서다. 팔로워 수가 압도적으로 많지 않지만 김민섭 작가와 팔로워 간의 끈끈함은 셀럽 못지않다. 그들끼리 동질감을 느끼고 신뢰한다. 작지만 연비 좋은 경차로 비유해볼 수 있다.


경차 같은 마이크로 인플루언서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대형차는 멋있고 성능 좋지만 효율은 떨어진다. 도로로 치면 대형차는 부피가 크기 때문에 수용에 한계가 있다. 몇 대 다니기 힘들다.


작은 경차들은 도로 곳곳을 다닐 수 있다. 수용의 범위가 넓어진다. 많은 경차들이 다닐 수 있다. 다양성 확보에도 좋다. 천편일률적인 콘텐츠가 아닌 다양한 콘텐츠들이 각 분야 전문가들의 마케팅으로 알려질 수 있다.


마이크로 인플루언서 마케팅은 출판 마케팅에 적용하기 좋은 모델이다. 김민섭 작가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초반에 집중하면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유명한 사람이 한 줄 추천사를 써주는 것보다, 비록 소수지만 밀접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마이크로 인플루언서가 입소문 내주는 게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초반 1~2쇄를 빠르게 판매하면 베스트셀러에 오를 수 있다. 마이크로 인플루언서 마케팅에 적합한 환경이다.


희소식도 있다. 현재 소셜 미디어 마케팅 중 가장 강력한 채널인 페이스북이 뉴스피드 알고리즘 변경을 알렸다. 1월 12일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는 뉴스피드의 중심을 기업과 언론 매체들의 포스트에서 지인, 가족의 포스트로 옮기는 방향으로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고 직접 전했다.


저커버그는 사용자들의 피드백을 받아본 결과, 공적 콘텐츠가 사적으로 더 많은 접촉을 이끌어낼 콘텐츠를 몰아내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전하면서 사용자들이 더욱 의미 있는 사회적 교류를 갖도록 할 콘텐츠에 중점을 두는 것이 개편의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뉴스, 광고 등 공적인 영역의 콘텐츠보다 사적인 영역의 콘텐츠들을 더 자주 노출하겠다는 뜻이다. 페이스북을 통해 트래픽을 올리던 뉴스 사업자나 매출을 올리던 쇼핑 업계에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다. 반면 마이크로 인플루언서들이 더욱 활동하기 좋은 환경이 된다. 추천글은 지극히 개인적인 글이기 때문에 알고리즘에 의해 페이스북에 더 많이 노출될 수 있다.


김민섭 작가는 1월 13일 망원동에서 김동식 작가의 사인회를 열었다. 페이스북에 하루 전 간단히 소식만 전했는데, 40명이 넘는 사람들이 와서 의자가 부족할 정도였다고 한다. 김민섭 작가는 그 소식을 페이스북에 이렇게 전했다.


세 사람의 독자가 울었다. 김동식 작가에게 질문을 하다가, 누군가는 “작가님이 잘 되면 좋겠어요.”라고 말하다가 울었다. 그들을 보면서 나도 눈물을 참았다. 이 감각은 무엇일까, 고민해 보았는데, 아무래도 타인의 ‘잘됨’을 바라는 것은 눈물겨운 일이다. 왜 저 사람이 잘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 내가 인간이기 때문이구나, 저 사람이 잘 되는 일은 내가 잘 되는 일과 같고 우리가 잘 되는 일이구나, 하는 막연한 감각은, 사람을 눈물겹게 만든다. 사인회에 온 40명이 넘는 사람들은, 모두가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김동식이라는 작가가, 잘, 되면 좋겠다"


함께 눈물 흘리게 하는 감각의 연대, 마이크로 인플루언서의 힘이다.




* 매주 수요일 브런치 위클리 매거진에서 김동식 작가의 단편 소설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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