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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건 May 08. 2018

소떡소떡 큐레이션

[업 에세이] 콘텐츠 플랫폼 마케팅

고속도로 휴게소 음식을 즐기지 않는다. 보통은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억지로 먹는다.


면이 떡처럼 붙었다. 다 먹을 때까지도 풀어지지 않았다. 육수는 밍밍했다. 고춧가루 맛으로 먹었던 우동이 내 기억 속의 휴게소 음식이다.  


고속도로에 있다는 건 어디든 멀리 간다는 걸 전제한다. 멀리 간 김에 그 지방 음식을 먹는다. 국도를 지나다가, 차가 많이 주차된 식당에 들어간다. 어딜 가든 기본은 한다. 지역의 특색을 느낄 수도 있다. 나에게 휴게소는 화장실만 잠깐 다녀오는 곳이다.

 

지방에 갈 일이 있었다. 잠깐 충남 공주의 정안 휴게소에 들렀다. 여느 때처럼 화장실에서 일만 보고 나왔다. 바람 쏘이며 서성이고 있는데, 일행이 날 불렀다. 손에 꼬치 하나 들고 있었다.

 

“휴게소에서는 소떡소떡을 꼭 먹어봐야 한데요. TV에서 이영자가 믿고 먹는 거라며 꼭 먹어보라고 하는데 정말 맛있어 보이더라고요.”


겉모습은 어렸을 때 먹었던 떡꼬치의 대형 버전, 떡-소시지-떡-소시지 배열이었다. 한입 권하기에 염치 불고하고 먹어보았다. 딱 내가 알던 그 맛이다. 떡과 소시지를 튀겨서 케첩과 고추장을 섞어 만든 소스를 발랐다. 맛이 없을 수 없다.


돌아오는 길에 기사를 찾아보았다. TV 방송 이후 휴게소 음식이 엄청나게 팔린다고 한다. 만남의 광장에서 판매하는 말죽거리 국밥의 경우, 방송 전 주말에는 142그릇이 팔렸는데 방송 후 주말에는 582그릇이나 팔렸다. 소떡소떡은 방송 전 주말 66개 판매에서 374개 판매로 늘었다. 무려 6배 가까이 매출이 상승했다. 휴게소를 운영하는 한국도로공사는 이영자 씨에게 감사의 인사까지 전했다고 한다.


평범하던 떡꼬치가 방송을 타면서 소떡소떡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부활했다. 이렇게 트렌디한 음식이라고 하니, 한입 더 준다고 할 때 날름 받아먹을 걸 후회했다. (결국 며칠 후 내 돈 주고 사 먹었다.)


소떡소떡은 큐레이션이다 

 

옥스퍼드 대학교 브룩스 국제 센터 연구원인 마이클 바스카는 저서 ‘큐레이션(2016)’을 통해 아래와 같이 큐레이션을 정의했다.  

 

- 오늘날 우리는 너무 많은 ‘선택’에 지쳐 있다. 이른바 ‘과잉 사회’에 진입한 지금, 큐레이션은 불필요한 것들을 과감히 덜어내는’ 힘이자, ‘선별과 배치를 통해 시장이 원하는 것만 가려내는’ 기술이다. 큐레이션은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사용되는 의미를 넘어서서, 패션과 인터넷을 비롯해 금융·유통·여행·음악 등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치는 새로운 트렌드다.  


홍수가 나면 정작 마실 물이 없다. 정보는 많아졌지만 정작 나에게 필요한 정보는 찾기 힘들다. 나와 상관없는 정보가 내 선택을 방해한다.  


정보 과잉의 시대는 ‘선택’이라는 과제를 남겼다. ‘선택 장애’를 호소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매일매일 점심 메뉴를 정하지 못해, 가위바위보를 해 진 사람이 정한다. 점심 메뉴를 정해주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까지 등장했다.  


미술 분야에서 주로 쓰이던 ‘큐레이션’이라는 개념이 모든 분야에 걸쳐 필요하게 됐다. 선택을 돕고, 아예 대신 선택까지 해준다. 큐레이션의 권위를 더하기 위해 큐레이터들은 본인의 리스트에 새로운 가치와 스토리를 부여한다.  


이런 추세 속에 최근 큐레이션은 단순히 덜어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선별과 배치를 통해 가치를 창출한다. 기존에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한다. 재야에 묻혀있던 고수를 발견하고, 진흙 속의 진주를 찾아낸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김춘수 '꽃'



우리는 이미 학창 시절 국어 교과서에서 큐레이션의 의미를 배웠다.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름을 불러주자 꽃이 되었다. 소떡소떡은 ‘큐레이션’이다. 누구나 아는 그 음식에, 이영자 씨가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다.

 

소극적 큐레이션과 적극적 큐레이션 


출판 업계에서 큐레이션은 생소한 개념이 아니다. 많은 영역에서 큐레이션을 활용한다. 큐레이션은 적극성의 정도에 따라 적극적 큐레이션과 소극적 큐레이션으로 나눠볼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소극적 큐레이션은 ‘추천사’다. 저명한 작가나 학자, 평론가, 혹은 연예인이나 전문가들이 ‘이 책은 이런 내용을 담고 있고요. 제가 보증합니다. 한번 읽어보세요’라는 내용으로 큐레이션 한다. 추천하는 사람의 귄위와 배경이 큐레이션을 담보한다.


또 다른 소극적 큐레이션운 북 리뷰, 독후감 등이다. 책을 사라고, 읽어보라고 강력하게 얘기하진 않지만 책의 가치를 전달하면서 간접적으로 책을 소개한다. 내용 중심의 큐레이션이다.  

 

적극적인 큐레이션은 보통 서점에서 이뤄진다. 서점은 책을 판매가 가장 중요하다. 최대한 다양한 메시지를 전달해 책의 구매를 유도한다. 서점의 고전적인 큐레이션은 신간과 베스트셀러 위주로 배치하는 방식이다. ‘상대적으로 새로운 지식’ ‘남들이 보증한 책’ 등의 메시지를 준다.  

 

최근에는 트렌드를 반영한 다양한 큐레이션이 이뤄진다. 독립서점을 중심으로 ‘큐레이션 서점’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서울 성북동 큐레이션 서점 부크는 주로 잡지를 큐레이션 한다.


부쿠의 대표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18.4.18)에서 “개인의 취향과 그에 맞는 라이프 스타일을 즐기는 사람들이 오는 큐레이션 서점에 어울리도록 ‘독립 매거진’ 위주로 선별하고 있다. 사진이나 표지 편집이 다각적이고, 광고 없이 깊이 있는 콘텐트를 다룬다는 공통점이 있다. 독자들의 호응도 좋은 편이다. 부쿠의 전체 매출의 약 10%를 독립 매거진이 담당한다”고 전했다.  

 

서점이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제시하는 ‘큐레이션 매장’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 시초는 일본의 ‘츠타야 서점’이다. 출판 왕국 일본을 덮친 초유의 불황에도 자신만의 길을 걸으며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거의 유일한 서점이다. 2012년 일본 서점업계의 간판인 기노쿠니야를 누르고 연간 서적 판매고 1위에 올랐다.  


츠타야 서점에는 책이 단순하게 진열되어 있지 않다.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다양한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요리를 예로 들면, 요리와 관련된 책을 진열하고, 주변에 요리 도구를 함께 판매한다. 요리 클래스 수강권도 함께 진열해서 직접 체험해 볼 수 있게 한다. 요리와 관련된 모든 것을 큐레이션 하는 셈이다.  


요리, 자동차, 캠핑, 아트, 건축 등 다양한 분야의 테마를 정해 큐레이션 한다. 책만 보는 것이 아닌, 해당 테마에 대한 방대한 지식과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돕는다. 신간과 베스트셀러만 배열하는 게 아닌 독자의 취향을 저격할 수 있는 장치들을 배치한다. ‘당신의 취향을 팝니다’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큐레이션 자체가 하나의 콘텐츠인 셈이다.  

 

플랫폼이 책의 이름을 부르면.. 


플랫폼에서도 큐레이션이 가능하다. 대부분 적극적이다. 어떤 책을 봐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해 책을 소개하고, 직접 보내주기까지 한다.  


‘지식큐레이터 전병근의 북클럽 오리진’은 일간지에서 문화 분야를 오래 취재했던 전직 기자가 진행한 프로젝트다. 다양한 책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현시점에 읽을 만한 책을 추천해준다. 멤버십 회원제로 진행됐다. 월 15,000원 멤버십 회원만 볼 수 있는 신간 소식을 전해주고, 오프라인 책 모임도 진행했다.  


 

프로젝트는 ‘오바마’를 테마로 큐레이션 했다. ‘대통령에서 물러났으나 미래가 더 기대되는 인물’로 인간 오바마를 소개했다. 오바마를 자라게 한 책과 그가 추천하는 도서를 소개했다. 오바마와 직·간접으로 관련된 책 이야기도 전했다. 오바마를 제대로 알고 싶은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해당 책을 읽어보라고 권했다.  


‘그래도 우리는 헌책방 한다’ 프로젝트는 헌책방 주인장들이 직접 큐레이션 한 책을 전달한다. 20,000원 내면 받아 볼 수 있다. 독자는 어떤 책을 받아볼지 모르다. ‘설레어함’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이 프로젝트는 대학교 봉사 동아리가 진행한 프로젝트다. 1959년부터 반세기 넘게 이어지고 있는 청계천 헌책방 거리는 심각한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해있다. 지역 상생과 고유한 역사를 보존하다는 목적으로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대학생들은 헌책방의 책을 20대의 젊은 감성으로 패키징 했다. 큐레이션은 헌책방 주인장들의 경험과 노하우를 활용했다. 대학생의 감각과 사장님의 경험은 헌책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다. 500만 원이 넘는 금액을 펀딩 받았다. 오프라인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헌책방을 온라인 플랫폼으로 끌어낸 의미 있는 프로젝트다.  


이영자 씨가 ‘소떡소떡’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까지 그 가치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큐레이션은 먼지 쌓인 헌책을 살려낸다.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던 숨겨진 좋은 책을 찾아낸다.


플랫폼은 그 책의 이름을 불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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