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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건 Jan 05. 2018

모바일에선 콘텐츠에 돈을 낸다

[업 에세이] 콘텐츠 플랫폼 마케팅

내꺼 인 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너, PC


나의 첫 컴퓨터는 XT였다. 286, 386이 나오기 전 모델이다. 당시 아버지 월급이 100~200만 원 정도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컴퓨터 한 대가 80만 원 했던 것 같다. 지금 가치로 환산해보면 300~400만 원은 되지 않을까 싶다. 시험에서 올백을 맞아서 선물로 사주셨다. 당시 문제가 쉬워서 올백이 한 반에서 꽤 나왔다. ‘물 시험’ 논란이 있었을 텐데, 나야 컴퓨터 선물을 받는다는 사실에 행복한 기억뿐이다.


XT는 5.25인치 2D 디스크만 사용이 가능하다. 2D 디스크엔 1mb(mega byte)가 채 들어가지 않는다. MS-DOS 디스크를 넣고 부팅한다. (당시에도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는 잘 나갔던 것 같다.) 도스 명령어 입력창에 dir을 입력하고 확장자가 EXE인 파일을 찾아 입력하면 프로그램이 실행됐다. 부모님은 공부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사주신 컴퓨터지만, 대부분 게임을 했다. (공부를 도와주는 소프트웨어도 사실상 거의 없었다.)


컴퓨터는 한 대였고 쓸 수 있는 물리적 공간과 절대적 시간은 한정적이었다. 내가 할 때는 동생이 못했고. 동생이 하려고 하면 내가 양보해야 했다. 가끔 아버지가 타자 연습을 하신다며 컴퓨터를 하실 땐 동생과 나 둘 다 베네치아가 물에 잠기는 모습을 바라만 봐야 했다. (당시 ‘한메 타자’라는 타이핑 연습 프로그램이 있었고, 그 프로그램 안에는 비처럼 내려오는 글자를 빠르게 쳐서 없애지 않으면 베네치아가 수몰되어버리는 슬픈 게임이 있었다.) 그래서 ‘나의 첫 컴퓨터’라는 말은 잘못된 표현이다. 우리 가족의 ‘공동 소유 컴퓨터’다.


몇 년 후 아버지는 고성능 펜티엄 컴퓨터를 사주셨다. 처리 속도가 너무 빨라서 팬을 돌려서 CPU를 식히지 않으면 안 되는 컴퓨터였다. 그렇게 빠른 컴퓨터라도 내가 할 땐 동생이 기다려야 하고, 동생이 할 땐 내가 참아야 했다. 공간과 시간의 제약은 컴퓨터가 업그레이드돼도 여전했다.


PC는 Personal Computer의 약자다. 개인화 컴퓨터라는 뜻이다. 하지만 PC는 대부분 가정에서 개인화되지 못했다. (간혹 일부 부유한 가정은 1인 1 컴퓨터가 있기도 했다.) 내가 정말 원하는 데이터를 저장하지도 못했다. 간혹 내가 좋아하는 데이터를 깊숙이 숨겨놓기도 했다. 폴더를 위장했다. PC는 내 것이자 내 동생의 것이며, 내 아버지의 것이기도 했다. 진정한 ‘내꺼’가 아니었다.


‘내꺼 중에 최고, Moblie’


나에게 현재 내 몸에 지닌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물으면, 단연코 스마트폰이라 말한다. 일정을 체크하고, 메신저로 연락하고, 간혹 게임도 하며, 콘텐츠도 감상한다. 사진을 찍고, 물건을 사고, 택시를 부르고, 음악을 듣고, 음식점을 예약한다. 스마트폰은 내 몸의 일부처럼 움직이고 있다. 라이프 사이클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모바일 스마트폰은 PC가 하지 못한 완벽한 개인화를 이뤘다. 진정한 ‘내꺼‘를 스마트폰이 실현해줬다. 휴대전화였을 때는 PC의 기능을 구현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저 전화와 문자만 쓰는 커뮤니케이션 용도였다. 스마트폰 시대가 본격 접어든 시점은 PC의 기능을 대체하면서부터다.


이는 데이터가 증명한다. 2009년 우리나라에 애플의 아이폰3GS가 처음 출시됐을 당시, PC의 트래픽은 모바일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았다. 모바일의 트래픽은 무의미한 수준이었다. 2010년 이후 삼성이 옴니아의 실패를 딛고 갤럭시 시리즈를 잘 만들기 시작했다. (어쨌든 우리나라는 삼성 선호도가 가장 높다) 갤럭시가 대중화를 이루면서 모바일의 트래픽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2017년 현재 모바일 트래픽이 PC 트래픽을 상회한다.


보통은 20~30대의 젊은 세대가 트렌드를 주도한다고 말한다. 얼리어답터(Early adopter)는 트렌드가 될 상황을 미리 경험해본다. 하지만 새로운 시장의 도래는, 젊은 세대가 아닌, 얼리어답터가 아닌, 그 외의 사람들, 즉 거의 모든 사람들까지 경험을 하는 순간 이뤄진다.


PC만 있던 시절, 어머니는 컴퓨터의 소유권 분쟁(?)에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 보통은 나와 내 동생이 그 다툼을 주도했고, 간혹 베네치아를 구하고 싶은 아버지가 끼어드셨다. 어머니는 우리 집에 있던 한 대의 PC와 아무 관련이 없었다.


중년 여성들의 스마트폰 사용이 급속도로 높아지면서 스마트폰 시장이 압도적으로 커졌다. 그간 소유권을 갖지 않았던 우리 어머니들이 말 그대로 개인화된(personal) 디바이스(device)를 갖게 된 것이다. 중년에 이어 50대 이상의 장년까지 스마트폰 소유가 이어지면서, PC의 시장은 저물었고 모바일의 시대가 열렸다. 모바일 시대는 ‘진정한 내 것의 탄생’이라고 말할 수 있다.


크라우드 펀딩과 콘텐츠 유료화


나는 카카오에서 콘텐츠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스토리펀딩을 3년째 운영하고 있다. 크라우드 펀딩이란 필요한 비용을 대중에게 조달하는 방식이다. 대중을 뜻하는 크라우드(Crowd)와 자금 조달을 뜻하는 펀딩(Funding)을 조합한 용어로, 온라인 플랫폼을 이용해 다수의 대중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을 말한다. 초기에는 트위터, 페이스북 같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적극 활용해 '소셜 펀딩'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크라우드 펀딩은 종류에 따라 ▷후원형 ▷기부형 ▷대출형 ▷지분투자형(증권형) 등 네 가지 형태로 나뉜다. 세계 최초의 크라우드 펀딩은 2005년 영국에서 시작된 대출형 업체인 ZOPA.COM(조파 닷컴)이다. 증권형은 2007년 영국의 크라우드 큐브(crowdcube.com)가 최초다. 이후 2008년 미국에서 최초의 기부-후원형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인 인디고고(Indiegogo)가 출현하면서, 크라우드 펀딩이란 용어가 일반화됐다.


우리나라의 경우 크라우드 펀딩이 2011년 후원·기부·대출형을 시작으로 정착되기 시작했다. 2016년 1월에는 증권형 크라우드 펀딩이 도입됐다. 개인 투자자가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업체를 통해 중소·벤처기업에 연간 최대 500만 원(업체당 200만 원)을 투자할 수 있는 제도다.


후원형 크라우드 펀딩은 후원자에게 증권이 아닌 리워드로 보상한다. 리워드는 책-물건 등 유형의 리워드, 강연-네트워킹 모임 등 무형의 리워드로 나뉜다. 무형의 리워드에는 프리미엄 리포트 등 온라인 콘텐츠도 포함된다. 스토리펀딩은 후원형 크라우드 펀딩으로 분류한다.


크라우드 펀딩은 ‘콘텐츠 유료화’의 새로운 방식이다. 콘텐츠 유료화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가장 기본적인 방식은, 콘텐츠를 사고파는 방식이다. 돈을 내지 않으면 볼 수 없고, 돈을 내면 콘텐츠를 볼 수 있다. ‘선 판매 후 감상’의 프로세스로 이뤄진다. 콘텐츠를 재화의 개념으로 보는 방식이다.


‘선 판매 후 감상’의 프로세스는 콘텐츠를 보려는 순간 ‘돈을 내라’는 메시지가 뜬다. 돈을 낼 준비가 안 된 독자들은 당황하게 된다. 마음이 상한 독자들은 콘텐츠를 보지 않고 나가버린다. 인터넷에서 대부분 콘텐츠는 공짜다. 인터넷 콘텐츠에 돈을 내는 경험이 많지 않은 독자들은 이런 방식에 불편함을 느낀다. 그래서 ‘돈을 낼 때의 장벽’이라는 뜻의 ‘페이월(pay wall)’이란 말이 생겨났다.


스토리펀딩은 일단 콘텐츠를 공개했다. 그리고 그 콘텐츠가 마음에 들면 돈을 내게 했다. 일종의 창작자와 작가에 대한 후원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선 공개 후 펀딩’의 프로세스로 이뤄진다. ‘돈 주고 사야만 한다’는 유료화의 고정관념을 깼다. ‘페이월’을 거둬냈지만 돈은 받을 수 있다. 자연스럽게 콘텐츠 유료화가 이뤄졌다. 스토리펀딩은 2018년 1월 현재 135억 원의 펀딩을 받았다. 이 돈의 대부분은 창작자의 몫으로 돌아갔다.


콘텐츠 유료화와 모바일의 상관관계


‘모바일에서는 돈을 낸다’ 스토리펀딩을 운영하며 배운 점이다. PC에서 콘텐츠에 돈을 잘 내지 않던 독자들이, 모바일에서는 돈을 내는 모습을 보았다. 같은 콘텐츠인데 왜 모바일에서는 돈을 낼까?


모바일은 ‘내꺼’다. ‘내꺼’엔 좋은 것, 예쁜 것, 내가 좋아하는 것만 담고 싶다. 그러다 보니 나에게 꼭 필요한 정보를 제때 제공해주면 돈을 낸다. 나를 웃게 하거나, 나를 울리게 하는 콘텐츠에는 기꺼이 돈을 낸다.


모바일엔 ‘간편 결제’라는 기능이 있다. ‘카카오페이’, ‘네이버페이’, ‘페이코’ 등을 말한다. 많은 IT 업체들이 간편 결제 기능을 제공한다. 인터넷에서 돈을 쓰는 행위에는 고도의 이성적 판단이 개입된다. 간편 결제는 이성적 판단을 매우 효과적으로 무력화한다.


간편 결제가 없던 시절, 결제하려면 공인인증서라든지, 실명인증 등의 과정이 있었고, 이런 과정을 거치며 ‘여기에 정말 돈을 쓸 가치가 있을까?’ 고민하게 된다. 이성적 판단이 개입되면서 결제를 방해한다.


간편 결제는 이런 이성적 판단이 개입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 손가락을 살짝 문질러 지문을 인식하거나, 비밀번호 6자리만 누르면 바로 결제가 된다. ‘아차’ 하는 순간 결제 문자가 날아온다. 후회해도 소용없다. 소비자로서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공급자 측면에선 ‘콘텐츠 유료화’ 최고의 기회다.


‘콘텐츠 홍수’의 시대다. 하루에도 수 천 수 만 개의 콘텐츠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홍수 때 오히려 마실 물이 없다. 너무 많은 콘텐츠가 발행되다 보니, 정작 나에게 필요한 콘텐츠를 찾기 어렵다. 내가 원하는 콘텐츠를 추천해주는 ‘큐레이션’ 서비스의 중요성이 커졌다. 여기엔 데이터 기반의 추천 시스템이 활용된다. 독자의 성향을 분석해 맞춤형 콘텐츠를 추천해주는 기술도 중요하다. 데이터를 갖고 있고 기술을 갖고 있는 플랫폼을 잘 활용해야 하는 이유다.


나와 결합된 최적의 ‘개인화 디바이스’, ‘내꺼’엔 정말 좋은 것만 담고 싶다는 ‘개인의 욕망’, 이성적 판단을 무력화하는 ‘간편 결제’ 모바일 시대는 콘텐츠 유료화 최적의 기회다. 모바일, 그리고 그 모바일 생태계를 만들어가고 있는 있는 플랫폼 어깨 위에 올라탄다면, 새로운 길이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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