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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건 Mar 24. 2016

7만 원짜리 리조트의 흔한 뷰

[유혹의 하룻밤 4편] 태국 끄라비 '반 사이나이 리조트'

가격(price), 위치(location), 경치(view)


숙소 선택에는 다양한 기준이 있다. 나는 이 3가지를 주요 요소로 꼽는다.


20대 대학생 때는 '가격'이 가장 중요했다. 돈이 없었다. 없어도 정말 없었다. 이 돈으로 여길 왜 왔나 싶을 정도로 없었다.


눈만 붙일 수 있으면 됐다. 후미진 골목이든, 시궁창 냄새나는 지하철 타고 교외로 나가든, 방에 창문이 없든, 쥐가 나오든, 상관없었다. 아프니까 청춘이었다.


20대 후반, 직장인이 되고 살짝 경제적인 여유가 생겼다. 대신 시간이 없었다. 이동 시간을 줄여야 했다.


홍콩은 청킹 멘션 맞은편 'YMCA 솔즈베리' 태국 방콕은 수쿰빗 한복판 '그랜드 센터포인트 호텔 터미널 21' 중국 상하이는 난징동루 초입의 '르 로얄 메르디앙 상하이' 일본 오사카는 도톤보리 어디든. 베트남 호찌민은 데탐 거리 어디든.


검색 어뷰징을 노리고 호텔 이름을 나열한 건 아니다.

방콕 최고의 위치를 자랑하는 '그랜드 센터포인트 호텔 터미널 21' 수영장 (feat. 도도맘)




여긴 정말 '국민 호텔'이다. 죄다 한국 사람뿐이다. 해외까지 나가서 동포의 정을 느끼고 싶다면, 저 호텔들 가면 된다.  


이 '국민 호텔'들은 각 도시의 가장 중요한 스팟에 위치했다. 최대한 동선을 줄일 수 있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


시간과 돈은 반비례한다. 시간이 많으면 돈이 없고, 돈이 생기면 시간이 없다. 시간과 돈, 둘 다 많으려면 '임대업' 뿐인가?


이제 뷰 타령을 하기 시작했다


'뷰'는 그동안 전혀 고려하지 않던 기준이었다. 해외여행 가서 소중한 시간을 온전히 호텔이나 리조트에 짱박혀야지만 누릴 수 있는 아주 사치스러운 기준이다.


한 도시를 2~3일 정도 여행한다 치자. 20대 때는 여기저기 곳곳을 돌아보고 근교까지 둘러봐야, 진정한 여행이라 생각했다. 호텔은 그저 잠만 자는 곳이었다.


30대가 됐다. 체력이 받쳐주지 않았다. 하루 정도는 호텔에서 온전히 쉬고 싶었다. 이제 '사치스러운 기준'이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됐다.


조용하고 한적한 태국이라니..


2015년 9월 11번째 태국행. (태국을 좋아하는 이유는 차차 공개하겠다) 끄라비라는 곳에 가고 싶었다. 푸껫을 몇 번 가봤지만 그 근처 끄라비는 한 번도 못 가봤다.


조용하고 한적하다고 한다. 못 가본 게 아니라 '안 갔다'가 맞겠다. 조용해서 안 갔다. 태국 가서는 응당 모든 걸 놓아버리고 흥청망청 놀아야 했다.


카오산 로드-RCA-빠통의 유러피안들과 말도 안 되는 영어를 섞어가며 '치얼스' 하는 게 태국 여행의 묘미 아니던가.


한 장의 사진이 나를 유혹했다.


가라 사진이 많지만 믿어보기로 했다. (출처 : 호텔스닷컴)

절벽 아래 위치한 방갈로. 풍경도 풍경이지만. 가격이 매우 착했다. 1박에 7만 원. 트립어드바이저(https://www.tripadvisor.co.kr/)에서도 끄라비 지역 압도적인 1위 숙소였다.


아무리 '가격'은 20대 대학생 때 기준이라지만, 싸고 좋다는데 끌리지 않으면 그게 사람인가. 일단 예약했다. 끄라비라는 곳에 처음 가게 됐다. 방콕 돈무앙 공항에서 3만 원짜리 LCC 녹에어 타고 1시간 5분 날아갔다.


끄라비는 태국의 가파도?


끄라비는 예상외로 심심했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정말 태국이 맞나 싶을 정도로 차분했다. 섬 투어가 그나마 덜 심심했다.


흔히 피피섬은 푸껫을 통해 가지만, 끄라비가 더 가깝다. 스피트 보트 기준으로 푸껫에서는 1시간 넘지만, 끄라비에서는 40분이면 간다.


피피섬은 가봤기 때문에 홍섬에 가기로 했다. 홍섬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섬이 빨개서 Red Island를 우리 식으로 번역한 줄 알았다. 근데 섬 이름이 진짜 Hong Island 였다.


섬은 예뻤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에메랄드 빛 바다가 펼쳐진다. 제주도의 가파도 느낌이 들었다. 한없이 조용하고 한적하고 예쁘기만 한 섬.


푸껫 빠통이 제주시 연동 신시가지(유흥업소 밀집 지역 전국 1위)라면 끄라비는 매년 4월 청보리 축제가 열리는 가파도와 같았다.


끄라비 일정은 3일, 하루 반나절 사이 돌아볼 곳은 다 둘러봤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체력도 방전됐다.


7만 원으로 어디까지 해봤니?


1.5일을 온전히 리조트에서 보내야 했다. '반 사이나이 리조트' 끄라비 시내와도 떨어져 있다. 시내로 나가려면 2시간에 한 대꼴로 운영되는 뚝뚝을 타고 나가야 했다. 말 그대로 '고립' 됐다.


고립을 즐기기로 했다. 리조트의 곳곳을 누렸다. 조경이 예뻤다. 중간중간 쉴 의자도 비치해뒀다. 작은 산책로도 있었다.

너무 더워서 앉지는 못했다.
너무 더워서 걷진 못했다.
더웠다.

반 사이나이 리조트 뷰의 클래스를 한 단계 높여주는 건 바로 '바위산'이다. 바위산이 리조트를 둘러싸고 있는 느낌이다. 어디서든 보였다. 모든 풍경을 그림으로 만들어줬다.


호텔 예약 사이트에 나온 그대로였다. '가라'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수영장에서 보는 풍경이 압도적이었다. 수영장에서 멍하니 바위산을 10분 동안 바라보기도 했다. 마음이 평온해졌다.


도촬 당함.
3일간 우리집.



7만 원짜리 치고는 황홀한 풍경이었다.


이 리조트는 마치 '라스트 팡'처럼 생각지 못한 즐거움을 줬다. 조식이 맛있다. 저렴한 숙소의 조식은 그저 구색만 맞춘다.


저렴한 혹은 퍽퍽한 빵과 우유-시리얼에 달걀 요리해주는 사람만 한 명 두면 그게 조식이다. (오믈렛은 에브리띵이 진리) 과일도 한국에서 흔한 파인애플과 수박뿐, 망고는 없는 곳이 대부분이다.


반 사이나이의 조식에는 무려 '바나나 로띠'가 있다. 동남아의 대표적 길거리 음식이다. 밀가루 반죽을 넓게 펴서 바나나와 초콜릿을 넣고 팬에 구운 후, 누텔라나 연유를 뿌려준다.


맛이 없을 수 없다. 온갖 악마의 재료를 다 쏟아부은 느낌이다. 태국에서만 해볼 수 있는 '일탈'이다.

악마의 음식


뷔페식이 아닌, 서빙식이라는 점도 마음에 든다. 위 메뉴에서 아무거나 시키면, 다 해준다. 마치 자유이용권을 끊은 것처럼 마구 먹을 수 있다. 제대로 '칼로리 일탈' 한다.


7만 원에 누릴 수 있는 호사


조만간 다시 끄라비를 찾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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