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의 하룻밤 5편] 일본 오사카 '후시오카쿠(불사왕각)'
언젠가부터 3시간 넘어가는 비행은 힘들어졌다. 기내식 먹고 영화 한 편 보는 정도가 견딜만하다. 그 이상 넘어가면 마음의 준비 단단히 해야 한다.
전날 밤을 새우고 비행기에서 '떡실신' 신공은 서른 살 넘어가니 못할 짓이다. 2014년 유럽 여행 때 이 신공 썼다가 24시간 통으로 날렸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처럼 잠에서 못 깨어났다. 웬만하면 멀리 가는 여행은 마일리지 열심히 모아 비즈니스 탄다.
우리나라는 사실상 섬나라다. 기차 타고 자유롭게 다른 나라를 왕래하는 유럽인들이 부럽다. 내 기준 3시간 내로 갈 수 있는 나라는 일본-중국뿐이다.
20대 때, 무조건 멀리 가고 싶었다. 해외여행은 최대한 내가 사는 곳과 멀리 떨어진 곳에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30대가 된 지금 일본-중국의 매력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오사카는 서른이 돼서 처음 갔다. 이후 두 번이나 더 갔다.
오사카 여행은 항상 즐겁다. 가까운 여행지에서 큰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곳이다. 비행시간은 2시간이 채 안 걸린다.
1. 가장 큰 장점은 오사카 근처 다양한 도시를 동시에 여행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간사이 스루패스' 하나면 전혀 다른 매력의 도시들을 한 번에 여행할 수 있다.
일본의 경주 '교토' 야경이 아름다운 '고베' 사슴 천국 '나라' 여기에 온천을 즐길 수 있는 '아리마 온센'도 갈 수 있다. 오사카 여행은 항상 새롭다.
2. 오사카 시내 동선을 최소화할 수 있다. 관광 명소들이 한 곳에 몰려있다. 난바(難波), 신사이바시(心斎橋), 도톤보리(道頓堀), 덴덴타운(오사카의 아키하라바)까지 먹을거리와 볼거리, 쇼핑 천국 모두 도보 이동 가능하다. 우리나라로 치면, 명동-강남-용산 등이 모두 한 곳에 모여있는 셈이다.
물론 매우 넓어서 다 걸어 다니려면 힘들다. 그래도 걷다 보면 끊임없이 볼거리가 이어진다. 도보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매우 매력적이다.
일본이 우리나라와 물가가 많이 비슷해졌다. 웬만한 밥 한 끼는 1만 원 내외로 큰 차이 없다. 우리나라가 그새 물가가 오른 건지, 일본이 떨어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여전히 교통비는 우리나라보다 비싸다. 두세 정거장 가도 기본 2000~3000원이다. 걸어 다니며 교통비를 절약할 수 있다는 장점도 빼놓을 수 없다. (우리나라도 신분당선은 2500원이니, 별반 차이 없는 건가.)
3. '먹다 죽는다(쿠이다오레, くいだおれ)'란 말이 있다. 오사카를 일컫는 말이다. 맛있는 음식이 초단위로 유혹한다.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오코노미야키' '타코야키' 모두 오사카 태생이라고 한다. '라멘' '스시' 같은 일본 가면 으레 먹는 음식들도 다 맛있다.
오사카에서는 기본 4끼, 컨디션 좋으면 6끼 먹었다. 이때는 다이어트 안 할 때라 괜찮았다. 마구 먹었다. 먹는 즐거움,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큰 행복 중 하나다.
매력적인 여행지 오사카에서도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료칸(일본 전통 숙박시설)'과 온천이 마땅치 않다. 위에 언급한 아리마 온센이라는 지역이 있지만, 반일치기로 적당한 곳이다. 대부분 일본 여행 일정은 짧다. 숙박할 정도는 아니다.
일본의 대도시들은 료칸-온천을 즐길 수 있는 근교 동네들이 있다. 도쿄에서는 하코네로 가고, 후쿠오카에서는 벳부나 유후인으로 간다. 다 갖춘 오사카의 2% 부족한 점이다.
오사카 여행에서도 료칸을 경험해보고 싶었다. 찾은 곳은 오사카 시내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이케다'역 근처의 '후시오카쿠' 한자로 不死王閣, 한국에선 '불사왕각'이라고도 부른다. 이케다 역에는 한국 관광객들이 자주 가는 '인스턴트 라멘 박물관'이 있어 동시에 둘러보기 좋다.
예약은 한국어 페이지가 있어 편하게 할 수 있다. 위치나 가격도 확인 가능하다.
이케다 역에서 료칸이 운영하는 셔틀 타고 가도 되지만, 셔틀은 17시 40분에 막차다. 이케다 역에서 시내버스 타고 갈 수 있다. 일본어 모르면 조금 어렵겠지만, 버스 안 일본인들에게 물어보며 가면 그리 어렵지 않다. 대부분 친절하게 잘 알려준다.
버스 타고 5분만 가면 갑자기 농촌의 풍경이 펼쳐진다. 살짝 당혹스럽다. 개천을 건너 산속으로 20분 들어가면 후시오카쿠에 도착한다.
공기 좋은 산속 있다. 별채 형식이 아닌 하나의 큰 건물이다. 마치 한국의 한X콘도 같아 보인다. 매우 고풍스러운 료칸을 기대하면 실망할 수도 있다.
대신 가격이 그리 비싸지 않다. 식사 포함 1인 10만 원~15만 원 수준이니 다른 료칸에 비하면 저렴하다. 보통 1인 20~30만 원 정도 한다. 50만 원 넘어가는 고급 료칸도 있다.
로비에서도 딱 호텔이나 콘도 수준의 친절함을 느낄 수 있다. 과하게 친절을 베풀지 않았다. 그렇다고 너무 사무적으로 대하지도 않았다. 적당히 미소 지었고 적당히 친절했다.
료칸의 백미는 '가이세키'다. 일종의 한정식처럼 이것저것 조금씩 음식이 나온다. 대부분 관광객은 가이세키와 온천을 즐기기 위해 료칸을 찾는다.
가격이 착했기에 가이세키도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딱 기대한 정도만 나왔다. "스고이" 감탄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오이시" 맛있네 할 정도다. 료칸이 부족한 오사카에서 이 정도면 만족한다.
온천도 적당하다. 비록 개인탕은 아니지만(비싼 방은 개인 노천탕도 있다) 공중탕에서도 따뜻한 온천을 즐길 수 있다. 노천탕이 꽤나 크다. 겨울에 가서 노천탕을 더욱 개운하게 즐겼다. 머리는 차갑고 몸은 뜨거우니 20~30분 탕에 담그고 있어도 괜찮았다.
온천을 마치고 돌아오니, 이불이 깔려있다. 방도 적당히 따뜻하게 데워놨다. 노곤한 몸을 이불속에 넣으니 여독이 풀린다. 3일 여행의 마지막 날에 딱 어울리는 밤이다.
다른 고급 료칸에 가면 과한 친절함이 부담스럽기도 하다. 후시오카쿠는 콘도 같다. 료칸의 세세함이 느껴지진 않는다. 그래도 챙길 건 다 챙겨준다. 마치 '츤데레'처럼.
후시오카쿠는 마지막까지 츤데레 기질을 보인다. 역으로 데려다주는 셔틀에 탔다. 창문을 보니 직원들이 나와서 '아리가토고자이마시타' (감사했습니다)라고 쓰인 플랜 카드를 들고 손 흔들고 있다.
일본인들에겐 혼네와 다테마에가 있다고 한다. 혼네(本音)는 본심, 속내를 말하고, 다테마에(建前)는 명분, 표면적인 모습을 가리키는 말이다.
여행자에게 혼네는 그리 중요치 않다. 3~4일의 짧은 시간에 '혼네'를 알기는 어렵다. 그것이 '다테마에'라도 여행자에겐 충분히 감동을 줄 수 있다. 오사카만 생각하면 미소가 지어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