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월간의 미혼 행세도 이젠 끝
결혼반지를 잃어버렸다.
그 사실을 알아차린 건 그리스 한 달 살기를 마치고 튀르키예로 가기 위해 탑승 게이트 앞에 앉아있을 때였다. 이른 비행시간으로 인해 비몽 사몽인 상태였기에 왼손 약지의 허전함을 빨리 알아채지 못했다.
에어비엔비 숙소에 반지를 두고 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리 놀라지 않았다. 바로, 호스트에게 메시지를 보내 반지를 찾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반지는 택배로 받음 되겠지 싶었다. 하지만 호스트는 반지를 찾지 못했다고 했다. 이럴 수가.
결혼반지 없이 튀르키예 한 달 살기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보니 내가 잃어버린 것은 반지뿐만 아니었다. 여분으로 가져간 핸드폰과 무선 이어폰의 행방이 묘연했다. 그렇게 나는 그리스 에어비엔비 호스트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도무지 물건을 훔쳐갈 사람이라고 믿기지 않았으니 상황이 그러했다. 물건이 없어진 시기를 추려보니 모두 그리스를 가리켰다. 의심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지만 물증이 없었기에 브런치에 하소연하는 글을 작성하며 그냥 그렇게 잊기로 했다.
- 브런치에 남긴 하소연 글
왼손이 허전했다. 그래서 은점토 커플링을 만들었으나 일주일 만에 색이 새카맣게 변해버렸다. 그렇게 일주일 만에 은점토 반지와 이별해야 했다. 내 속도 새카맣게 타버렸다. 남편 혼자 결혼반지를 끼고 있는 것이 이상해 내 반지만 다시 구입해야 하나 싶었지만 금값은 올랐고 반지는 너무 비쌌다. 결혼을 준비하던 시절엔 돈에 대한 감각이 무뎠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했다. 차리리 둘 다 끼지 말자 싶어 남편 반지를 팔아보려고 감정까지 받았지만 그냥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처음엔 많이 속상했지만 나는 금세 반지의 존재를 잊었다. 손에 걸리는 것이 없으니 편하기도 하고, 미혼 행세도 할 수 있다는 의외의 장점 있고(?).
홀로 미혼 행세를 한 지 4개월이 되던 어느 날, 에어비엔비 앱 알림이 울렸다. 그리스 호스트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이럴 수가, 결혼반지를 찾았다는 메시지였다.
외국 어딘가에서 잃어버렸거나 도난당한 반지를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기에 놀랐다. 더 놀랐던 것은 반지의 배송 비용까지 자신이 모두 지불하겠다는 호스트의 말이었다. 호스트는 자기 일인 것 마냥 함께 기뻐해주었다. 그간 호스트를 의심했던 내 마음이 너무 부끄러웠다. 정말 부끄러웠다.
한 달 후, 결혼반지가 한국에 도착했다. 봉투를 열어보니 나의 반지는 꼼꼼한 포장 속에 들어있었다.
그렇게 5개월간의 미혼 행세를 마치고 나는 다시 반지를 낀 기혼자로 돌아왔다. 타자를 치는 이 순간에도 왼손 약지에 있는 내 반지가 보일 때마다 신기하다. 그리스에서 잃어버린 것을 찾다니. 그것도 5개월 만에. 남편의 결혼반지를 팔지 않고 가지고 있었다니. 그것 참, 신의 한 수였군!
이랬거나 저랬거나 오늘의 교훈은 이렇다.
함부로 사람을 의심하지 말자. 절대 의심하지 말자!
잘못된 의심은 추후 모두 나의 부끄러움으로 돌아올 수 있다.
브런치에 의심하는 글을 올렸던 것이 미안해 부랴부랴 정정 글을 써본다.
이쯤에서 다시 드는 궁금증.
그럼 핸드폰이랑 이어폰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의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