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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아 Jul 26. 2024

아무래도 집에 도둑이 들었었나봐

내 결혼반지는 어디에...

그리스에서 튀르키예로 넘어가기 위해 공항에서 대기 중이었다. 새벽에 일어났기에 헤롱헤롱 잠에 취한 상태였는데 짝꿍의 한마디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여보, 반지 어딨어?"


그 말에 내 왼손 약지를 바라보니 여행하며 온몸이 타는 동안에도 반지 덕에 타지 않은... 하얗고 선명한 반지 자국만이 보였다.


"어머, 숙소에 반지 놓고 왔나 봐...!"


나의 결혼반지는 중앙에 큰 다이아 하나, 그리고 그 옆에 작은 다이아가 촘촘하게 박힌 심플하지 않은 반지다. 심지어 밴드는 두 겹 느낌으로 그 겹 사이에 약간의 공간이 있는지라 비누로 손이라도 씻으려 하면 그 사이에 비누가 잔뜩 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설거지를 하거나 세수를 할 때는 반지를 빼두는 습관이 생겼다. 아무래도 그리스에서 체크아웃을 준비하며 설거지를 하다 식탁에 반지를 빼놓은 듯했다.


비행기 탑승이 시작된 시점이었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 에어비엔비 호스트에게 연락을 하는 것뿐. 한 달간의 경험에 의하면 그리스 호스트는 매우 친절한 사람들이었기에 발견 즉시 나에게 그 사실을 알려줄 것이며, 심지어 어제저녁 집에서 반지를 뺐던 것이 기억이 났기에 반지를 찾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너무 피곤한 탓이었는지 결혼반지를 잃어버린 것에 속상해 하기보다는 핸드폰은 챙겨 온 게 어디야~라며 허허 웃기만 했다. 그리곤 호스트에게 반지를 찾아달라는 간절한 메시지를 보내 놓은 뒤 비행기에 올랐다.


튀르키예에 도착한 뒤 그리스 호스트로부터 온 메시지를 확인했다. 집을 구석구석 찾아보았지만 반지는 찾지 못했다고. 나는 그 당시만 해도 그리스 호스트에 대해 신뢰를 가지고 있었기에 그 말을 믿었다. 그리스 숙소는 얼룩덜룩 무늬가 있는 돌바닥이었던지라 떨어진 반지가 쉽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분명 바닥 어딘가에 있는데 호스트가 못 찾은 것이다, 추후에 찾으면 연락을 주겠지, 라며 속 편한 생각을 했다.




그런데 1년의 세계여행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 보니 여분으로 들고 간 제트 플립도, 버즈 이어폰도 보이질 않았다.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핸드폰과 이어폰은 여분으로 준비한 것들이라 여행 내내 쓰지 않았기에 캐리어에서 꺼낸 적이 없다. 그런데 없어졌다고?


그렇다면 이건 분명 누군가 훔쳐간 것이다.

누군가 우리가 머무는 숙소에 들어왔다!


그때부터 과거의 기억을 헤집기 시작했다. 도대체 누가 우리 숙소에 들어와 물건을 훔쳤을까? 우리가 숙소에 없다는 사실을 어찌 알고 들어와서 비싼 물건만 훔쳐갔을까?


간신히 기억해 낸 핸드폰과 이어폰 마지막 행방은 알바니아였다. 알바니아에서 짝꿍이 화상미팅이 있다고 해서 버즈를 쓸 건지 줄 이어폰을 쓸 건지 물어본 적이 있다. 짝꿍은 줄 이어폰을 택했고, 나는 속으로 왜 불편하게 줄 이어폰을 쓴담,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까진 버즈가 있었다. 핸드폰은 기억나질 않지만 정황상 핸드폰과 이어폰은 함께 훔쳐갔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 남은 여행지는 그리스뿐....


사람을 이렇게 무작정 의심하면 안 된다지만... 글을 쓰다 보니 의심은 더욱 짙어져만 간다. 왜냐하면 그리스 호스트는 우리 숙소에 접근하기 너무 쉬웠기 때문이다. 호스트의 집과 우리 숙소는 같은 마당을 공유했고 또 두 집을 아우르는 큰 대문을 가지고 있었기에 다른 이 눈을 신경 쓸 필요도 없다. 쉽게 얘기하면 한 집에 살았다는 말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한들 우리가 없는 시간을 어찌 알고 숙소에 접근했나? 우리는 그리스에 머무는 내내 호스트의 반려견 때문에 조용히 살아야 했다. 호스트의 반려견은 청각이 극도로 예민해 우리가 대문만 열어도, 낙엽만 밟아도, 말소리만 조금 내어도 짖어댔다. 그래서 우리는 게임마냥 반려견에게 들키지 않고 대문을 열려고 도전도 해봤다. (물론 번번이 실패했다.) 그런 반려견이 있었기에 우리가 왔다는 소리를 들으면 잽싸게 다시 자신의 숙소로 이동할 수 있지 않았을까?


더 의심스러운 날이 있긴 하다. 우리는 그리스 숙소에 머무르던 중 그리스 섬여행 했기에 5일이나 집을 비웠다. 섬여행을 떠나며 이 사실을 호스트에게 말할까 말까 고민했는데 여행을 떠나기 전날 호스트가 과일을 주는 바람에 거절하며 여행 사실을 알려야 했다. 그러니 호스트는 알고 있었다. 우리가 5일이나 집을 비운다는 사실을.


반지를 잃어버린 지 두 달, 핸드폰과 이어폰 분실 사실을 알게 된 지 한 달 만에 증거도 없이 그들을 의심하고 있는 내 모습이 초라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분실금액을 계산해 보니 속이 쓰리고 상했다. 여행자 보험도 살펴봤지만 보험 청구를 하려면 분실 당시 바로 경찰서에 갔어야 했더라. 집에 돌아오고 나서야 분실사실을 알았으니 멍청한 나의 억울함을 누구에게 토로하랴... 그래 그들은 아닐 거야, 반지는 내가 쓰레기통에 버렸나 보지 뭐... 도움 안 되는 자기 위로를 하며 브런치에 글을 쓸 뿐이다.




합법적으로(정확히는 경제적으로) 반지를 끼지 않을 수 있게 되었지만 '결혼반지스러운' 반지가 손에 없으니 다시금 우리 부부를 '부부'로 봐주는 이가 없다. 다시 결혼반지를 살 형편은 안되니 부랴부랴 은점토 커플링이라도 만들었다. 스마일 모양을 새긴 우리의 두 번째 결혼반지는 마치 어린아이들의 우정링 같아 보인다. 아휴, 그럼 또 뭐 어떤가~ 내 눈엔 예쁘고 귀엽기만 한걸! 이번에는 잃어버리지 않고 오래오래 껴야지.



ps.

여행자 보험에 물품 도난 약관도 꼭 넣자고요!

에어비엔비에 머무를 땐 귀중품은 캐리어에 넣자고요!

그리고 비밀번호를 꼭 걸어 놓자고요!

혹 잃어버린 물건이 있다면 재빠르게 신고하자고요!


우리의 두 번째 결혼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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