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을 베푸는 단 한 명
여행지를 아름다운 기억으로 만들어주는 요소에는 멋진 풍경이나 맛있는 음식도 있지만 단연 '친절을 베푸는 단 한 명의 사람'이 가장 중요하지 않나 싶다.
부다페스트 한달살기를 하던 어떤 날, 굴라쉬를 집에서 해 먹겠다며 무작정 동네 마트를 찾아간 적이 있었다. 굴라쉬의 시큼하면서도 매콤한 빨간 국물의 비밀을 몰라 일단 양념 파는 코너를 기웃거리는 중이었다. 그러다 길쭉한 통에 파프리카 그림이 그려진 빨간 양념을 발견했다. 오? 이걸 넣으면 되는 건가? 요알못인 나는 이 양념이 굴라쉬의 핵심양념이라 확신했지만 우리 집 주방장인 짝꿍은 매우 신중했기에 주변을 더 살펴보는 중이었다. 하지만 도무지 모르겠더라.
헝가리의 굴라쉬는 한국의 김치찌개 정도의 위상일 테니 웬만한 헝가리 사람이라면 레시피를 다 알터였다. 우리 주변에는 장을 보는 헝가리 인들로 가득했기에 물어보면 쉽게 해결될 일이었음에도 소심한 우리는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 채 모든 양념을 구글 번역기로 일일이 찍어보고 있었다. 그때 한 헝가리인이 다가왔다.
"도움 필요하니?"
우리는 뜻밖의 친절에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집에서 굴라쉬를 만들어 먹고 싶다며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러자 그녀는 내가 들고 있던 양념통을 바라보며 그건 빵을 찍어 먹는 용도라고 알려줬다. 그리고 온갖 가루 양념이 모여있는 코너로 우리를 안내해 빨간 파프리카 가루를 골라줬다. 덕분에 우리는 부다페스트 한달살기 내내 1일 1 굴라쉬를 해 먹을 수 있었다.
낯선 타국 땅에서 외국인에게 '먼저' 손 내밀어 주는 것이 얼마나 큰 친절인지 덕분에 알 수 있었다.
알바니아라는 낯선 국가에 도착한 첫날이었다. 예약해 둔 숙소에 체크인하고 한숨을 돌리려는 찰나, 전기가 나갔다. 두꺼비집을 찾아 스위치를 올려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호스트는 한 시간이 지나도록 연락이 되질 않았다. 관리실을 찾아가 도움을 청해 보기로 했다.
관리실 할아버지들에게 어찌저찌 전기가 나갔음을 설명하니 누군가를 불러주겠다고 하셨다. 잠시 후 검은 봉지를 들고 한 할아버지가 나타나셨고, 우리가 집으로 안내하려고 하자 아파트 밖에 꼿꼿이 서서 노트에 무언가를 적으셨다. 노트엔 숫자가 적혀있었는데 우리가 지불해야 하는 돈이라기엔 너무 큰 금액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할아버지는 손으로 손 세는 모양을 만드셨다. 돈을 주지 않으면 집으로는 발을 들이지 않을 심산으로 보였다. 우린 당장 정전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으나 할아버지가 요구하시는 돈은 부당해 보였고, 심지어 우린 그 돈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말없이 버티고 서계시는 할아버지와 무의미한 실랑이를 하고 있는데 한 알바니아 청년이 다가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영어를 할 줄 아는 청년이었다! 우리는 상황을 설명했다. 여긴 우리 집이 아니고 에어비엔비인데 호스트는 연락이 안 된다, 전기는 안 들어온다, 할아버지는 돈을 달란다, 우린 알바니아에 오늘 막 도착한 여행자다....
청년은 할아버지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새초롬하게 1층 전기 계량기로 다가가 스위치를 톡 올리고는 사라지셨다. 이렇게 간단한 일에 그 큰돈을 받으려고 하셨다고?... 하하.
문제는 집에 돌아가보니 여전히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할아버지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다행히도 아까 우리를 도와준 청년은 아직 거기에 있었고 그 청년은 호스트가 연락을 받을 때까지 우리와 함께 있으며 호스트가 연락을 받자 직접 상황을 설명해 주기까지 했다. 간단하게 적었지만 그가 우리를 돕기 위해 사용한 시간은 꽤 길었다.
알고 보니 옆 호텔 카페에서 일한다는 알바니아 청년 베시는 일 쉬는 시간에 잠시 담배를 피우기 위해 우리 숙소 앞에 왔다 곤경에 빠진 우리를 발견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가 말했다.
"알바니아에 와줘서 고마워."
도움을 받은 우리가 고맙지, 자기가 뭐가 고맙단 말인가. 베시는 웃으며 떠났고 우린 며칠 후 그가 일하는 카페에 찾아가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자칫하면 첫날부터 알바니아가 미워질 뻔했는데 베시 덕에 알바니아에서 행복한 한달살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행복한 한 달을 보내기 위해서는 친절을 베푸는 한 명만 있으면 족하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명...!
이번엔 유쾌한 친절을 경험한 일이다. 북마케도니아 스코페를 여행할 때였다. 스코페에서 오흐리드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버스 티켓을 프린트해야 한다는 안내를 받았다. 어디서 프린트를 한담? 구글맵을 따라 스코페 시내 중심에서 10분 정도 걸어 한 프린트 가게를 찾았다. 한 인상 좋은 아저씨가 신나게(?) 일을 하고 계셨다. 그에게서 왠지 모를 흥이 느껴졌다.
버스티켓을 뽑아 달라고 영어로 말하자, 아이캔트 스픽 잉글리시~라고 하셨다. 잉? 영어를 못한다고 하기엔 너무 유창한(?) 대답이었다. 너 방금 영어 한 거 아니야?라고 내가 되물으니 하하하하! 웃으시며 조크란다. 그리곤 능숙하게 노트북을 꺼내 우리의 유에스비를 꽂으셨다.
우리는 스코페 시내에서 열 걸음마다 마주치던 돈을 달라는 사람들 때문에 긴장하고 있었다. 여기서도 우리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많은 돈을 받으려 하는 건 아니겠지? 약간의 경계심과 함께 가격표가 붙어있진 않은지 둘러봤다. 가격표는 없었다. 혹시 몰라 파일을 켜드리고 '흑백'으로 프린트해 달라고 했다. 그런데 아저씨는 주저 없이 '컬러'를 선택하셨다. 역시 바가지를 씌우려는 것인가? 노노! 아돈니드 컬러!라고 다급하게 말하자, 아저씨가 대답하셨다.
"돈 워리~ 비 해피~"
버스표는 예쁜 컬러로 프린팅 되었다. 아저씨는 프린팅 된 종이를 능숙하게 비닐 파일에 넣어 건네주셨다. 하우머치?라고 물어보니 웃으며 프리!라고 하신다. 그제야 우린 긴장을 풀었다. 부람코달라(마케도니아어 감사합니다)라고 고개 숙여 인사한 뒤 가게를 나왔다. 아저씨는 여전히 흥나는 몸짓으로 '해브 어 굿트립!'이라 화답해 주셨다.
스코페의 우중충함과 담배냄새, 외국인인 우리를 향해 달려드는 너무 많은 사람들 때문에 얼른 이 도시를 뜨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는데... 유쾌한 친절을 베풀어주신 프린트가게 사장님 한 명으로 인해 스코페 사람에 대한 기억이 정화되는 것 같았다. 역시 친절을 베푸는 단 한 명이 그 나라와 도시에 대한 인상을 바꾼다.
이 외에도 여행하며 얼마나 많은 대가 없는 친절을 받았는지... 대가를 바라지 않는 친절을 받아본 사람은 또 누군가에게 그 친절의 기쁨을 나누고 싶은 법이다. 한국에서는 내가 그 친절을 베푸는 한 명이 되리라 마음먹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