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아 Jul 22. 2024

원효대사 해골 고등어 케밥

고등어 한 마리가 통째로 들어간 고등어 케밥이에유

튀르키예 음식이라고는 터키 아이스크림과 케밥, 이 두 개밖에 모르는 우리가 이스탄불 한달살기를 시작했다. 이제는 튀르키예라고 불러야 한다는 사실을 알지만 터키 아이스크림 대신 '튀르키예' 아이스크림이라고 말하면 그 맛이 안 사는 기분이다. 그러니 '터키' 아이스크림만은 봐주시길.


우리는 한달살기 여행지에 대한 맛집 정보나 여행 정보를 그다지 찾아보지 않고 무작정 부딪히는 스타일이 잘 맞았다. 그래서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라고 말하는 에어비엔비의 메시지는 언제 들어도 우리를 맞장구치게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여행자라면 모두 가는 유명 맛집이나 관광지를 종종 (자주) 놓치기는 했으나 덕분에 다른 이들은 모르는 우리만의 비밀 스팟을 발견하는 재미를 누리기도 했다. 매일 걷는 거리에서 우연하고도 자연스럽게 만나는 음식점, 풍경, 사람, 고양이... 이 모든 것들을 위해 여행하는 느낌이랄까?


튀르키예 또한 별 다른 정보 없이 그저 살다 보면 깨달아지는 여행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한달살기 일주일차를 맞이하며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어느 나라든 일주일 정도 되면 이 나라의 주식이 무엇인지 대강이라도 눈에 보이기 마련인데 이스탄불에서는 도무지 무엇을 먹어야 하는 것인지 파악이 되질 않았다. 이스탄불의 명동이라 불리는 이스티클랄 거리는 걸어도 걸어도 계속해서 새로운 음식이 등장하는 마법 같은 거리였다. 도대체 내가 알던 케밥은 어디에 있는 것이며 이 거리에 파는 정체 모를 음식은 다 무엇이란 말이냐...!



이럴 땐 별 다른 수가 없다. 백종원 선생님께 S.O.S를 보내는 수밖에...


백종원 선생님이 운영하는 유튜브 '배고파' 튀르키예 편과 스트릿트 푸드파이터 튀르키예 편을 몰아봤다. 한 시간 남짓한 시간, 구세주를 만난 듯이 선생님이 언급하시는 음식을 모조리 다이어리에 적었다. 선생님의 입에선 아다나 케밥, 미디예 돌마, 딴뚜니, 오작바시 등... 처음 들어보는 음식 이름이 끝도 없이 나왔다.


그중 고등어 케밥이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백종원 선생님은 고등어 케밥이 정말 맛있으셨는지 스태프의 것이 하나 남았다고 하자 심봤다며 고등어 케밥을 냉큼 하나 더 챙기셨다. 그 모습에 바로 여기다! 싶었다. 백종원 선생님이 방문하셨다는 가게를 구글맵에 꾹 저장한 뒤 바로 다음 날 보스포루스 해협 근처의 카디쿄이로 향했다. 


6월 튀르키예 태양은 매서웠다. 하는 수 없이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구글맵에 시선을 고정하며 걸어야 했다. 고등어 케밥집의 이름 또한 읽기 쉽지 않았기에 짝꿍에게 그 이름을 어렵사리 불러주었다. '쏘깍...레제...ㅌ?' 아직 이름을 다 읽어주지도 않았는데 짝꿍이 '어! 여기 있다!' 라며 한 가게 앞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이상하다, 아직 구글맵 상으로는 조금 더 걸어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간판에는 조금 전 내가 읽었던 '쏘깍 레제..ㅌ' 비슷한 이름이 적혀있었다. 결정적으로 땀을 흘리며 고등어를 열심히 굽는 사람들이 보였기에 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보통 해외의 백종원 맛집에 가면 한국인들이 꼭 한 팀은 있기 마련이라 입장 전 약간의 긴장(?)을 하는 편이다. 그런데 고등어 케밥집에는 한국인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의아했지만 좌석이 별로 없는 것 같아 일단 자리에 앉았다. 고등어 케밥 두 개와 시원한 제로 콜라를 시킨 후 그제야 가게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유튜브 영상 속 봤던 가게 구조를 떠올리며 '저 자리가 백종원 선생님이 앉았던 자린가 보다~' 유튜브 이야기를 했다.


찌는 듯한 날씨였지만 가게에 에어컨은 없었고 심지어 바로 옆에서 고등어를 굽고 있었기에 땀이 주르륵 흘렀다. 이 더운 날 뜨거운 고등어 케밥을 먹으러 오다니...라는 약간의 후회도 잠시, 고등어 케밥을 한입 먹자마자 우리는 '와! 너무 맛있다! 감탄사를 연신 내뱉었다. 고등어 케밥은 맥도날드 스낵랩 속에 고등어가 통째로 들어있는 비주얼이었다. 고등어는 통통하고 고소했으며 거기다 랩을 바삭하게 구운 뒤 그 위에 매운 파프리카 가루와 각종 향신료를 뿌려 매콤한 맛까지 있었다.


우리는 더위도 잊은 채 감탄에 감탄을 하며 고등어 케밥을 끝까지 먹었다. 역시, 백종원 선생님이야! 너무 맛있잖아! 우리는 백종원 선생님의 유튜브를 보기 잘했다며, 너무 맛있었다며, 또 오자며, 여기가 이스탄불 원픽이라며, 입이 닳도록 칭찬을 한 뒤 만족스럽게 배를 두드리며 가게를 나섰다.




가게를 나서자 한국인 커플 한 명이 가게 앞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역시! 이런 맛집에 한국인이 오지 않을 리 없지!라는 생각을 하는 찰나, 그 커플은 우리를 지나쳐 가던 길을 재촉했다. '고등어 케밥집 찾아온 것 아니신가? 여기라고 알려드려야 하나?' 오지랖과 낯가림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그들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았다. 그런데 웬걸... 한국인 커플은 몇 걸음을 걷더니 한 가게 앞 기나긴 줄에 동참했다. 그 집도 고등어 케밥을 팔고 있었다. 이름도 쏘깍... 레제ㅌ...?... 


알고 보니 한국인 커플이 줄을 선 고등어 케밥집이 진짜 백종원 선생님이 다녀가신 맛집이었다. 조금 전 고등어 케밥 먹으며 백종원 선생님 칭찬을 입이 닳도록 했는데 알고 보니 백종원 선생님은 그 집을 다녀가신 적도 없었다. 우리는 백종원 선생님이 다녀가신 고등어 케밥집의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며 실소를 터뜨렸다. 짝꿍이 말했다.


이거야말로 원효대사 해골 고등어 케밥 아니야?


그 이후 우리는 아쉬운 마음에 백종원 선생님 추천 고등어 케밥집과 원효대사 해골 고등어 케밥집을 한 번씩 더 방문했다. 한 식당에 여러 번 방문할 수 있는 것은 한달살기의 크나큰 장점이다. 그 결과는? (다행히도) 원효대사 해골 고등어 케밥 완벽 승! 


백종원 선생님도 실수로 대패 삼겹살이라는 걸작을 만들어 내셨듯, 우리도 구글맵을 제대로 보지 못한 실수로 백종원 선생님이 드신 고등어 케밥보다 훨씬 맛집을 찾아냈다. 역시 여행은 우연과 실수, 좌충우돌 한 스푼이 추가돼야 제맛 아닌가 싶다.



"고등어 한 마리가 통째로 들어간 고등어 케밥이에유"

백종원 선생님 말투까지 따라 하며 고등어 케밥을 먹던 짝꿍...ㅎ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