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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아 Apr 08. 2024

대기업 남편, 개발자 아내 번아웃 오다

출근길 쓰러질 뻔한 흔한 직장인 이야기

2023년 5월 15일 월요일 일기 

출근길에 본 것 - 오빠의 충혈된 눈, 웃음기 없는 얼굴, 피곤한 표정, 수면 부족, 붐비는 지하철, 즐겁지 않은 출근길, 행복하지 않음




전세 사기와 누수 문제로 고군분투하던 그때, 우리의 회사생활 또한 순탄치만은 않았다.


짝꿍은 한 중소기업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지방대를 졸업하고 겨우 입사한 곳이기에 회사에 대한 큰 욕심은 없었다. 그저 열심히 일했다. 그러다 '너는 이런 곳에 있을 애가 아니야'라는 회사 실장님의 말을 계기로 더 좋은 회사에 가겠노라 마음먹었다. 더 좋은 회사에 대한, 커리어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7년간의 고군분투 끝에 유망한 AI 스타트업을 거쳐 대기업 이직에 성공했다.


그러나 ‘대기업'이라는 타이틀이 주는 행복은 그다지 오래가지 않았다. ‘더 좋은 회사’를 가겠다는 목표를 이루자 방황하기 시작했다. 물론 더 좋은 회사는 세상에 수두룩했지만 더 이상은 무리일지도 모른다는, 능력의 한계를 직감했다. 급격한 근무 환경의 변화와 은근한 사내 정치, 스타트업에서 온 경력직에 대한 텃세도 무시할 수 없었다.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온 결과가 고작 이것인가, 허탈함을 느꼈다. 이는 곧 번아웃으로 이어졌다.




그즈음, 나는 갑자기 백수가 됐다. 회사 대표님이 감옥에 들어가시며(?) 권고사직 통보를 받은 것이다. 덕분에 연말 휴가는 물거품이 되었고 밤낮 이직 준비에 매진해야 했다. 


다행히 제법 많은 회사에 합격했고 그중 원하는 회사를 골라 이직할 수 있었다. 그곳은 지금 돌이켜봐도 참 좋은 '회사'였다. 회사에는 일반인에게도 오픈된 사내 카페가 있어 언제든 무료 음료를 마시며 카페에서 일할 수 있었고 냉장고에는 간식이 가득해 배고플 일이 없었다. 출근 시간은 자유로웠고 재택도 가능했다. 일주일에 한 번 마사지사가 방문해 뭉친 근육을 풀어주었으며 가장 중요한 사항인 월급도 두둑했다. 내가 다해줄게, 넌 일만 잘하면 돼,라고 말하는 곳이었다.


동료들은 소위 말하는 ‘일잘러’들이었다. 동료들과 발을 맞추고 싶은 마음에 누구보다 일찍 출근해 업무 전 공부를 했다. 퇴근 후에도 밀린 업무와 공부에 매진했다. 직무는 같았지만 생소한 분야의 서비스를 다뤄야 했기에 쉽지 않았다. 일이 버거울 때면 스스로의 능력 부족을 탓하며 채찍질했다. 매일같이 악몽을 꿨다. '이렇게 좋은 회사인데… 나만 잘하면 되는데…' 자존감은 점점 땅에 떨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지하철에서 호흡곤란이 왔다. 애써 무시해 온 스트레스가 임계치에 도달한 것이다. 회사까지 두 정거장 남았을즘 갑작스레 머리가 핑 돌며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억지로 호흡을 해봤지만 가슴이 답답했고 헛구역질이나 눈물이 고였다. 당장이라도 정신을 잃고 쓰러질 것 같았다. 공공장소에서 쓰러져 본 적이 없었기에(누가 있겠냐마는...) 어떻게라도 정신줄을 붙잡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옆에 서계시던 분이 괜찮냐고 물었다. 나는 대답조차 하기 어려워 괜찮다는 손짓을 했다. 그러고는 다리에 힘이 풀려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다음 역에 급하게 내려 아무 의자에나 앉았다. 눈물을 글썽거리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러고는... 걸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나는 당연하다는 듯 회사로 발길을 옮겼다. 미련하게 난 그날도 늦게까지 일을 했다.


몸은 내게 휴식이 필요하다는 신호를 보냈지만 나는 그 외침을 들어줄 준비가 돼있지 않았다. 머릿속엔 온통 일을 잘 해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내 인생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회사와 일이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많은 분들이 스트레스로 인한 지하철 호흡곤란을 겪고 있는 듯하다. 두 손 모아 세상 모든 근로자의 건강을 기원한다…)




그로부터 한 달 뒤, 짝꿍과 함께 출근길에 오른 날이 있었다. 출근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2호선 지하철에서 우리는 서로를 향해 뭉개진 채 서있었다. 키가 작은 나는 사람들 속에 파묻히지 않기 위해 고개를 최대한 위로 들어 올렸다. 그러자 짝꿍의 얼굴이 보였다. 그날 회사로 걸어가는 길에 이런 일기를 썼다.


지하철에서 본 것 - 오빠의 충혈된 눈, 웃음기 없는 얼굴, 피곤한 표정, 수면 부족, 붐비는 지하철, 즐겁지 않은 출근길, 행복하지 않음


그렇다, 우리는 행복하지 않았다.


당시 우리는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던 것 같다. 코로나 시국에 올린 결혼식을 시작으로 전세 사기, 천장 누수, 갑작스러운 권고사직, 회사 번아웃 그리고 아직은 털어놓기 어려운 아빠의 장례식까지… 1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너무나도 많은 일들이 우리의 삶을 덮쳐왔다.


그럼에도 '그동안 쌓아온 커리어는? 부모님은? 돈은? 집은? 아이는? 나이는? 미래는?...' 끝도 없이 밀려드는 불안감에 우리는 '그 선택'을 미루고 미뤘다. 그냥 이대로 흘러가듯 살다 보면 언젠가 나아지겠지,라며 내 몸과 마음을 방치했다.


하지만 2호선 지하철 사람들 틈에 끼어 충혈된 눈으로 서 있던 짝꿍을 보고 확신이 들었다. 이런 삶은 아닌 것 같다고. 더 나은 삶이 분명 있을 것 같다고. 짝꿍에게 일기의 내용과 함께 1년간 우리에게 시간을 주면 어떻겠냐는 카톡을 보냈다. 짝꿍은 기다렸다는 듯 동의했다.


바로 그날, 우리는 회사에 퇴사를 통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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