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만 행복할 순 없잖아요?
2023년 5월 26일 금요일 일기
나를 전적으로 믿어줄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까… 그래, 나는 분명 잘살아낼 거다!
퇴사를 통보하기 하루전날로 돌아가보자. 그날은 아주 평범한 어느 일요일 오후였다.
주말이면 집 근처 단골 카페에서 밀린 업무나 공부를 하곤 했다. 그날도 어김없이 카페로 향하는 중이었다. 그러다 문득 평소 걷지 않던 길로 걸어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번 걷던 길에서 벗어나 새로운 골목 안쪽으로 들어서자 야외 테라스가 조그맣게 딸린 카페 하나가 보였다. 그 카페는 마치 오래전부터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만 같았다. 우리는 그 카페로 발길을 옮겼다.
나의 몇 안 되는 취미 중 하나는 책을 읽는 것이다. 그러나 이직 준비, 회사적응 등으로 책을 읽을 마음의 여유를 잃은 지 오래였다. 종종 퇴근길에 서점에 들러 책을 고르곤 했지만 선뜻 구매하긴 어려웠다. 일할 시간도 부족한데 책 읽을 시간이 어딨어, 라며 스스로에게 숨 쉴 틈을 주지 않았다. 불안해서 그랬다. 그런데 그날은 새로운 공간의 힘이 작용했던 것인지, 문득 나를 위해 시간을 내고 싶었다. 그날은 왠지 그래도 될 것만 같았다.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일기를 끄적이고 책을 읽었다. 정말 오랜만의 여유였다.
그래서인지 그날의 따스한 햇살과 미풍을 잊지 못한다. 마음속에 곪아있던 생각들을 일기장에 털어놓고 여유롭게 책을 읽는 그 시간이 얼마나 행복하던지. 카페 주인분은 친절했고 주문한 망고 셰이크와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완벽했다. 행복이 이곳에 있는 듯했다. 평생 책만 읽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 좋아하는 일은 꼭 일하고 남은 시간에 해야만 하는 걸까? 왜 행복은 주말에만 누릴 수 있는 걸까? 여러 질문들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곳에서 짝꿍은 글을 썼다. 회사 직무상 IT, 테크 관련 이슈에 남들보다 조금 더 관심이 많았던 짝꿍은 알게 된 지식을 정리해 여러 플랫폼에 올렸다. 주로 주말에 글을 쓸 수 있었지만 점점 글 쓰는 것이 재밌었는지 종종 회사 점심시간을 반납하고 글을 쓰기도 했다. 그렇게 쓴 글로 첫 수익, 13만 원을 벌었다. 짝꿍은 글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앞으로도 글을 쓰며 돈을 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카페에서 글감을 찾던 짝꿍의 표정이 밝아보였다.
나는 책을 읽고 짝꿍은 글을 썼다. 우연히 발견한 카페의 야외 테라스에서 우리는 마냥 행복했다. 이 행복을 평일에도 누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바로 다음날 *짝꿍과 함께 출근하던 길, 짝꿍의 지친 표정을 발견했고 그날 우리는 회사에 퇴사를 통보했다. 주말에 누렸던 행복을 평일에도 누리고 싶었다.
*짝꿍과 함께 출근하던 그날의 이야기
퇴사 후 세계여행을 간다는 말에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그중 회사 선배와 부모님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가장 흔했던 반응은 '로또라도 됐어?'였다. 그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퇴사가 확정되고 회사 선배에게 조심스레 퇴사 소식을 전했다. 열심히 일을 알려주셨기에 죄송스러운 마음뿐이었다. 그러나 걱정과는 달리 세계 여행을 간다는 나의 말에 선배는 기뻐하며 응원해 주셨다. 자신도 그런 삶을 꿈꾼다고, 잘했다고, 내 결정을 존중해 주셨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일을 그만두고 떠난다고 하면 분명 부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들이 생길 거예요. 그런 사람들의 말은 듣지 마세요. 경험해보지도 않고 하는 말들일 뿐이에요. 리아 님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선배는 정말 멋진 사람이었다.
퇴사를 결정하며 가장 염려했던 부분은 단연코 부모님이었다. 정성스레 키워 결혼까지 시켜놓았더니 갑자기 동반 퇴사 후 세계여행을 간다고 하면 얼마나 걱정하실까. 양가 부모님 모두 홀로 우리를 키우시느라 얼마나 고생하셨는지 잘 알기에 백수 부부가 되는 것이 죄송스러웠다.
그럼에도 나는 철없는 딸이었다. 엄마에게 최대한 능청스럽게 퇴사와 세계 여행 계획을 알렸다. 30여 년 쌓인 데이터에 의해 엄마가 분명 화를 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동안 철없는 딸의 행동에 적응해 버리신 걸까. 엄마는 뜻밖에도 ‘그래? 젊었을 때 그런 시간 갖는 것도 좋지~’라며 오히려 나의 선택에 관심을 갖고 질문을 쏟아내셨다. 걱정되지 않냐는 물음에 '이제 다 커서 결혼까지 했는데 내가 뭘 어떡해~ 너네가 알아서 잘하겠지.'라고 대답하셨다. 감사했다.
짝꿍의 경우는 나보다 더 긴장했다. 평생을 ‘좋은 아들’의 표본으로 살았기에 그랬을 것이다. 짝꿍은 미루고 미루다 겨우 용기를 내 계획을 털어놓았다. 어머님의 답변은 짝꿍의 오랜 고민이 무색하리만큼 긍정적이었다. 어머님은 ‘내가 그렇게 살아보고 싶었는지도 몰라~ 넓은 세상 마음껏 경험하고 와.’ 라며 아들의 선택을 힘껏 응원해 주셨다.
두 분의 응원을 받고 나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우리가 행복하게 사는 것이 부모님의 행복을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분을 위해서라도 마음껏 행복해야지, 결심했다.
퇴사 두 달 후, 전세보증보험 승인 소식이 날아왔다. 예정된 심사일 보다 두 달이나 늦은 연락이었기에 그동안 정말 많이도 마음을 졸였다. 전세보증금이 통장에 고스란히 찍혔을 때는 모든 긴장이 풀리며 눈물이 핑 돌았다.
이제 정말 다 끝났구나, 해냈다, 수고했다, 행복할 일만 남았다, 평일에도 주말에도 언제나 행복하자, 힘들었던 모든 일은 잊고 1년간 하고 싶은 일만 하자, 되뇌었다.
드디어 1년간의 하고 싶은 일 찾기 여정의 첫 장소, 발리로 떠나는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