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진주
28박 29일, 경남 진주 한달살기를 마무리했습니다.
진주 한달살기는 8월 초입에 시작해 잊을 수 없는 더위와 함께한 달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엘리베이터 없는 오래된 주공아파트 꼭대기층을 숙소로 구한 저희는 도착 첫날부터 진주 한달살기를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천장 지열 때문인지 낡은 에어컨 때문인지 에어컨을 18도로 틀어도 몸에서 땀이 나더라고요. 매일같이 카페와 도서관으로 피서를 가며 무더운 한 달을 용케도 버텨냈습니다.
다행히도 강렬한 더위보다 더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어요. 그날은 진주 남강별밤피크닉이라는 진주시 야외 행사에 참여한 날이었습니다. 남강 앞 잔디밭에 예쁜 돗자리와 캠핑용 의자, 진주 꿀빵, 진주 맥주 등 진주의 음식을 먹으며 진주에서 활동 중인 가수들의 공연을 즐기는 행사였어요.
싱어송라이터 신주현 님과 경남 재즈 유니온이라는 그룹의 공연이 있었는데, 경남 재즈 유니온의 보컬 분께서 마지막 곡으로 '위대한 진주 작곡가의 곡'이라며 이봉조 작곡가의 '꽃밭에서'를 부르셨습니다. 노래를 열심히 따라 부르다 문득 '지연'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어요. 학연, 지연할 때 그 지연이요. 보통 지연이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듯 하나, 제가 진주에서 느낀 지연은 조금 다른 느낌이었어요.
진주는 지역에서 활동 중인 가수들에게 많은 기회를 주고 있더라고요. 남강별밤피크닉뿐만 아니라 진주성에서 진행하는 문화유산야행 프로그램에서도 진주 싱어송라이터의 공연을 볼 수 있었거든요. 진주시 프로그램에 참여한 진주의 가수가 진주 작곡가의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정말이지 인상적이었습니다.
진주에는 교보문고나 영풍문고 대신 '진주문고'가 있어요. 보통 서점의 중심부에는 베스트셀러가 진열되어 있기 마련인데 진주문고에는 '진주 작가의 책'이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진주 시립 도서관의 열람실 입구에도 역시나 '진주 작가의 책'이 진열되어 있었고요. 지역 작가의 책을 적극적으로 알리려는 모습이 참 보기 좋더라고요. 이런 게 바로 긍정적인 지연 아닐까 싶었어요.
서울 사람들끼리는 '어, 너 서울사람이야? 반가워!' 이런 대화는 좀처럼 하지 않잖아요. 생각해 보면 저도 서울살이보다 인천에서 산 날이 더 길었을 당시에는 인천 사람을 만나면 '어, 저도 인천에서 태어났어요!' 라며 반가워했던 기억이 있더라고요. 서울은 인구가 워낙 많아서인지 서울이라는 한 울타리 안에서 함께 산다는 그런 끈끈함은 느끼기 어려우니까요.
이봉조 작곡가의 꽃밭에서를 따라 부르는 그 순간만큼은 저도 진주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물론, 이런 것들을 지연이라고 불러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요.
학연, 지연, 혈연... 부정적으로만 들렸던 단어 중 진주의 '지연'이 부러워지는 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