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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 있는 얼굴, 흐르는 시간

기다리며

by 행복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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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icoh GR3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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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를 걷다 보면 문득 어떤 얼굴과 마주할 때가 있다. 벽에 그려진 커다란 얼굴. 눈빛은 선명하지만, 표정은 읽히지 않는다.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는 듯한 얼굴이다.


나는 벽화를 지나쳤다. 그리고 곧 누군가가 내 뒤를 이어 그 앞을 지나갔다. 모두들 무심하게 걸어가지만, 벽화는 가만히 그들을 지켜보고 있다. 영원히 그 자리에서.

바람이 불고, 어딘가에서 음악이 흘러나온다. 나는 이어폰을 끼고 있지만, 벽화 앞에서만큼은 음악이 멀게 느껴졌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바라본다. 누구의 얼굴일까.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하지만 벽화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 존재할 뿐이다.


기억은 대개 흐릿하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조금씩 사라지고, 가장 선명했던 순간들도 어느새 옅어진다. 하지만 벽화는 다르다. 비바람이 스쳐도, 사람들의 시선이 흘러가도,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다.

나는 다시 걸음을 뗀다. 사람들은 여전히 바쁘게 지나가고, 벽화는 변함없이 서 있다. 하지만 어쩌면 언젠가, 그 얼굴도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전에 한 번쯤, 더 바라봐 두기로 한다.

어쩌면, 이 순간도 언젠가는 벽화처럼 내 마음 어딘가에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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