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지만 남아
눈 내리는 날의 거리는 모든 것이 조금 더 느리게 흐른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속도로 걷지만, 눈송이은 일정한 박자로 떨어진다.
우산을 쓴 채 빠르게 걸어가는 사람, 모자를 눌러쓰고 무심하게 거리를 응시하는 사람, 마스크에 가려진 표정들. 그들은 모두 같은 길 위에 있지만, 서로 다른 풍경 속을 지나간다.
길가의 자동차들은 젖은 도로 위에 빛을 반사하고, 행인들의 발걸음은 물웅덩이를 피하며 바쁘게 움직인다. 검은 우산 아래 가려진 실루엣들은 마치 익명의 존재들처럼 흘러간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그들 역시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있다는 것을.
기억과 흐름
눈은 모든 것을 흐리게 만든다.
풍경도, 기억도, 감정도. 하지만 그 안에서도 어떤 순간들은 선명하게 남는다.
거리 한편에서 우산을 고쳐 잡는 손끝, 모자를 눌러쓴 채 걷던 뒷모습, 멀리서 들려오는 눈 내리는 소리.
그런 장면들은 마음 한편에 남아 우리의 기억 속에서 다시 흐를 것이다.
눈 내리는 날의 거리. 그곳을 걷는 우리는 모두 잠시 머물렀다가 사라지는 존재들이다.
그러나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이 우리의 마음속 어딘가에 오래도록 남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