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론의 그물 무늬와 정신과 치료
멜론에도 여러 가지 품종이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는 멜론은 흔히 머스크멜론이라고 불리는 네트멜론이다. 이 네트멜론이란 이름은 껍질의 그물 무늬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어렸을 땐 그 무늬가 표면에서 도드라져 있는 게 신기해서 손톱으로 긁어 보기도 했던 것 같다. 그 후로 별다른 호기심은 갖지 않았다. 차라리 멜론을 싸고 있는 포장용 망이 항상 재밌는 장난감이었다.
어느 날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다 멜론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어린이 학습 도서에는 나도 모르는 내용이 많아서 새롭게 배우는 게 많다. 온갖 들풀이나 곤충, 동물들에 대해서 세세하게 다룬 책들은 이따금 내가 모르는 걸 아이들이 알고 있는 상황을 만들어서 경쟁심을 일으킨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준다고 시작했다가 내 독서로 변질되는 상황이 생기곤 하는데 멜론이 그랬다. 그 무늬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설명한 페이지를 본 후로 내가 아이들에게 그 뒷부분을 제대로 읽어 주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멜론의 그물 무늬는 사실 상처다.
멜론은 열매가 자라 가면서 껍질이 단단해진다. 그러면서 동시에 멜론 안의 씨앗이 커져가고 과육도 차오른다. 그걸 딱딱한 껍질이 견디지 못하고 갈라지면 멜론은 그걸 진액을 내어서 메운다. 그 과정이 한두 번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멜론의 표면을 떠올려보면 손톱 만한 공간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촘촘하게 갈라지고 메워져 있다. 멜론의 무늬는 사실 치열한 생존 투쟁의 흔적이다.
열매의 껍질과 과육은 씨앗을 보호해서 널리 퍼뜨리는 데 목적이 있다. 멜론처럼 단단한 껍질은 씨앗이 완전히 성장할 때까지 보호하면서 양분을 공급한다. 씨앗이 완전히 성숙하지 못한 채 벌레나 동물들에게 먹히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씨앗은 성숙할수록 자신을 보호하는 껍질을 파괴한다. 그러면 멜론은 그 틈에 흐르는 진액으로 상처를 메우고 자기를 확장한다. 이 과정을 수개월간 거친다. 멜론은 필사적으로 자기 붕괴를 막고 그 상처를 고스란히 온몸에 남긴 것이다.
내가 그 후로 멜론을 먹지 못하게 된 것은 그 처절함에 대한 공감 때문이다. 누구나 그럴 테지만 아이들을 키우고 가족을 꾸려가며 나는 수백 번도 넘게 내 존재의 위협을 받았다. 나는 누구의 무언가 이기 전에 그저 '나'였다. 그러던 나에게 가족이 생겼고 그때부터 나는 누구의 무엇이 되었다. 흔한 조언에 따르면 나는 아이들을 키우는 동안 잠정적으로 나를 되찾을 수 없을 예정이었다. 혹은 그대로 영원히 잃는다고도 했다. 멜론의 무늬를 보고 있자니 그게 너무 두려웠다. 나는 지금부터 얼마나 더 찢어지고 얼마나 더 메우고 얼마나 더 빼곡한 상처를 갖게 될까. 과일 진열대의 멜론을 흘깃 쳐다보기만 해도 소름이 돋았다.
기시미 이치로는 남에게 강요할 수 없는 것 중에 하나로 사랑을 꼽았다. 하지만 나의 새 역할은 사랑과 헌신이 필요했다. 부모라고 해서 자연스럽게 사랑이 샘솟는 게 아니다. 사랑을 동원하는 게 가능한 경우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때도 있었다. 그때는 손을 놓아도 되는 게 아니다. 사랑이 없음에도 사랑이 필요한 행위는 해야 하는 것이다. 누군가의 울음을 해결해주지 않아도 되는 밤, 뒷자리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드라이브, 외식으로 매운 갈비찜을 먹는 것 같은 별 것도 아닌 것들도 그동안 '나'를 구성해온 소중한 부분이었음을 그제야 알게 됐다.
내 안에서 낳고 자라 가는 것들로 인해 내가 터져나가는 고통이 느껴질 때 나는 멜론처럼 진액을 뿜고 아무거나 집어 들고 그 틈을 막았다. 예뻐 보이게 가족사진을 찍고, 자기 계발을 해보겠다고 책을 사고, 그러면서도 틈만 나면 드러누웠다. 한 손으로 아이를 안아 재우며 다른 손으로는 게임을 했다. 감당할 수 없는 크기의 균열이 생길 땐 소리를 지르고 바닥에 물건을 집어던지며 더 이상 커지지 말라고, 나를 위협하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리고 스스로 토라져선 방에 처박혀 있었다.
나는 포털에서 '남자 산후 우울증', '아빠 육아 스트레스' 같은 걸 검색했고 딱히 그런 주제의 자료도 조언도 없다는 걸 알았다. 나름의 살 길을 찾아 나섰다. 내가 책임지고 감싸지 않아도 되는 가족 밖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건 결국 나를 정신과로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