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출산율 추락은 세계적인 추세와도 동떨어져 있습니다. 저출산 국가의 합계출산율이 대체로 1.0 내외인 반면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그보다도 훨씬 낮은 0.7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저출산 사회의 일반론적인 원인만으로는 충분히 설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먼저 한국의 특수성을 한번 살펴봅시다.
첫째, 한국은 급격한 경제 성장을 달성했습니다.
경제 구조의 변화를 사회문화가 따라잡지 못하는 문화지체 현상이 일어날 개연성이 큽니다.
둘째, 한국은 엄격한 가부장적 사회였습니다.
유교 문화 질서가 수 백년 간 이어져 온 결과로 전근대 한국은 대단히 가부장적인 사회였습니다.
즉 둘을 종합해보면, 한국은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하는 동안에 유교적 가부장제라는 문화 구조가 그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좀 다르게 이야기해보면, 한국의 노동 공급이 증가하고 고도화되는 동안에, 그러니까 여성의 경제활동참여율과 대학진학율이 올라가는 동안에 가부장적 사회 구조는 유지되어 온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결혼 시장과 연관지어 생각해봅시다. 가부장제의 특징인 성역할 분리는 일종의 묵시적 계약 관계에 유비해볼 수 있습니다. 가부장제적 가정 하에서 여성은 육아와 집안일을 할 의무를 지고, 남성은 사회에서 경제활동을 하여 생활비를 벌어올 의무가 있습니다.
반면 여성은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도 생활비를 사용할 권리를 갖고, 남성은 육아와 집안일을 하지 않을 권리를 갖게 됩니다. 문제는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이러한 가부장제적 계약 관계가 형해화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가부장제가 남녀 각각에게 부여한 의무의 관점에서 볼 때 그렇습니다.
여성은 점차 스스로 자신이 육아와 집안일을 오롯이 떠맡는 것이 부당함을 이해합니다. 남성도 마찬가지로 맞벌이 가정이 더이상 이상하지 않다고 여깁니다. 즉 여성과 남성이 서로에게 지는 의무가 사라져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여전히 가부장제에 익숙합니다. 그러니까 가부장제 하에서 누릴 수 있는 권리는 여전히 당연하다고 여깁니다. 여성은 여전히 남성의 경제력에 의존하는 것을 권리로 여기고 포기하지 않고, 남성은 여전히 여성의 가사 노동에 의존하는 것을 권리로 여기고 포기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의무나 책임은 쉽게 거두는 반면에 이익이나 권리는 쉽게 포기하려 하지 않는 인간의 기본적인 습성이 여기서도 발현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여성은 가사 노동을 전담할 생각이 없으면서 남성의 경제력에 의존하기 위해 상승혼을 꿈꿉니다. 마찬가지로 남성은 외벌이로 가정을 꾸릴 생각이 없으면서 여성의 가사 노동에 의존하기를 원합니다. 결혼 시장에서의 이런 미스매치가 결혼율을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진만큼 남성들이 여성에 비해 경제적으로 우월한 일이 적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이 여전히 상승혼을 원하기 때문에 여성들이 원하는 그런 남성의 공급이 그만큼 수월할 수 없고 여성들이 더이상 가사 노동과 육아를 전담할 생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남성들은 여전히 순종적이고 내조하는 여성을 원하기 때문에 남성들이 원하는 그런 여성의 공급이 그만큼 수월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페미니스트들이 흔히 주장하듯이 출산과 결혼이 여성만 희생하는 부조리한 제도라거나, 남초 사이트에서 유행하는 설거지론 등도 반은 맞는 것입니다. 반만 맞는 이유는 출산과 결혼이 여성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것은 맞지만, 그 대가로 여성들은 상승혼을 통해 남성의 경제력에 의존하는 수혜를 입고 있고, 남성들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여성이 자신의 재산만 보고 결혼한 것은 맞지만 그 대가로 남성들은 가사 노동에서 해방되는 수혜를 입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으려면 여성들은 상승혼을 하지 않고 맞벌이를 하면서도 일방적으로 가사 노동을 전담해야 하고, 남초 사이트의 설거지론이 설득력이 있으려면 남성들은 외벌이를 하면서도 아내가 가사 노동과 육아를 내팽겨쳐 자신이 분담해야 맞는 말이 됩니다.
최근 유행하는 남초 사이트의 국제결혼론도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습니다. 가령 베트남 여성과의 결혼은 한국 여성과의 결혼에 비해 한국 남성들에게 다음과 같은 이점이 있습니다.
첫째, 한국이라는 국적 때문에 남성들은 특별한 노력 없이도 베트남 여성에 비해 경제적 우위를 가질 수 있습니다.
둘째, 첫째의 이유 때문에 한국 남성들은 베트남 여성들에게 가사 노동과 육아를 전담할 것을 요구할 근거를 가질 수 있습니다.
결국 한국 남성들은 특별한 노력 없이 가부장제적 의무를 다하는 셈이 되고 수혜는 수혜대로 입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미스매치를 해결하는 방법은 원칙적으로
첫째, 한국 여성들이 상승혼을 포기하는 것
둘째, 한국 남성들이 육아와 가사를 분담할 각오를 하는 것
이 두 가지입니다. 즉 연봉이 3천만원에 자산이 5천만원인 여성은 수도권에 집이 있는 연봉 6천만원의 남성이 아니라 똑같이 연봉 3천만원에 자산이 5천만원인 남성과 결혼할 각오를 해야 하고, 남성은 아내가 밥을 차려주거나 아이 울음에 자다 깨어 뒤치닥거리를 해줄 거란 기대를 버려야 합니다.
이 둘은 문화적인 요인이기 때문에 바뀌는 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정부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첫째를 빠르게 달성하기 위해서는 여성들이 출산과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 문제를 겪지 않아야 하고, 남녀 간 임금 격차 문제가 없어야 합니다. 여성이 남성의 경제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는 요인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를 빠르게 달성하기 위해서는 남성들이 장기간 육아 휴직 등을 사용하는 것에 아무런 제약이 없어야 합니다. 또 노동 시간을 줄여서 퇴근 시간을 앞당겨 가사 노동을 분담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변칙적으로 단기간에 미스매치를 해결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바로 정부가 국제결혼을 장려하는 것입니다. 여성들의 상승혼 욕구를 채워줄 수는 없습니다. 여성들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강제로 저하시키면서 남성들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강제로 상향시켜야 하는데 그것은 해서도 안되고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남성들의 가부장제적 요구는 충족시킬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평범한 소득을 벌어들이는 남성이라도 해외의 개발도상국 여성의 입장에서는 한국 남성과 결혼하는 것이 충분히 이익일 수 있습니다. 정부는 국제결혼을 활성화하기 위해 국제 커플들에게 한국 정착을 유도하기 위한 다양한 경제적 유인을 제공하고 한국 남성과 외국인 여성 간의 정보 교류를 위한 정책을 집행하며 이민 제도를 개선해서 보다 외국인 여성이 한국에 정착하기 편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아니면 정말 극단적으로는 출산과 결혼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사생아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동거가 사회적으로 일반화되는 동시에 법적 지위가 개선된다면 굳이 결혼 시장의 미스매치를 해소하지 않고도 저출산을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그것이 오히려 더 어려워 보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한국의 저출산 문제를 문화지체 현상으로 파악하고 그에 따른 결혼 시장에서의 미스매치라고 생각한다면, 사실 장기적으로는 한국의 저출산 문제는 서서히 해소될 것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선진화된 경제 구조에 사람들의 생각이 적응해갈 것이기 때문에 여성들이 상승혼을 포기하고, 남성들이 여성의 내조를 포기하는 때는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때가 되면 너무 늦을 것입니다. 한국 사회가 저출산 상태에 너무 적응한 나머지 이력 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이제는 비혼이 일반적이고 결혼이 특이한 일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때가 오기 전에 정부는 파격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준비 없는 대규모 이민 수용은 인구학적 필연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