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익이 기본권이 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

실제적 조화의 원리와 사실상의 이익

by 삼중전공생


기본권의 보호영역과 보호법익


기본권의 보호영역(Schutzbereich)은 기본권에 의해 보호되는 행위가능성을 말합니다. 나에게 행동 A, B, C를 할 수 있는 선택의 여지가 있는데, 이 중 헌법상 A, B가 가치 있다고 여겨져 보호를 받는다면 이것이 기본권의 보호영역이 됩니다. 한편 이 중 B가 모종의 사유로 국가에 의해 헌법 규범을 위배하여 제한되어 침해된다면 이는 기본권의 보호영역에 대한 축소가 됩니다. 따라서 그 실현에 있어 기본권 주체의 행위를 필요로 하지 않는 기본권은 보호영역을 갖지 않습니다. 가령 평등권이 그러합니다.


기본권의 보호법익(Schutzgut; Schutzinteresse)은 기본권 규범에 의해 법적으로 보호되는 이익입니다. 이러한 이익은 법적 정형(pattern)의 형태를 갖고 있습니다. 법적 정형은 한 개인이 여하의 사유로 어떤 급부 혹은 피해의 회피를 기대할 수 있는 사실적이거나 규범적 지위에 있음으로써 향후 실체적 권리 행사의 출발점이 될 수 있는 잠정적 모습을 말합니다. 따라서 보호법익에 대한 침해란 이러한 법적 정형으로부터의 이탈을 야기한 국가 행위가 헌법적으로 정당화되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보호영역가 달리 보호법익을 갖고 있지 않은 기본권은 없습니다. 평등권의 보호법익은 법적용과 법내용에 있어 평등한 대우를 받는 법적 정형입니다. 그러한 법적 정형으로부터의 이탈, 즉 비교집단과의 차별이 확인되면 그러한 차별대우가 헌법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는 한 이는 기본권 침해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헌법재판소 등의 기관을 통해 권리의 구제를 청구할 수 있습니다.




보호법익과 사실상의 이익


보호법익과 달리 법적으로 보호받는 대상이 아닌 이익들은 사실상의 이익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사실상의 이익은 설령 국가의 작위 또는 부작위를 통해 상실하게 되더라도 법적으로 '부당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가령 항상 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하던 로스쿨 2학년 학생이 있다고 합시다. 이 학생은 줄곧 로스쿨 내신이 1등이었지만, 이번 기말고사에서 다른 학생들이 더 열심히 공부하는 바람에 내신 등수가 10등으로 밀려났다면 이것을 기본권 침해로 볼 수 있을까요? 즉 국가는 다른 나머지 학생들이 공부를 하지 못하도록 제지할 의무가 있었을까요?


비록 국가가 다른 학생들이 공부를 하지 못하도록 방해했다면 그 학생이 1등을 유지했을 것이므로 그 학생의 등수가 밀려난 것과 국가의 부작위가 인과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볼 여지는 있겠으나, 그 학생이 1등을 유지하던 이익은 보호법익이 아닌 사실상의 이익에 불과합니다. 이 이익은 그 학생을 포함한 다른 모든 학생의 기본권을 존중하면서도 일부 또는 전부가 상실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학생이 국가에 대해 '왜 자신이 로스쿨 내신 1등을 유지할 권리를 보장하지 않았느냐'고 따져 물어도 이것은 타당한 이의제기가 될 수 없습니다.


이에 더해 반사적 이익 또한 사실상의 이익의 한 종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출퇴근 경로가 겹쳐 운 좋게 친한 직장 동료의 차를 얻어 타 출퇴근을 하던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만일 어느 날 직장 동료의 자동차가 그 자신의 과실 없는 교통사고가 나서 한동안 이 사람이 제시간에 출근을 할 수 없는 일이 생겼다면, 이것은 기본권을 침해당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그렇게 볼 수 없습니다. 이 경우 직장 동료와 그 사람의 이익은 모두 축소되었지만, 이 중에 법적으로 보호받는 것은 그 직장 동료의 재산권이지 그 사람의 교통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같이 반사적 이익이 축소된 사람은 기본권 침해를 주장하여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할 수 있는 적격을 갖지 못합니다.




어떤 이익이 기본권의 보호법익이 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


살인에 대한 규제가 일반적 행동자유권의 침해일까요? 그렇게 보지 않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타인을 살인함으로써 얻는 쾌감은 사실상의 이익일 수는 있겠으나 일반적 행동자유권과 같이 기본권의 이름이란 방벽으로 법적 보호를 받는 법익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살인이 기본권의 보호법익이 아닌 까닭은 그것은 도덕적으로 옳지 않아서일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그러한 권리를 동등하게 갖는 것이 논리적으로 양립가능하지 않고 민주사회의 배경적 조건인 공정한 협동과 평화로운 공존을 명백하게 해치기 때문입니다.


가령 내가 타인을 살해한다는 것은 동시에 타인이 나를 살해할 권리를 침해함을 의미합니다. 살인 외에도 이 같은 예시는 많습니다. 내가 가게를 열어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가격을 내리는 것은 다른 인근 동종업계 가게 주인에게 손해를 끼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가게 영업을 통해 발생한 상업적 이익의 향유는 기본권이 될 수 없습니다. 나의 권리 행사가 필연적으로 타인의 권리 행사를 방해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익이 기본권의 보호법익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행위에 대한 권리를 모든 국민이 동등하게 보유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가능하고 또한 공정한 협동과 평화로운 공존에 필수적인 다른 중대한 권리를 침해함이 명백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어떤 이익이 기본권의 방벽으로 보호를 받기 위한 유일한 조건입니다. 동등한 권리 보유가 양립가능하면서 민주사회의 기본 원칙을 훼손하지도 않는 이익이 특별한 사정없이 기본권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면 이는 보호받지 않아야 할 까닭이 없는 이익을 기본권 제한 정당화 논증 없이 국가가 저버리는 꼴이기에 그렇습니다.




기본권의 유사충돌


기본권의 유사충돌은 외견상 기본권 대 기본권의 충돌로 보이지만, 실상 따져보면 기본권과 사실상의 이익의 충돌이고 따라서 기본권 보호의 취지에서 결론을 내려야 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살인을 할 자유가 피해자의 생명권과 가해자의 일반적 행동자유권의 충돌이 아닌 것이 강학상 주로 드는 예시에 해당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기본권의 유사충돌은 거의 발생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어떤 이익의 충돌이 기본권의 유사충돌인지 아닌지를 가려내는 것은 많은 사회적 논란거리가 되기도 합니다. 가령 자신의 정치적 신념이나 선호하는 문화에 불리한 방향으로 사회가 변하지 않도록 할 권리 자신이 싫어하는 타인의 표현을 치울 권리가 인격권 등에 해당한다는 주장이 대표적입니다. 이전 게시글에서도 비슷한 취지의 내용을 살핀 적이 있듯이 개신교 교인들이 공공장소에서의 퀴어퍼레이드 축제 허용이 자신들의 인격권과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주장이 이런 사례에 해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예시는 한참 더 언급할 수 있습니다. 페미니스트들의 남혐 표현으로 알려진 '집게손가락'이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라도, 페미니스트들이 이러한 손동작을 하지 못하게 할 기본권이 남성들에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기본권 침해의 결과는 단지 '기분 나쁨' 수준을 넘어서 해당인의 삶의 가치와 자유에 중대하고 지속적인 훼손을 유발해야 합니다. 이 같은 경우는 페미니스트들의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과 남성들의 '별안간 기분 나쁘지 않을' 사실상의 이익이 충돌한 사례에 해당하며, 후자를 인격권 등으로 표현하고 있는 일부 남성들은 실상 법적 보호를 제공할 논리적 근거가 없는 사실상의 이익을 기본권으로 그럴듯하게 포장한 것에 불과합니다.


진보와 보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다른 방면의 예시를 들자면 음란물에 대한 법적 규제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 페미니스트들은 음란물의 제작과 유통이 여성의 인격권과 평등권 따위를 심대하게 침해한다고 주장하지만, 성인 간의 상호 동의 하에 상업적으로 제작된 음란물이 미성년자의 접근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유통된다면 이 같은 경우에는 여성들의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이 성적 대상화되는 콘텐츠가 자신들이 싫어하는 방향으로 사회를 이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것은 사실상의 이익일 뿐입니다. 음란물 수요층의 이익과 논리적으로 동등하게 양립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경우 기본권의 보호법익이 되는 것은 AV 배우들의 직업 선택의 자유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유사충돌의 또 다른 예시는 기본권 충돌의 국면에서 자신의 기본권 침해가 충돌하는 기본권을 보유한 사람 이외의 제3자에 의해 지극히 사변적인 인과관계를 거쳐 이뤄진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가령 고등학교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모텔이 있다고 할 때, 학부모들은 이 모텔이 학생들의 일탈을 유발하고 '나쁜 생각'을 갖도록 만든다고 주장하며 모텔의 영업 중지를 요구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받아들일 수 있는 주장이 아닙니다. 모텔의 존재 자체가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부모의 양육권과 학생의 교육권을 침해하는지 지극히 불분명하기 때문입니다. 학부모들은 '있을지도 모르는' 악영향을 방지하기 위해 모텔을 폐쇄해야 한다고 주장하겠지만, 그런 식으로 추상적인 인과관계를 경유하는 기본권 침해 주장은 논리적 모순을 낳습니다. 이런 논리를 일반화한다면 사실상 모든 인간 행위에 대한 억제 요구가 갖가지 이유로 정당화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만에 하나 학생들에게 모텔의 존재로 인해 불건전한 영향이 끼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대체로 모텔 이용자의 문제이지 모텔 사장의 문제는 아닐 수 있습니다. 모텔 사장의 영업 방식이 건전한 사회 상식에 비춰볼 때 문제 삼기 어렵다면, 만에 하나 모텔 사장이 통제할 수 없는 일부 모텔 이용객들의 행패로 인해 학생들의 교육권이 침해되는 게 사실이라 할지라도 모텔 사장의 재산권과 영업의 자유를 제한해서는 옳지 않을 것입니다.




나가며


많은 기출 로스쿨 면접 제시문이 기본권 제한이나 기본권 충돌을 주요 쟁점으로 해석하기를 의도한 듯이 보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기본권 충돌 주제를 독립적인 게시물로 구성했습니다. 제가 언급한 사례들은 전적으로 저의 견해이지 헌법학자나 헌법재판소의 판례는 이와 다른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런 디테일이 아니라, 이러한 포맷을 가지고 제시문을 해석하고 답변을 구상할 때 최소한 실수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령 많은 로스쿨 준비생들이 면접에서 비교적 하찮은 이익 혹은 공정하고 평화로운 협동 체계 하에서 동등하게 양립불가능한 이익을 기본권으로 해석해 잘못된 기본권 충돌 쟁점을 도출하기도 합니다. 이 게시글은 그러한 실수를 하기 전에 자신의 답변을 한 번 더 검토할 수 있는 배경지식을 제공하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이렇게까지 말한다면 제가 뭐라도 되는 사람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고, 다만 법철학과 헌법을 공부한 이력이 있어 문외한에 비해 상대적으로 낫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이 게시물은 그 같은 문외한을 타깃으로 하기에 제가 주제넘은 지적 월권행위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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