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수길이 은행나무길로 불리던 시절

홍대앞, 가로수길, 청담동 - 힙했던 그 거리

by 이요

서울에 올라와서 2년 만에 기자가 되었다. 첫 1년은 복사기 영업하느라 한강 서남쪽(영등포 일대, 관악구 및 강서구 일대)을 구두굽이 닳도록 다녔고, 그 다음 1년은 은평구 구산동 버스 종점을 벗어나지 못했다. 일하지 않는 주말에 가끔 명동 롯데백화점이나 인사동에 놀러가기도 했지만, 힙한 패피들이 찾는다는 핫스팟 구경은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다.

기자, 그것도 연예지 기자가 되어 선배들을 따라 다니다 보니 당시 막 뜨고 있던 홍대 앞, 지금은 가로수길이라 불리는 신사동 은행나무길 등에 자주 드나들게 되었다.

79years.jpg 과거 가로수길의 풍경

신사동 은행나무길은 출력실과 사진 스튜디오 등이 모여 있어 광고회사나 잡지사에 다니는 사람들은 수시로 드나들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당시에는 퀵서비스가 없어서, 출력실에서 교정지를 뽑으면 그걸 직접 받으러 가야 했다. 그렇게 드나들다 보니 은행잎이 노랗게 물드는 가을에 이 길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게 되었다. 더불어 얼마나 은행 냄새가 진동을 하는 지도. ㅋㅋ 스튜디오에 촬영하러 왔던 연예인들과 가까운 근처 카페에서 인터뷰도 했다. 굳이 차를 타고 이동하는 번거로움 없이 촬영과 인터뷰를 끝낼 수 있어 은행나무길의 카페들을 자주 찾았다. 특히 이곳은 우리 회사와 가까워서 더 자주 갔었다.

6809747.1.jpg 홍대 앞 사튀로스

홍대 앞은 신사동과는 또다른 분위기에서 놀라웠다.

그때가 홍대 앞이 막 뜨기 시작할 무렵이었는데, 잡지사 일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홍대 앞이라면 당연히 홍익대학교 정문 앞을 말하는 줄 알았다. 친구가 “홍대앞이 홍대 정문 앞이 아닌 거 알아? 요즘 뜨는 홍대앞은 진짜 홍대앞이랑 다른 곳이래.” 할 때 “그게 뭐야?”했던 사람이 나다.

나중에 홍대앞의 유명한 카페 사튀로스에서 촬영을 하게 되었는데, 그곳이 지금의 주차장 거리, 홍대 상상마당 쪽에 있었다. 홍대 정문에서 10분은 걸어 내려와야 하는 곳이고, 그때서야 친구의 말이 진짜였구나 싶었다. 그 카페는 이국적인 분위기 덕분에 잡지 촬영장소로 인기가 많았고, 그래서 다른 카페들이 공짜로 커피를 내주며 촬영을 환영하던 것과 달리 자기네 카페에서 촬영하려면 연예인과 기자는 물론 스태프들도 전부 커피를 돈내고 마셔야 한다고 했다. 일종의 사용료인 셈이다. 그 카페는 2000년대까지 10년이 넘도록 하얗고 도도한 외관을 뽐내며 건재했으나, 결국 2000년대 말에 노래방으로 바뀌었다.

그 카페를 필두로 주변의 정원있는 큰 단독주택들이 멋진 카페나 레스토랑으로 개조되어 영업했다. 그곳이 바로 힙하다는 홍대앞이었다. 세월이 흘러 무려 20년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그때 봤던 큰 단독주택들은 가게의 종류만 달라졌지 건물의 기본 골격을 유지하며 장사를 하고 있다.

gosen.jpg 아직도 건재한 청담동 고센


가로수길과 홍대앞은 그래도 지금까지 꾸준히 드나들며 이후의 세월을 지켜본 곳이지만, 청담동은 달랐다. 당시엔 연예인들 만나느라 자주 드나들었지만, 내가 연예계를 떠난 후에는 가볼 일 없는 동네가 되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 청담동은 대중교통이 불편한 곳이었다. 압구정과 붙어있으면서도 3호선 지하철이 지나가지 않아 버스로 갈아타거나 한참 걸어 들어가야만 했다. 연예인들은 자동차를 타고 오면 되니까 별 문제 되지 않았다.

덕분에 10대 팬들이나 일반인들의 방해 없이 연예인들이 카페에서 마음 놓고 커피를 마시거나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청담동의 장점이었다. 고센, 하루에 등 유명한 카페들이 많았는데, 외국처럼 테라스가 있고, 하얀 파라솔(지금은 흔해졌지만 당시만 해도 테라스 있는 카페 자체가 희귀하던 시절이었다) 아래 테이블 자리가 있었다. 그런 카페에선 모델지망생들을 알바로 뽑았고, 그렇게 알바를 하던 모델지망생들이 유력 PD나 매니저의 눈에 띄어 심심찮게 데뷔하기도 했다. 이를테면 정우성처럼.

또 카페와 단독주택이 마주보고 있는 길이 예뻐서 야외촬영을 하기에도 좋았다. 평일 오전에 스케줄을 잡으면 걸어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고, 길은 오르막 내리막 편차가 있어 사진에 입체적으로 잘 나오고, 울타리너머 나무와 꽃이 예뻐서 스토리가 있는 화보를 찍기에 적격이었다. 지금의 M-net, 당시의 KMTV 등 음악 케이블방송국이 그쪽에 있어 가수들을 만나기도 좋았다.

사진기자들은 장비가 많아 대체로 자가용을 끌고 다녔고, 나는 파트너 사진기자의 차에 타서 가는 운 좋은 경우가 아니면 대개는 지하철에서 내려 수십 분을 걸어가며 땀을 삐질삐질 흘리곤 했다. 그러나 지금도 대중교통 사정이 그닥 좋다고 할 수 없는 청담동은 내가 연예계 일을 그만두고 나자 더 이상 갈 일 없는 동네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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