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넷 옥상의 추억

가수들의 생방 관람기

by 이요

공중파 방송국은 우리 아싸기자들을 뒷문으로 드나들게 했지만, 케이블 방송은 그렇지 않았다. 특히 KMTV, M-net 등의 음악전문 방송국은 제지도 없고, 얼마든지 연예인을 만날 수 있으며, 분위기도 좋았다.

인기가 많고 바쁜 가수들은 잡지사나 스튜디오까지 올 시간이 없다. 그럴 때는 우리가 찾아가야 한다. 그때 가장 만만하게 약속 잡을 수 있는 곳이 음악전문 방송국이었다.

내가 담당하던 유피(UP)는 4명의 멤버 중 나이 어린 중학생이 있어 큰 인기를 끌었다. 그들의 페이지를 잡아놨는데, 스케줄이 빡빡해서 도저히 화보 촬영할 시간이 없다고 했다.

나는 사진기자와 함께 배경지를 들고 엠넷 옥상에 올라갔다. 방송 녹화 당일은 아침부터 카메라 리허설, 무대 리허설, 생방송(혹은 녹화)이 이어지기 때문에 다른 가수들이 리허설을 할 때는 기다려야 했고, 그 시간을 이용해 다른 매체와 사진을 찍거나 인터뷰를 할 수 있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광고 촬영이나 다른 방송은 할 수 없지만 1~2시간이면 끝나면 지면 인터뷰 같은 건 가능했다.

촬영을 방송국 옥상에서 해도 되지만, 눈썰미 있는 관계자들은 여기가 어느 방송국 옥상인지조차 대번에 알기 때문에, 방송국 옥상에서 찍었다는 걸 뽀록내기 싫은 기자들은 그걸 숨기기 위해 여러 가지 꼼수를 썼다. 그 중 하나가 배경지를 직접 가져가는 것이다.

배경지란 스튜디오에서 사진 촬영할 때 뒤에 걸어놓는 종이를 말한다. 전지 보다 넓은 사이즈의 종이가 두루마리 휴지처럼 감겨있는데, 그걸 스탠드에 걸어서 당겨 내리면 뒷배경이 된다. 기본 하얀색부터 여러 가지 색지가 있고, 배경지의 색에 따라 사진 분위기가 달라진다.

IMG_20190831_100038.jpg 그날 엠넷 옥상에서 찍은 화보. 뒤의 파란 배경지가 우리가 들고 간 배경지다.

우리는 그 두루마리와 스탠드를 낑낑 들고 옥상에 올라가서 설치한 다음 사진을 찍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UP를 엠넷 옥상에서 만난 게 아니라 스튜디오에 불러서 인터뷰했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던 거다. 다행히 UP는 옥상 배경지 앞에서 여러 재밌는 포즈들을 취해주었고, 당시 신곡 <바다>에 맞춰 스노쿨링 장비나 수경 등을 끼고 재밌게 촬영했다. 잡지가 나왔을 때 그곳이 엠넷 옥상이라는 사실은 촬영한 우리 외에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우리 뿐 아니라 다른 잡지사의 기자들도 연예인이 시간이 없을 때는 종종 그렇게 방송국 옥상이나, 청담동 엠넷 본사 사이 골목길 등에서 촬영을 하고 인터뷰를 했다.




또 음악방송은 10대 팬들이 오빠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좋은 창구다. 지금도 여전히 음악프로그램의 녹화 때나 생방송에는 많은 팬들이 가서 자기 오빠들을 응원하곤 한다. 아무리 출입관리가 허술한 케이블 방송국이라 하더라도 학생들은 쉽사리 출입이 안됐다. 학생들은 공개방송이 있는 날 줄을 서서 기다려야만 입장할 수 있었고, 그럴 때 무시로 자유롭게 드나드는 기자들은 학생들의 눈에 최고로 부러운 사람들이었다. 가끔 그런 애들이 “나는 커서 꼭 연예기자 될거야” 같은 말을 하는 것도 들을 수 있었다. 그럴 땐 아싸기자라는 나의 처지를 잊고 어깨가 으쓱하기도 했다.

기자들은 본방송이 시작되기 전 리허설(연습무대)에서 주로 연예인들을 보지만, 가끔 신곡의 첫무대나 새 앨범을 발표하는 무대 같은 경우는 생방송을 현장에서 지켜봐주기도 한다. 생방 무대와 객석을 보고 분위기 등을 코멘트 해주는 것도 기자들의 큰 역할이다. 신곡 무대의 반응이 어땠는지, 옷이나 춤은 괜찮았는지 등등을 체크했다가 무대가 끝나고 매니저들에게 연락해 알려주곤 한다. 매니저들은 그런 말들을 듣고 취합해서 패션 컨셉이나 안무 등을 변경하기도 하고, 때로는 타이틀곡을 바꾸기도 한다.

생방송 무대의 관객석 앞자리는 그런 기자들을 위해 비워놓는다. 학생팬들은 그래서 기자들을 부러워한다. 자기들은 땡볕에 온종일 기다려도 두 번째 세 번째 줄부터 앉아야 되는데, 기자들은 기다리지 않아도 널널하게 앞자리에 앉아 오빠들의 노래를 들을 수 있으니까.

언젠가 KMTV 순위프로 공개방송을 할 때 첫째줄에 앉아서 구경하다가 뒷자리의 팬들이 “언니들, 이거 좀 들고 있어주세요.”해서 어느 아이돌그룹의 플래카드를 들고 있었던 적도 있다.

옆으로 긴 플래카드를 준비해오긴 했는데, 중간에서 높이 들고 있으면 뒷자리 관객들의 시야를 막고, 그렇다고 낮게 들고 있으면 보이질 않으니, 제일 앞에 앉아있던 우리에게 들고 있어 달라고 한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팬인양 아이들의 플래카드도 들어주며 생방송 무대를 지켜봤다.

rock of age.jpg 뮤지컬 '락 오브 에이지'에서의 신성우

그렇게 본 생방무대 중 가장 인상깊었던 건 지니의 무대였다. ‘지니’는 록커 신성우와 공일오비 장호일이 함께 만든 프로젝트성 밴드였는데 (찾아보니 이동규라는 멤버도 있었다고 하는데...기억나지 않는다) ‘뭐야 이건’이라는 노래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었다. 두 사람 다 별로 좋아하는 가수는 아니었는데, 생방 무대에서 보니 신성우, 왜 일케 멋있는 거임? 깜짝 놀랐다. 장호일도 체격으로나 뭐로나 빠지는 사람은 아니었는데 신성우 옆에 있으니 오징어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마치 영화 <아저씨>의 원빈을 보는 진짜 아저씨 같은 느낌이랄까?

라이브 현장에서의 카리스마와 가창력, 매력이 신성우는 역대급이었다. 아..다들 이래서 신성우 신성우 하는구나 싶었다.

나중에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 신성우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뮤지컬을 본 적이 있는데, 나이 먹어 능글능글한 배역으로 나온 그가 어찌나 찰떡같이 어울리는지!! 그때나 지금이나 무대를 휘어잡는 카리스마는 여전했고, 전과 같은 싱싱한 매력은 없었지만 나이에 걸맞은 관록있는 무대여서 나이란 어떤 매력 앞에서는 장애가 아니라 액세서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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