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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 Nov 14. 2019

에필로그

응답을 끝내며

드디어 이 연재의 마지막 글을 쓸 시간이다.

백댄서 책이 출간되지 못했고, 그 회사를 나온 후 나는 다시 연예계로 돌아가지 않았다. 비디오 잡지에서 일한 적도 있었고, 광고일도 했지만 연예인을 직접 볼 일은 없었다. 그렇게 나의 한 시절은 버블시절의 끝 무렵 시작되어 IMF가 시작되면서 끝났다.


연재글 중 가장 많은 댓글(이라기보단 악플)이 달린 글은 베이비복스 필화 사건에 관한 글이었는데, 그 글에 “이제와서 이렇게 쓰시는 이유는 베이비복스를 까기 위함 인가요? 그냥 같은 일에 종사하시는 분들끼리 사적으로 할 법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네요.”하는 댓글이 달렸다. 베이비복스를 까려고 그런 글을 쓴 건 당연히 아니었지만, 그 뒤에 이어지는 질문은 폐부를 찔렀다. 이 연재를 이어가면서 나도 자주 생각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사적으로 할 법한 이야기, 일기장에나 끄적거릴 이야기를 나는 왜 이렇게 공개된 지면에서 하고 있을까? 왜 이런 글을 30회나 썼을까?


1990년대의 가요 프로그램들이 유투브에서 인기를 얻으며 ‘온라인 탑골공원’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 전부터 나는 이 글을 썼다. 그러니 시류에 편승했다고는 할 수는 없지만 또 그 영향이 전혀 없었다고는 못하겠다. 아마 여러 가지 것들이 복합적인 작용을 했을 것이다. 

1990년대 연예계가 지금의 연예계에서는 꿈같았던 한 시절로 추앙받는 분위기를 보면서 나는 좀 어리둥절해졌다. “어? 그때가 그렇게 좋은 시절이었어? 나 그때 연예잡지 기자였는데, 별로 그렇지 않았는데?” 발단은 그랬다. 내 기억에는 그때도 립싱크니 노예계약이니 문제들이 아주 많았고, 우리 윗세대들은 댄스가요를 음악 축에 끼워주지도 않았다. 그랬던 K-POP이 어느새 세계를 제패하고 있으며, 그게 90년대부터 비롯된 일이라 하니, 그럼 나도 그때 이야기를 한번 해볼까? 하게 된 것이다. 때마침 유재석의 ‘슈가맨’ 같은 프로그램이 소소하게 인기를 끌었고, 무한도전에서도 ‘토토가’를 하면서 90년대의 아이돌들이 급 재결성되거나 그때의 소녀팬들이 아줌마가 되어 대거 과거를 인증하기 시작했다.

IMF 직전의 버블과 그림자가 교차하던 그 시절에서 20년쯤 떨어져서 추억해보니, 그때의 혹독함은 다 지워지고, 좋았던 기억만 남게 되었다. 그런데 조금만 더 지나면 좋았던 기억마저도 희미하게 없어지다 결국 사라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기억이 더 지워지기 전에 기록해놓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 맞다, 나이 들면 사람은 추억을 파먹고 살게 되어 있다.


그렇게 호기롭게 시작을 했으나, 막상 쓰다 보니 내 기억이 너무 많이 바래버렸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연재를 시작하기 1년전만 하더라도 나는 1990년대 후반에 썼던 취재노트를 고스란히 가지고 있었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곳저곳으로 이사를 다니면서도 버리지 않고 싸매고 다녔다. 심지어 그 취재노트는 우리 회사에서 만든 서태지 스프링 노트라 내지 한 장 한 장이 스케치북만큼 두껍고 무거웠는데도 몇권이나 챙겨서 끌어안고 다녔다. 그러다 작년 봄 이사할 때 이게 다 무슨 청승인가 싶어서 과감하게 버렸다. 


1년 뒤에 내가 이런 연재글을 쓰고 있을 줄 알았다면 절대 그런 짓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이란 어찌 이리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지... 글 쓰는 내내 그 취재노트가 얼마나 눈에 아른거렸는지 모른다. 인터뷰할 때 그들이 했던 말들, 전화번호 같은 것이 적혀 있었다. 거기 적힌 한 단어로 떠오를 기억은 또 얼마나 많았겠는가? 그러나 내 손엔 아무것도 없다.

아, 내가 만든 잡지의, 내가 취재한 페이지는 오려서 파일로 철해놓긴 했다. 그런데 연재하는 내내 그 취재기사를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다. 그건 마치 30대가 되어 사춘기 시절 일기장을 보는 것과 비슷하고, 대 배우가 신인 때 자기 연기를 보는 것과도 비슷하다. 아주 큰 용기가 없다면 초보기자 시절의 내 글을 다시 읽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결국 나는 나의 기억 한도 내에서만 글을 썼다. 이제는 생각나지 않는 것들을 과감히 떠나보내고, 20여 년 전의 일인데도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것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엮어나갔다. 기억이란 희한한 것이라 내 담당 연예인이 90년대 이후 더 이상 활동하지 않으면 나의 기억도 휘발되었고, 꾸준히 활동해서 인기 연예인이 되었다면 그때 잠깐 만났던 기억도 각인되어 더 부풀리고 멋지게 장식된다. 이 글들은 그렇게 쓰인 글이다.


이제 이 글들을 브런치북으로 엮어 내놓는다.

내가 왜 이런 글을 썼는지 여전히도 명확한 대답을 내놓지는 못하겠지만, 누군가 읽는 사람이 그 시절의 추억을 돌이켜보며 재미를 느낀다면, 그걸로 족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누가 의미를 만들어준다면 더 좋을 것 같아 이렇게 마침표를 찍고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 응모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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