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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 Mar 25. 2019

사는 게 뭐라고

사노 요코 

<사는 게 뭐라고>는 일본의 동화작가 사노 요코의 사후에 발간된 에세이다. 시한부 암선고를 받은 이 할머니는 암수술을 마치고 나와 담배를 한대 맛있게 피워 문 뒤 그린 부가티를 샀다고 한다. 늙음과 죽음에 대해서, 또 한류스타에 대해서 발랄하고 경쾌하게 쓴 에세이.


사노 요코의 '백만번 산 고양이'를 보여주는 발제자

발제자 혁예는 <사는 게 뭐라고>와 짝을 이루는 <죽는 게 뭐라고>도 함께 읽었는데, 개인적으로 <죽는 게 뭐라고>가 더 재밌었다며 추천했다. 더불어 사노 요코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동화책 <백만 번 산 고양이>를 직접 가져와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스터디의 첫 질문은 나의 기억력에 대한 이야기들. 서로가 얼마나 기억력이 나쁜가에 대해 배틀이 벌어졌다. 고유명사가 기억나지 않아 "그거 있잖아, 저기가져와서 이거랑 저렇게 해"라는 말을 수시로 달고 사는 차장님, 일을 해놓고는 얼마 받기로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멘붕에 빠진 프리랜서 등의 이야기가 나왔다.

만약 내가 사노 요코처럼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는다면 (돈에 구애받지 말고) 하고 싶은 가장 큰 사치는 무엇인가 상상해보는 시간도 가졌다. 왕복 티켓이 아닌 편도 티켓을 끊어 여행하다가 돌아오지 않고 죽겠다는 사람, 우주여행을 해보겠다는 사람, 산을 사서 공원으로 만들어 수목장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내어주겠다는 사람, TV조선에 대적하는 방송국을 만들고 싶다는 사람, 바다가 보이는 묘지에 묻히고 싶다는 사람 가지각색이었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좋아하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밤새도록 파티를 하다가 그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죽고 싶다는 의견이었다. 물론 그 좋아하는 사람들 안에는 우리 독서모임 멤버들을 빼놓을 수 없다고. ㅎㅎ


내 생애 가장 쓸모없는 시간으로 느껴졌던 시간들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시나리오 쓰기 시작한지 10년쯤이 되었을 때, 이번에는 정말 괜찮은 작품이 될 거라며 신나게 써서 여기저기 리뷰를 받았는데 다들 "엎어라", "도대체 이런 걸 왜 썼냐", "실망이다"고 해서 그 작품을 쓰던 6개월의 시간이 낭비였고 쓸모없었다는 작가가 있었다. 결혼 후 출산하고 아이를 모유 수유로 키웠는데, 모유를 먹이는 동안 내가 밥 먹고 돌아서면 아이 젖물리고 다른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그 시간이 짐승의 시간처럼 느껴졌다는 엄마도 있었다. 회사를 관두고 백수로 놀면서 미드 <24>를 실시간으로 따라 잡으며(미드 <24>는 실제 시간에 맞춰 드라마가 진행된다고) 마지막 시즌까지 다 본 적이 있었는데 정말 폐인이 따로 없었다는 사람도 있었다.


언제까지 일을 해야 하냐는 질문에는 이상적으로는 정년 퇴직 즈음부터는 좀 쉬어도 된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적으로 다들 죽기전까지 일해야 되지 않겠냐는 우울한 결론이 났다. 이때 실제 자기 아버지 이야기를 해주면서 퇴직 후에도 일을 하는 것이 우울한 게 아니라는 걸 알려준 멤버들이 있었다. 시골 내려가 농사 짓는 아버지가 겨울에 일이 없어 무기력하게 보내는 걸 보고 "아버지, 내가 붕어빵 엄청 좋아하잖아? 근데 여기 붕어빵 사먹을 데가 없어. 아버지가 붕어빵 장사라도 해봐."라고 말씀드렸는데, 진짜 다음 겨울에 붕어빵 장사를 하고 계시더라는 이야기와 기술자 아버지가 회사에서 수십년 일하고 정년퇴직 하신 후 계약직으로 다시 그 회사에서 일을 하는데 주변에서는 다들 힘들면 그만두라 하고, 아버지도 그럴 거라고 하지만, 은근히 지금도 일하고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돈의 문제라기보단 평생 일을 해온 사람이 갑자기 일을 하지 않으면 활력도 없어지고 건강도 나빠지니 일은 삶의 활력을 위해서라도 해야한다고. 그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사노 요코처럼 그녀의 아들도 일러스트를 그린다고 한다. 두 사람은 한 책의 삽화가로 누가 채용될 것인지를 두고 경쟁한 적이 있는데 결국 사노가 이겼다고 한다. 이처럼 마지막까지 이건 양보 못한다는 어떤 것이 있냐는 질문이 나왔는데, 다들 그런 거 없다고 하면서도 마지막까지 감동하고 호기심을 가지고 세상을 대하는 유연한 태도를 잃지 않겠다는 이야기와 적어도 재벌을 미화하는 내용의 글은 쓰지 않겠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죽음과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도 이토록 경쾌할 수 있었던 건 역시 사노 요코의 영향력이 아니었을까? 다만 드라마덕후들은 한류 드라마 이야기를 못해 애석해 했는데, 발제자가 드라마에 관심이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사는 게 뭐라고>에 대한 한 마디 

사노처럼, 앞으로도 사는 것에 너무 의미부여하지 않고 싶다 _ 하경

암, 치매, 죽음...그럼에도 유쾌할 수 있다는 걸 알여주는 기분 좋은 가상 체험 _ 매옥

럭키, 내겐 섬북동이 있다. 아~ 좋다. _ 혁예

죽음을 앞두고도 요코 할머니처럼 발랄하기를! _ 유정

사는 게 뭐라고, 이 얄궂은 책 한 권도 아직 못 다 읽었나. _ 승은

사는 게 뭔지 아직 다 알 수 없지만 잘 살았으면 좋겠다 _ 효진

나답게 나이 든다는 것. 메멘토 모리. _ 정윤

나 자신과 더 친해지자! _ 재광

죽는 날까지 지금처럼 철이 없었으면 좋겠다 _ 주은






2019년 3월 9일
책 _ 사는 게 뭐라고 (사노 요코 | 마음산책)
발제자 _ 권혁예
참여인원 _ 1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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