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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 Sep 06. 2020

책에 관한 수다는 언제나 즐거워

서재 결혼 시키기

앤 패디먼의 <서재 결혼 시키기>는 독서가들 사이에서 유명한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읽어본 사람이 별로 없다는 특징이 있다. 이번에 읽어보니 왜 그런지 알겠다. 편집자 및 작가가 많은 저자의 집안 전체 분위기가 현학적이고, 인문학적인데다, 저자의 유머코드 또한 영국식 농담이라 굉장히 주석이 많고, 쓴 사람은 재밌겠지만 읽는 사람은 알아먹기 힘든, 신경질 나는 책이다. 

그럼에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수록된 에세이의 주제만 따라가며 토론해도 재밌을 것 같아 독서모임을 기대했는데, 하늘이 도와주지 않았고,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덕분에 또다시 온라인으로 모이게 되었다.


가을 아침 같은 토요일 아침, 각자 책상 인증샷을 찍으며 온라인 입장!

코로나 전에 각 동네의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을 옆에 놓고 책에 관한 수다가 시작되었다. 


발제자 달은 책 읽다 궁금한 게 생기면 검색해보는 편인데, 이 책은 모르는 단어도 많고, 모르는 사람도 많고, 문화도 잘 모르겠어서 오히려 포기하고 안찾아봤다고. 저자가 농담 좋아하는 사람인 건 알겠는데, 유머코드가 달라서 함께 웃지 못하고 "나만 몰라. 나만 안웃어."를 느끼며 한국책이 읽고 싶어지는 책이었다고 했다.  번역가 영은 페이지마다 번역서라는 걸 계속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며, 그래도 조지와 앤의 아빠가 재밌었고, 무려 2번이나 정독할 정도로 좋았다고 했다.

정은 패디먼 집안과 자기 집안이 비슷한 부분이 많다고 했다. 장학퀴즈 등을 본 것은 물론이요 서로 아는 척하고, 퀴즈내고, 박물관 가면 아빠가 그렇게 아는 척을 하며 가이드를 하는 통에 요즘도 여행가서 가이드 투어는 절대하지 않는 후유증을 남겼다. 포는 미국 문화를 모르는 미국 코미디는 웃을 수 없는 것처럼 읽어도 내용이 안들어오고, 찾아보고 싶지도 않고, 완전히 다른 세상의 글로 느껴졌다고 한다. 그래서 끝까지 읽지도 않았다고. 이 책에서 유일하게 좋았던 것은 너덜너덜한 겉모습(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라)이었다고 한다. 옥은 완독을 하기는 했지만 과연 이게 완독인가 싶다고. 


책을 읽다 무엇을 검색해봤냐는 질문에 다들 공통적으로 파니힐이라고 답했다. 파니힐이란 저자가 아빠 책장을 보다가 발견한 책으로, 아빠가 거꾸로 꽂아놓았던, 매춘부들의 경험담이 쓰여있는 야한 책의 제목이다. ㅋㅋㅋ 정은 '조명나다'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오타인줄 알고 찾아봤는데, '좋지 않은 소문이 나다'라는 뜻이었다. 그 외에 프랭크 해리스, 아나이스 닌, <진정한 여성의 귀감> 등을 찾아본 사람들도 있었다. 

이야기는 제목인 '서재 결혼 시키기'로 튀어서 모임 커플의 서재를 합치는 이야기가 나왔고, 왜 결혼한 두 사람은 대답도 안하는데, 결혼도 안한 두 사람이 대답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둘 다 절대 합치고 싶지 않다고 대답했다. 한쪽은 실용 소설 위주의 잡다한 책, 다른 한쪽은 하드커버의 두껍고 비싸고 무거운 책이라서 너무나 취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책이나 독서와 관련된 행위나 물품에 집착하는 것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자타공인 독서가 정은 "별로 없다, 서점 가서 종이 책갈피를 가져오는 정도?"라고 대답했다가 지탄을 받았다. 책 읽다 교정교열 보기, 김영하, 김연수 등 좋아하는 작가 전작 사기, 책 읽고 꼬박꼬박 블로그 하기 등 너무나 많은 행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옥은 왜 샀나 싶은 책을 빨리 읽고 버리려는 습성이 있어 좋은 책보다 이상한 책을 먼저 보는 습관이 있다고 한다. 우리 모두 산 책보다 빌린 책을 먼저 읽는다는 공통점도 있었다. 

포는 안 읽지만 두껍고 장식용으로 좋은 책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다. 우리나라는 1판 1쇄의 가치가 없어서 안타깝다고 했다.

달은 교정교열을 보면서 독서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알라딘 중고서점이 생기면서 그 습관이 사라졌다고. 알라딘 중고서점이 우리에게 강요한 습관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영은 팔겠다 싶은 책은 일단 띠지를 분리하고 읽기 시작한다고. 포는 침 묻히지 않고 펼치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는데, 다들 그건 기본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달과 정은 재미없는 책도 중단하지 못하고 끝까지 읽는 병에 걸려 있음을 실토했다. 

영은 외출할 때 가방에 두 권의 책을 넣어다닌다고 한다. 한 권은 읽어야 하는 책, 한권은 읽고 싶은 책. 무거우니까 그 중 한권은 얇은 책으로 가져다닌다. 

회원들의 책장 구경

책 이야기와 함께 책갈피와 띠지 이야기가 나왔다. 각자 어떤 것을 책갈피를 쓰는지 이야기했는데, 명함, 메모지, 포스트잇, 티켓, 옷상표, 카페 쿠폰, 영수증 등 갖가지 재료들이 다 나왔다. 중론은 카페 쿠폰과 명함, 딱딱한 옷상표 등이 책갈피로 적합하다는 것이었다. 

띠지를 싫어하는 정과 좋아하는 영이 대립했는데, 영은 띠지가 머리띠나 머리핀처럼 책의 완성으로 느껴져서 좋아하고, 달은 카피라이터답게 홍보마케팅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정은 띠지가 싫어서 책 사면 일단 띠지부터 버린다고 한다.  

책을 찢는 이야기도 나왔다. 앤 아빠가 읽은 책은 찢어버리는 습관이 있는데, 우리 중에 긴 해외여행을 한 옥과 포는 가이드북을 나라마다 잘라서 버리고 다녔다고 한다. 이건 체력적인 문제라 어쩔 수 없었다고. 


다음으로 최근에 산 책을 호구조사를 했다.

정 : 야생의 위로 

포 :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유발 하라리), 조용헌의 인생독법, 예술애호가들(그래픽노블)

달 : 주말엔 옷장 정리

영 : 시선으로부터 (정세랑) - 재밌다고 강추했음

옥 : 영화는 배급이다, 파타고니아 :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 - 이거 재밌다고 다들 강추.

       파란하늘 빨간지구, 더 터치, 공간이 만든 공간  (이상 회사돈으로 구입)


내가 책을 아끼고 사랑하는 방식은 뭘까요?

정 : 나오는 족족 읽는다. 읽는 족족 블로그에 리뷰를 쓴다.

달 : 책의 표지나 내지 사진을 찍고 맘에 드는 구절에 밑줄을 치거나 포스트잇을 붙여 표시해 두는 것이다. 내지에 메모를 하거나 책을 활짝 펴는 것은 괜찮지만 책등이나 귀퉁이가 망가지는 것을 싫어서 그래도 곱게 다루는 편이다. 책장을 접는 것도 싫다. 뭔가 형태적으로 망가지는 것은 싫으나 포스트잇을 가득 붙인 책을 보면 나도 그 책도 배부른 것 같아 좋다. 북커버를 씌워서 몇 번 다녀봤는데 그건 나랑 별로 안 맞는 것 같다. 책도 답답해 하더라.

옥 : 좋아하는 사람에게 좋았던 책을 권한다.

영 : 정말 좋아하는 책은 힘들어도 이사할 때마다 끝까지 남겨두고, 정말정말 좋아하는 책은 누군가에게 선물하며 한 권 더 산다.

슾헤샬 게스트 은 : 책에 대한 일기를 쓴다.


발제자는 ' 책을 아끼는 방식이 포와 달은 약간 물성 쪽으로 아끼고 다루는 것 같고, 옥과 영은 주변에 추천하고 선물하는 방식으로, 은과 정은 열심히 보고 기록을 남기는 쪽으로 책을 아끼고 있다'고 스마트하게 정리했다.  


내가 소장한 책 중 가장 의외의 책~ 두둥~

포 : 다꾸 꾸미기, 송혜교의 시간 

영 : 웰빙 스쿼시

정 : 캔디캔디, 비스트

옥 : 양념공식, 남편을 날씬하게 만드는 반찬, 나물이네 2000원으로 밥상차리기

은 : 집에 책장이 있는 것 자체가 의외.

달 : 나는 매일 도서관 가는 엄마입니다

이 분야에서는 포의 '다꾸 꾸미기'가 가장 의외라고 만장일치를 받았다. 다이어리도 안쓰는 사람이 다꾸 꾸미기라니!! 회원 2명은 다꾸가 무엇인지 오늘에야 알았고, 포는 다꾸가 캘리그라피나 레터링과 같은 부류라고 박박 우겼다.


나만 아는 책 

정 : 없음.

포 : 아티스트의 도록 ex> 조나단 반브룩의 데미안 허스트 도록 

영 : 되게 안 팔린 제 번역서. 쿨럭.

달 : 에스페란토어 책.

옥 : 생활예술유람기, 더 터키, 프레시 아트 뉴욕, 수집자들, 먼 바닷길 일기 (전부 독립출판)


내가 작가로서 많은 독자에게 사인을 해준다면 이런 글귀를 쓰겠다.

포 : 한번 해 보세요. / 지금 내 몸이 내가 원하는 삶이다. (카포에이라 책에 쓰겠다는 다짐)

달 : 달디단 오후 되세요 / 달디단 계절, 마음을 담아.

영 :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나은 세상이기를.


작가로서 어떤 사인을 할까 고민하다가 독자로서 받은 사인을 인증샷 찍어 공개했다. 

인쇄된 김연수의 엽서 사인과 직접 해준 박준 시인의 사인


마무리로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옥 : 낭독. (눈 먼 앤의 아빠에게 낭독, 자기 전에 남편이 낭독 등)

정 : 자투리 책장. (북극 책만 한가득 있는 책장이라니!)

영 : 현장독서. (현장 독서가 훨씬 더 자극적인 이유는 우리가 책장 속으로 걸어들어가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카탈로그 독서 (특히 비행기 탔을 때 공감) 

달 : 표절 / 집없는 책 (헌책방에 데려가 7시간 동안 9Kg을 사서 나오다니!)


마지막 보너스 미션은 이 책에서 오탈자 찾기다. 정이 우승했다. (상품 기대기대! ㅋㅋㅋ)

정 : 75p 도리를 지면 >> 도리를 지면 / 140p 보기 하면 >> 보기 하면

달 : 98p 2055년 뒤 / 이 부분은 기원전이었다면 맞는 서술로 판명.

영 : 35p 프리랜스 작가 / 프리랜서와 프리랜스의 차이인데, 국내에선 프리랜스 작가, 프리랜스 카피라이터 등이 쓰이므로 곡 틀렸다고는 볼 수 없지 않을까 하는 의견.


헥헥, 이렇게 책에 관한 책수다를 떨고, 이번 온라인 독서모임의 참석자 정리는 글씨로 대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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